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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회부흥을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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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의미가 건물이나 조직의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교회의 의미는 예수 님을 믿고, 예수 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예수 님의 가르침대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의미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같은 교회의 건물이나 조직은 예수 님이 돌아가시고 카톨릭이 성장 한 후에 만들어 졌을 것이다. 예수 님 당시 초대 교회는 교회 건물이 없이 하루는 디모데 집에서 하루는 야고보 집에서 돌아가면서 지금 구역 예배 보는 식으로 들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목사님들께서 말씀하시는 " 예수 님의 피의 대가로 세우신 교회를 사람이 무너트릴 수 없다. "고 하는 교회는 교회의 건물을 위해 예수 님이 돌아 가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 님의 피 흘리심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 하나를 위하여서 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이다. 즉 교회(敎會)는 하나님의 사랑을-교(敎)를 배우고 실행하는 회(會) 즉, 무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 크리스천의 의무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의 재산이나 혹은 교회의 땅을 넓히라는 것이 아님도 자명하다. 교회의 부흥이 교회가 재산을 축적하여 교회 바닥을 대리석으로 치장하는 것이 부흥이 아님도 자명하다.

교회에 은혜의 말씀이 풍성하고 그 말씀을 사모하는 지체들이 많은 것이 부흥 이여만 한다. 만일 교회가 교회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 건축을 하는 과정에 성도 한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한다면 교회 부흥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더욱 쇠퇴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벽돌이나 땅이 아니라 말씀과 성도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기반 시설이 최대한 이용해도 성도를 수용하지 못할 상황이 아닌 바에 목회자의 꿈과 야망 때문에 무리하게 이루어지는 성전 건축이 한 성도라도 실족해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의 성도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고 교회 땅 몇 천 평 보다 벽돌 수 천장 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것은 그의 소중한 독생자를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시게 할만큼 소중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현재 기독교 목회자는 교회 땅을 팔아서라도 한 영혼이라도 구제하여야 함에도 성경을 왜곡되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함도 불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사칭하여 목회자의 욕망을 채우는 우(禹)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랑이다. 재물이나 권위, 자신의 욕망이 아닌 영혼을 천하 보다 더욱 귀중하게 여기는 사랑이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놓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사랑의 심정이다. 십자가의 처참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사랑이다.

전도 또한 자신 보다 남을 위하는 한 영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를 하여야 한다. 전도자가 전도함에 있어서 전도의 이유와 목적이 전도자 자신에 있는 것보다도 피전도자에 있어야 바람직하다. 전도의 목적이 "내가 한 사람 전도하면 하나님은 저에게 무엇을 해 주시겠습니까? "하는 식의 하나님과의 협상의 도구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복 받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 내 의무를 내가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목적과 이유는 피전도자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흥을 위해서 교회 내외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이용해서 내적으로는 사랑과 은혜의 말씀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외적으로 지역 사회를 위한 나눔의 구제 활동과 선교를 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한 성도도 실족하는 일이 없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 할 수 있어야 하며 결정 방식부터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며 모든 성도가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 할시 모든 방법이 투명하게 되어야하고 모든 성도가 알게 공포 되어야한다. 편의에 의해서 몇몇 사람이나 조직이 설정하여 따르라는 식은 설득력을 얻기 쉽지 않고 비공식적인 언로(言路)로 은혜가 되지 않게 될 수가 있다.

이러한 과정의 모든 제정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 저야 한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시험 들기 쉬운 문제가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낭비되거나 개인의 편의에 쓰여 질 때이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제정 운영을 맞은 분들은 하나님과 성도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가능하면 목회자는 교회 제정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제정 때문에 성도의 구설수에 올라 그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부흥을 하기 위해 대부분의 교회가 내적으로는 성전 건축 외적으로는 노방 전도, 총 교인 전도 대회, 총동원주일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하나 그 성과를 보기 힘들다. 부흥을 위해서는 이러한 일시적이고 단발성의 프로그램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정책과 목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 올바르고 바른 교회를 만들어서 교회내의 모든 성도가 사랑의 교제와 말씀의 은혜로 인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교회가 되고, 타 교회가 사랑의 교제와 말씀의 은혜로 인해서 정말로 부러워하는 교회가 되며, 교회 밖의 사람들이 나눔을 통해서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존경하는 교회가 되어서 꼭 가보고 싶은 교회가 되면 부흥이 안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목회자가 눈앞의 편의 때문에 쉬운 길로 가다보면 가도가도 그 자리가 될 것 같은 생각이다.

부흥을 위해서는 목회자는 욕심을 버리고, 성장을 위한 부흥을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 올바른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성도를 섬기는, 성도 위에 굴림 하지 않는, 대접받기 보다 대접하는, 재물보다 영혼을 더욱 생각하는, 불쌍한 이웃에게 옷을 벗어 주라고 말로 하지 않고 직접 몸소 행하는 목회자, 개척 교회를 하며 지금의 고생이 나중에 보상받을 시련과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것 마저도 기쁨으로 여기는 목회자와 이런 목회자가 있는 교회는 부흥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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