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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세례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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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27일,
이날은 제가 세례 받은 날이면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분명한 신앙고백의 확신이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날짜입니다.

처음 세례를 받기 위해 세례문답을 암송해야 했었는데, 사실 암송은 했었지만
세례의식에 담긴 깊은 의미나 상징성은 이해하질 못했었습니다.
그후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사람 사랑의 극치와 상징적 표현이 세례임을 깨닫게 된 후 세례 받은 날은 기억에 남는 특별한 날짜가 되었답니다.

황석영 작가의 <손님>에 보면 세례에 담겨진 깊은 의미를 되내이게 하는 기막힌 표현이 나옵니다.
주인공 요섭이 어렸을 때 증조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 가운데 요섭의 할아버지가 세례받는 장면을 증조 할머니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신천 읍내에두 포교당인가 예비당인가 들어와서 젊은것덜이 매일 모여선 콩이야 팥이야 했디. 다큰 아덜을 에미가 어떠케 이기갔나, 마루에 있던 성주 단지까지 깨버리구 겐데내기 힘들어서. 동네 아낙이 와선 큰탈이 났다구 기래.
무슨일이냐니까 했더니 댁내 아덜이 예비당에서 넋들임을 하구 있시다 하넌 게여.

넋들임이 무에냐, 말하자 문 신내린단 소리 아니냐.
나는 뛰체갔디. 뭐라 뭐라 물어 보고 대답하고 머리에 물을 바르더만
그거이 양구신이 몸에 들었다넌 표시라더라.
(손님, 황석영 지음, 창작과 비평사, 41-42쪽)

          
무속신앙인 성주신을 섬겼던 할머니의 눈에 비추인 세례문답과 의식의 모습이 양구신을 접신하는 것으로 표현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표현중에 넋들임이라는 말은 곱씹을수록 세례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묵상하게 하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갖게됩니다.

왜냐하면 표현만 다를 뿐이지 바울 사도께서 세례에 대하여 말하면서 죽음과 연합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와 합하여 진 신앙의 신비 사건이 바로 세례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또한 분명히,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롬6:3-5,새번역성경)

오늘 저와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의 넋(영)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9, 새번역)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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