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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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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다리기(퍼온거)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더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몇 백 명이 모이는 중형교회의 한 안수집사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인(死因)은 글쎄 자살(自殺)이었답니다.
그분의 유서에는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더라!”라고 씌어져 있었답니다.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더라?
말하자면 그분은 배교(背敎)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앙을 버리고 맘몬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은 구원받았을까요?

실은 그 질문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저는 이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무지 신앙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기에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단 말씀입니까?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그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돈에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아니, 그분은 교회에 또는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분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도록 까지 교회가 무엇을 했을까요?
교회가 크기 때문에 모두 다 살피지 못 한다구요?
그분은 안수집사입니다.
같은 직분을 가진 이들이 그분의 상황을 몰랐을까요?
같은 구역식구도 그분의 상황을 몰랐을까요?

아마 알고 있어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을 돕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또 출혈(出血)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많은 절차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품는 사람이 아직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교회나 개개인의 성도들은 속수무책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도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자본주의 경제논리,
이것은 어쩌면 바알의 경제논리라고 할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붕괴를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안에 있는 모순은 어떻게 하고요?
그 모순 속에 교회까지 똑같이 빠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교회의 이런 모습은 우리 주님이 생각하신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그 대안이 무엇일까’하고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교회가 바뀌어야 하겠지요.
오늘날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닌 보다 공동체적인 교회의 모습 말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이 가장 큰 대안으로 봅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 생활 공동체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대안은 없으리라 봅니다.
교회는 타락한 사회에 대한 대안 사회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지 않는 대안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작은 꿈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공동체적인 교회!
이 타락한 사회에 대한 대안 사회의 건설 말입니다.
지금은 전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저 살기에 급급하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으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히 믿고 나아갑니다.

주님이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 죽어간다고 할지라도.......

          

順天바람직한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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