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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네가 열심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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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계 3:14-22

언젠가 전철안에서 요한계시록을 신비하고 공포적으로 해석하는 단체중의 하나인
스룹바벨 선교회를 다니는 남자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붉은말, 검은말이나 두 짐승 붉은 용 등을 공산주의자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단체입니다.

처음에는 뭐라고 주장하는지 들어 보려는 마음으로 모른척하고 있었더니
계시록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숫자나 단어를 자기식으로 풀어 나가는데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제가 이해하는 계시록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말씀 드렸더니 그분께서 말하길, 당신은 아는것이 많아서 성령님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많이 아는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시록을 바르게 모르는 것이지요.

요한계시록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다가 밧모라는 섬으로 귀향간 사도 요한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아래 고통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감동 하심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1:9-10을 읽어보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성령님의 감동으로 환상을 보게 되는데 요한이 보았던 주님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 13-16에 보면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다 했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예수님께서 2-3장을 통해 당시의 일곱교회를 향해 칭찬과 책망을 하십니다.
이 일곱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두가지가 있는데
내가 안다와 귀있는자는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주께서 우리가 얼마나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너의 행위를 안다" 너의 아픔과 고통, 너의 삶의 현장을 내가 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다음으로 귀있는자는 들으라입니다.
신약 성경은 유난히 귀있는자는 들으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귀가있다 해서 진리의; 말씀을 다 듣는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산부인과 의사분이 라디오 방송에서 하는 말에 의하면 아기가 태어날때 인체중에서 제일 먼저 열리는곳이 귀라고 합니다.
귀가 열리면서 태어나고 또한 사람이 죽을때 눈을 감는다 하지만 사실은 귀가 먼저 닫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귀있는자는 들으라는 말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죽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들으라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말씀가운데 그 마지막인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이시간 저와 여러분의 삶과 신앙을 점검해 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라오디게아 지역은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라이커스 계곡에 있는 여러 도시중 하나입니다.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 였으며 "브루기아 가루"로 알려진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활발한 금융 거래로 물질적 부요가 풍부한 삶을 살았던 지역입니다.
3:17절입니다. 같이 읽어보자.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새번역)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 이상 바랄것이나 부족한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으로도 그들은 상당히 부요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 하였음을 17절 하반절은 말씀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 부요했던 서머나 교회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2:9을 찾아보자.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새번역)

          

저는 교우 여러분들과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풍부한 물질적 부요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영적인 부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적 부요와 영적 부요가 병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만은
인간의 속성상이 두가지 조건을 갖추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성경은 말씀하는데
대표적으로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30:7-9입니다.

          

"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바로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수준이 배가 불러서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이 누구냐, 아니 우리의 하나님은 돈이다라 했던 교인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일곱교회중 유일하게 책망만 하십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다르게 표현하자면 주님께 대한 관심이 없었던
무관심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준엄하게 책망 하십니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이렇게 냉정하게 책망을 하시면서도 하나님은 이들에게 돌이킬것을 촉구 하시는데 바로 18-19절 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새번역)

          

18절을 보면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회복 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할것을 요구 하시는데 먼저 주님으로부터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해 지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성서 주석자인 johnson은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성령의 불로 뜨거워져야 된다라 했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흰옷과 안약을 사서 입고 바르라 하셨는데 당시에 라오디게아는 광택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했다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검은 양모가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라 말씀하십니다.

안약을 사서 바르라는 말은 라오디게아 지역의 특산품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이유가 그들이 얄밉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에 책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회복의 요령을 말씀 하신후에 주님은 결정타를 날리십니다.
19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네가 열심을 내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제게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강력하게 도전을 던져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너가 사람앞에서 내는 열심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열심을 내어라는 성령님의 깨우침을 듣고 주님께 회개하는, 그래서 제 자신을 돌아 보았던 말씀입니다.

제게 주신 이 말씀이 저는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라 생각합니다.
오류제일교회 가족 여러분, 남은 시간, 아니 다가오는 2003년도 네가 열심을 내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 하십시다.

타인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열심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그리고 묵묵하게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 가십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열심을 낼수가 있을까요?
몇해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동화작가인 정채봉씨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시오"를 소개하며 마치겠습니다.  

까치네는 오늘 아침에도 부부 싸움을 벌였다.
"까치까치까치"
"까치까치까치"

사흘이 멀다 하고 일어나는 말다툼이었다.

저녁이 되어 남편 까치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둥지에 불평 귀신이 붙은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주 싸울 리가 없어"

아내 까치 또한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걱정 귀신, 불평 귀신 다 붙어 있는 것 같아요.
둥지에 오면 걱정 불평이 그냥 쏟아지니....."

부부 까치는 이튿날 산까치 도사를 찾아갔다.

"처음엔 저희 집이 안락 둥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걱정 불평 둥지입니다.
귀신이 붙은 것 같사오니 그것들을 쫓아내는 비방 좀 가르쳐 주십시요."

산까치 도사가 말했다.

"우리들은 기쁨을 까치까치까치 하지요.
마찬가지로 불평도 까치까치까치 하지요.
이 기쁨과 불평도 한 입에서 나오는 것이지
다른 귀신이 시켜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나 한테 있는 것이지요.

다만 기쁨은 첫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반해
불평은 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 둥지를 틀던 첫 마음으로 돌아 가십시요.
그러면 불평이 걷히고 기쁨이 나타날 것입니다.

기쁨은 첫마음에서 나오고 불평은 묵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습니다. 처음의 마음,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때 나를 구원해주신 그 주님의 은혜에 놀라워했던 그 첫사랑을 회복할때 우리는 열심을 낼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님을 만났던 그 처음 행위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남은 올해와 새로운 한해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또한 하나님꼐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기는 사람은 마치,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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