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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등골 이야기 9 - 꼭 필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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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 성도들과 함께 금산(錦山)에 다녀올 때의 일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희상이는 매우 들떠 있었습니다.  
"누나, 나 오늘 아빠랑 등산 간다! 산에 간다고…."
그 말을 들은 지윤이가 내게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 등산 가실 거여요?"
"아니, 등산 가는 것이 아니라 금산에 가는 거야.
금산은 산 이름이 아니라 충청도에 있는 도시 이름이란다.
근데 먼저 대전에 들를거야…"
"왜요?"
"으음, 전에 우리 교회 나오던 한 성도님이 그 곳에 살고 있어서 돌아볼 참이란다."  

대전 아들네 집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임현님 성도님은 건축현장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갖다줄 보약과 고춧가루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오셨고, 다른 성도님들 역시 텃밭에서 막 따낸 애호박이며 가지 등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넉넉하고 따뜻한 출발이었습니다.  
  
팔십이 넘은 노(老) 집사님 두 분을 포함해 십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광주를 출발했습니다. 희상이는 성도들 앞에서 짧은 영어, 일어 그리고 노래로 한바탕 장기자랑을 한 후, 엄마와 함께 쿵쿵따 말잇기 게임을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나 대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박영순 성도님의 한밥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천천히 많이들 드세요. 목사님이랑 성도님들을 다시 만나니까 너무너무 좋네요.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해요. 많이들 드세요."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들 드시게라우."
며느리의 말을 받아 임현님 성도님이 음식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노 집사님 한 분이 음식을 거의 잡수지 않는 것이 눈에 띠었습니다.
"집사님, 많이 힘 드시죠?"
"괜찮혀라우. 목사님이 운전허싱께 힘드시제라우……
나는 여그 올 사람이 얼매 안된다고 혀서 자리나 메꿀라고 왔는디…
엊저녁참부터 밥이 통 안 멕히드마는…."

사실 무늬만 광주일뿐 성도들 다수가 농사를 짓는 탓에 무, 배추, 마늘의 파종기와 벼 수확기가 맞물린 상황으로 인해 오지 못한 성도들이 여럿이었습니다. 그런 정황을 안 박찬희 집사님은 여든 여섯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따라나선 것입니다. 

애써 괜찮다고 하시며 수저를 내려 놓는 집사님에게 포도를 권해드리자, 집사님은 한 송이를 조근조근 다 드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성도들은 이구동성으로 "포도라도 잡수셔서 다행이네요"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40분쯤 달려 금산 인삼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성도들은 750g을 '한 척'으로 하는 인삼을 한 두 척씩 사 들고는 매우 만족해 했습니다.  

대전으로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광주를 향해 내려올 때도 희상이는 줄곧 성도들과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큰 독수리가 뭐냐? 돌연변이가 뭐냐? 왜 사람들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느냐? 토성에는 왜 띠가 있느냐? 왜 지구에만 사람이 사느냐?'는 등 계속해서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임 성도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인자부터 어디 댕기실라믄 꼭 희상이 모시고 댕겨야 쓰겄소.
뭔 애기가 쪼깐은 것이 안 것도 많고…목사님이 심심찮애서 좋겄소.
나같은 것은 통 멍충이가 돼가꼬 말헐 줄도 모르고 암 것도 모른단 말이요. 글씨."
"예, 알겠습니다. 희상이는 앞으로 꼭 모시고 다닐랍니다."
그러자 차에 탄 성도들이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 임현님 성도님이 하신 말씀이 제 모습이거든요.
어찌보면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멍충이지요.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작은 부와 명예, 학식과 지위를 뽐내며
사는 멍충이들이지요. 이런 모습으로는 주님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진정 주님의 성품으로 바뀌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 임 성도님이 아는 것도 없고 말할 줄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성도는 하나님이 은혜로 맡겨주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해 주신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면 되거든요.
사실 오늘 우리 성도님들 모두 나름대로 나누고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를 다한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되네요.
왜냐면 주님 안에서 그 누군가를 배려해주고 공동체를 배려해주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믿음의 삶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사람이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자 지도자가 아니겠어요?"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저물고 있었습니다.  
"희상아, 아빠랑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한 번 불러 볼까?"
희상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복음송을 듣는 성도들의 눈망울이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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