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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눈사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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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사람 만들기

올 겨울에는 삼한사온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혹독한 추위가 오는가 하더니 봄날처럼 따뜻한 햇살이 환하게 비취고 있다.
지난 추위에 동네 앞의 저수지가 꽁꽁 얼어서 여기 동네에 정착한지 십 년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호수의 물이 정지된 것을 보았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나는 걷는 정도가 아니라 막 뛰어다녔다. 호수 건너편의 둑에 발을 딛고서 뒤돌아보니 포근히 감싸고 있는 마을과 교회당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미리내와 서진이도 용기를 내어 뒤따라 왔다.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던 일이 물이 변화되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자연의 조화는 단 하룻밤에 온 세상을 하얗게, 출렁이는 물을 단단하게 묶어 버린 것이다.
그저 자연현상으로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조금만 눈을 새롭게 뜨면 모든 것이 기적이요 놀랍고 감탄의 대상이다.

아침에 얼음이 단단하게 얼린 것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썰매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을 다녀오는 사이에 헌 쇠 파이프에 판자를 씌우고 앉아서 탈 수 있는 썰매를 만들어 놓자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백 보 앞에 있는 호수로 향했다.
앞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힘들지 않고서도 잘 미끄러져 나가자 연신 즐거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린 시절에 고향에서 즐겼던 그 추억을 불혹의 나이가 돼서야 그 시절을 다시 경험하였다.
당시에 내 손으로는 한 번도 만들지 못했던 썰매를 이제는 금방 만들어서 탈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작은 꿈을 이룬 것이다.
아이들로서는 난생 처음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체험을 이 겨울에 맛보았다.

겨울에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놀이는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만들고자 하는 창조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모래나 흙무더기가 있으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여러 모양을 만들며 노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더렵혀진다고 못하게 하며 또 이런 무더기는 오래 두지 않고 바로 치운다.
하늘에서 풍성하게 내리는 눈이나 오면 마음껏 만들면서 꿈을 키운다.

하지만 눈이 온다고 해서 눈사람을 바로 만들지는 못한다. 여러 조건이 맞아야만 된다.
우선 눈의 량이 많아야 하고 사람들이 밟지 말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따뜻한 햇빛에 어느 정도 녹아야만 서로 뭉쳐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간다.
그 시간은 따뜻한 날의 정오쯤 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서 다져가며 굴리면 마치 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잘 달라붙는다. 계속 굴리면 눈 자체의 힘으로 굴릴수록 달라붙어서 점 점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진다. 눈덩이를 만들기 가장 적합한 자리는 마당의 잔디밭의 눈이 제일 잘 만들어진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눈덩이를 굴리면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추운 겨울이면 더 도움을 바라는 이 사회의 약자를 위해 기부하는 '사랑의 체감온도'가 높아야만 서로가 눈덩이처럼 하나가 되지 않을까?
혹독한 추위를 격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신문에 나온 기부문화를 보니 '부자동네가 더 춥다' 고 나왔다.
오히려 어렵게 사는 농촌지역이 더 올라갔다고 나와 있다.
추위가 있어야 비가 눈이 되어 내리고  따뜻한 기운이 있어야  서로가 녹아져 하나가 되는 자연의 현상이 우리의 삶을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다.  

아이들 키만큼이나 되는 눈덩이를 만들어서 놓자 그 때부터 아이들은 모양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눈사람이 거의 비슷한 모양이었다. 숯으로 눈과 코와 입을 만들고   나뭇가지 하나 꺽어다 팔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의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조금은 엽기적인 형상인데 코는 돼지코요, 두 눈은 볼록 튀어나왔고 입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모자까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다양한 볼거리를 마음껏 보며 자라나는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 역시 달랐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마당의 눈은 이미 녹아져 사라졌지만 엽기적인 눈사람은 오랫동안 하루하루 녹아져 이상하게 돼버린 채로 그 자리에 남아있다.

궁산교회  활뫼지기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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