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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 땅의 모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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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하면 언뜻 영화 '십계'에 나오는 낭만적이고 멋있는 찰톤 헤스톤을 흔히 떠올릴지 모르지만, 실제 성경 속의 모세는 그런 이미지와는 참 많이 다르다. 모세의 이야기는 분명 '영웅담'의 구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삶은 여타의 고대소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일생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우선 그의 인생의 여러 비밀이 성스럽게 윤색되기는커녕 오히려 모세라는 한 결점 많은 인간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서술이 이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파라오의 인종차별정책에 의한 대규모 유아학살의 와중에 모세는 몰래 버려지게 되었고, 강물에 떠내려가는 아기의 요람(갈대상자)을 우연히 발견한 이집트의 공주에 의해 키워졌다는 사실은, 그가 속해 있던 시대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당시 이집트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국제 사회였고, 이집트의 델타지역은 주변의 다른 척박한 지역들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지닌 비옥한 땅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자기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히브리인들은 바로 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육체노동자들이었다. 사회의 하급계층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열심히 일하고 자손을 불려 마침내는 이집트의 본국인들의 숫자를 능가하게 되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이집트인들은 민족말살정책을 써서 모세와 같은 사내아이는 모두 살해하기로 하고, 이를 법제화한다.

   모세는 자신의 출신과 성장과정을 알게 됨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위기와 분노를 절감하면서, 자기 동족이 이집트인에게 박해받는 것을 보고 격분한 나머지 살인을 저지르는 성급함을 보이기도 한다. (후에 모세가 받은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는 구절은 그래서 또다른 감화를 준다.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넬 때마다 모세는 자기의 인생에 대해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었을까.) 다른 열렬한 젊은 테러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그런 큰 사건을 저지른 후 몸을 피해 한 사람의 평범한 생활인으로 덜아간다. 지역사회에서 비교적 존경받는 사람의 사위가 되어 아마 열심히 재산도 모으고 평범하게 가정도 일구어 나갔을 것이다. 그런 모세가 중년이 되면서 또 한 번 인생에 큰 전환을 겪게 된다. 우연히 하나님의 목소리와 존재를 영접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동족을 구하라는 큰 사명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 대목은 사도 바울의 개종체험을 연상케 한다.

   그리나 겁 많고 소심한 모세는 우선 이를 거부하고 본다. 자신은 말도 잘 하지 못하는 편인데다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나 지혜도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에 하나님은 형을 그의 대변인으로 삼아 주면서, 하나님의 부름에 따를 것을 다시 명하신다. 그 후 오랫동안 여전히 머뭇거리는 모세로 하여금 그의 소명을 완성하게끔 도와주는 사람은 그의 형인 아론과 그의 누이이자 예언자인 미리암이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유대민족을 이끈 정치 종교 지도자 모세는 한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큰 영도자로서 전체적인 방향 제시를 해 주기보다는 동족들 사이에서 싸움이 날 때마다 일일이 판결을 내리는 등 작은 일에 집착하느라 정말로 큰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이다. 이 때에도 역시 모세는 현명한 장인의 도움을 받아 곧 잘못을 바로잡고 큰 영도자로서 성장한다. 그러나 말년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삶을 마감하고 만다.

   모세의 생애는, 피압박민족의 혈통으로 태어나 권력집단 왕가의 양자로 성장하면서 느끼는 자아 정체감 위기의 청소년 시기, 그런 갈등이 이집트인 살해라는 폭력적 형태로 폭발하는 청년 시기, 사회의 모순을 뒤로 한 채 지극히 사적인 가정생활 속에 조용히 성장하는 중년 시기,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진정한 사회적 역할을 완성시키는 장년 시기, 마침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조용히 지난 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노년 시기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세란 인물에서 한 국가의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읽어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공동체의 지도자같은 평범한 이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젊어서는 불의를 참지 못했던 청년이 중년에 이르러서는 재물을 모으며 현실에 적응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의 소명을 부정한 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또 일정한 위치에 오르면 자잘한 모든 일도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생활을 하고,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지만 끝까지 다다랐다는 성취감을 끝내 맛보지 못하고 삶을 마쳐야 하는 인생은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완성되지 못한 많은 모세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세계사에 남을 큰 일을 성취하는 위대한 모세도 있을 수 있지만, 주위 사람 몇에게만 도움을 주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이름 없는 모세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정말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하는 것은 성취의 크고 작음,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되고 깊은 사랑을 실천했느냐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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