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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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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학교 운동장에 버드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면
한적하면서도 어쩐지 애잔한 기운이 감도는 그곳에서
유빈이와 둘이 달리기를 합니다.

유빈이는
조그만 주먹을 볼끈 쥐고서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며
있는 힘을 다해 달립니다.

저만치 다람쥐처럼 달려가는 아이를 바라보노라면
달리기만 하면 꼴찌를 면치 못했던
머언 먼  지난 날 내 어린시절
운동장에서의 쓸쓸함이 다시 되살아 나곤 합니다.

운동회 날 만장하신 마을 어른들 앞에서 꼴찌를 하고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엄마를 찾으면
엄마는
엄마 눈에도 슬픔이 가득차서
허겁지겁 날 끌어안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갸느린 내 등을 가만가만 토닥여 주면서
"아이고.....우리 숙이 속상하제? 내년에는 잘 할끼다.........."
그러나 그 잘 하는 내년은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유빈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기 적
그날도 토요일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요란한 응원소리가 진동하고
북소리까지 둥둥 울리는 바람에
운동장이 훤히 내다뵈는 베란다 창에 붙어서서
유빈이가 저길 가자고 마구 졸라 구경을 갔습니다.

도착하니 마침 이어달리기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경기는 거의 끝나가는 때여서 마지막 주자들만 남아
등을 다부지게 구부린 자세로 한 손은 뒷꽁무니에 바짝 갖다붙이고는
자기팀 선수를 초조히 눈으로 좇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선수가
달려오는 선수들 쪽으로 자꾸만 뒤로뒤로 뒷걸음을 치는 것이 눈에 띄어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맨 마지막으로 달려오는 주자의 바톤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는 하얀색 바톤을 받아 쥐자마자
마치 탄환처럼 앞으로 튕겨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달려가는 한 아이를 젖히고 또 한 명을 젖히고......
응원소리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가는 운동장을 그렇게 휘돌아서
마침내 결승점 바로 앞
일등으로 달려가던 선수까지 뒤로 젖히고
결승점을 지나서도 한참이나 기세좋게 달려나갔습니다.

그 날 유빈이와 둘이 깔깔웃으며 뜀박질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자꾸만 서운한 마음이 들었듯이 지금도 내내 서운한 것은  
전율을 느낄만큼 달리기를 잘 했던 그 아일 보느라
그만 놓쳐버린 꼴찌의 모습입니다.

  이제
그 운동장에서 학생이 되어 뛰어노는 우리 유빈이.......
기나 긴 인생의 경주를 앞두고 있는 유빈이가
앞으로 어쩌다 무슨 일에서건 꼴찌를 하는 때가 있을지라도
결코 의기소침해 하지 아니하고
또 어쩌다 일등으로 달려가는 자를 젖히고
앞서 달리는 그 전율의 환희를 맛볼지라도
절대로 교만하지 아니하고

더불어 모든 자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승취의 욕심은 있으나
양보하며 남을 배려하며 겸손할 줄 아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성장하기만을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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