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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5 - 보이지 않는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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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을 바라보는 김 집사님은 시장에 갈 때면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집에서 시장까지는 자전거로 십여분 남짓한 거리인데, 운동 삼아 타기 시작한 것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미끄러지듯 골목을 빠져나온 집사님은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뭘 할까? 영감 좋아하는 콩나물국을 끓일까? 막내 좋아하는 꽃게탕을 끓일까?' 생각하는 사이 불이 바뀌었습니다.
 집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페달을 힘껏 밟았습니다.

그 순간 승용차 한 대가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춰 섰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앞바퀴와 승용차의 범퍼가 가볍게 부딪쳤고, 집사님은 횡단보도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고, 승용차에선 깔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남녀가 놀란 눈으로 뛰쳐 나왔습니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
"정말 죄송합니다.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젊은 남녀는 집사님을 이리저리 살피며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기본적인 검사를 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연락을 받은 아들이 뛰어 들어왔습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으응, 괜찮은 것 같다."

팔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이는 집사님을 보고 있는 아들에게
젊은 남녀는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 죄송하다면 다요. 큰 일 날 뻔 하지 않았소?"
"아범아,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사실 저는 서울에서 교통순경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지난 주에 결혼해서 오늘 처가가 있는 목포에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초행길이기도 하고 마음도 들뜨고 해서 그만…."

신랑을 바라보는 신부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들을 보고 있던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이봐요. 나는 괜찮응께 걱정들 말고 핑허니 가봐요."

"어머니!"
아들은 당황해 하며 집사님과 신혼부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습니다.

"아범아, 이 사람들, 신혼부부라고 허잖여!…
시방 처가에 인사허러 가던 참이라고 헌디 이만한 일로 잡아 놓믄 쓰겄냐?…
나나 저 사람들이나 액땜했다고 생각허자. 나는 괜찮다…."

"어머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후유증이라도 있을지…."

"나는 괜찮애…. 사실 저 사람들 잘못만도 아니다.
내가 너무 급허게 가지만 않앴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텡께…
여러소리 말고 어여 보내. 갈 길 바쁜 사람들 잡아 놓지 말고…."

아들은 집사님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보세요."

"아, 아닙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난 뒤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너무도 자상하게 대해주는 집사님을 두고 신혼부부는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도 자식 기르는 사람'이라며 자꾸만 어서 가라고 하는 집사님의 고집을 당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혹시 무슨 일 있으시면 이리 연락주세요."

신랑으로부터 명함을 받아든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행복허게 잘들 살아요."

서서히 병원을 빠져나가는 신혼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집사님은 명함을 휴지통에 넣어버리고는 엷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신혼부부에게 건네는 집사님의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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