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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린 날로의 초대(전편)-꼬마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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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많은 오빠와 언니들은 이미 술래에게 잡혀있었다.
이제 나 한사람만 잡히면 이제 끝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그때 전설적인 그 게임... '다.방.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고 알고 있다.^^

나는 조심스레 술래들의 동정을 살피며, 술래언니에게 잡혀있는 맨첫번째 언니의 '막내손가락'을 뚫어져라 보기시작했다.

"음~ 저것을 끊으면..."
3명의 술래 중 1명만이 남겨져 있는 그 상황에서
나는 '다다다다~' 뛰어서...-분명 그때 그렇게 뛰었을 것이다.
왜냐면...나처럼 다리가 남들보다 '짧은' 사람들은, 남들의 2몫으로 뛰어야하는 원리가 있으므로...ㅠ.ㅠ

드뎌...
그 연결된 손가락을 끊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좌우로 흩어지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성취감에 담뿍 빠져버렸다.

그때 나의 밥그릇 수는 365x3x6 이었다.
다시말해 내 나이가 7살이었단 말이다.
여기서 7이 아니고 6인것은 읽는 분들도 다 알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태어나면서 1살을 먹고 나오는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에 의한 것이다.


7살 때를 보냈던 '또 다른'성남시의 추억은 많은 친구들과 함께 했었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것은 '사탕공장'집 딸래미였다.
그애가 내 '친구'인것이 한없이 자랑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집에 가서 본 것은 그 맛난 사탕의 생성과정이었다.
그것은 마치 중국집에서 밀가루를 가지고 면을 만들듯, 그렇게 길게 반죽(?)을 해서 늘리다가, 꼬다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담에는 그것을 가위로 먹음직스럽게 잘라 놓았다.

그애의 집에는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는 늘 그 버드나무가 고마왔다.
버드나무 가지를 묶어서 그 위를 올라서 그네를 탔었드랬기 때문이었다..(?)
가지가 끊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의 건강은 보통이상이었기에...


그러던 어느 날...다른 친구가 나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야, 내 생일이 먼저니까, 너 이제 나한테 언니라고해~"
뭐시라고라고라...이룐 나이도 같으면서,
'몇달' 먼저 태어났다고 내가 동생이 되길 원하는 그 엄청난 발언에 가만있을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쓸데없는 대결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대결종목은 다름 아닌 그애의 집에 '눈감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글쎄...이렇게 쓰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그애의 집구조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지금은 그런 집이 없지만...
그 집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더럽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또랑(?)을 건너야했다. 그 또랑을 건너기 위해 작은 널판지가 놓여져있었다.
그런데...겁도 없이 눈을 감고 그 널판지를 걸어서 그 애의 집에 들어가기로 했던 것이다.

게임시작~
나는 한걸음 한걸음 정성스럽게...정신을 집중하여 걸었다.
그.러.나.
나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걸음 옮기지 못하여 '풍덩'...
그 '기름'이 둥둥 떠 있던 그 또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왜 그때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균형감각'이 남덜보다 떨어진다는 거슬...
그래서 눈뜨고도 잘 넘어지는 아가...눈 감고 건너는 대업(?)을 달성하려 했다니...

그날 저녁,
나는 빨간 다라이에 앉아서
엄마에게 등을 맞으며, 목욕을 해야만했다.ㅠ.ㅠ


          
후편에는...
그러한 아픔(?)과 즐거움이 공존했던 그 시기에 나에게 깊이 인식되어있는 한 분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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