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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흘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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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차라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조금 전 그 음성을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못 박았던 그가 살아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빛으로 다가왔고, 내 심령을 우렁우렁 거리게 하는 음성으로 다가왔습니다.  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는 얼마 전 돌로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마치 동네에 돌아다니는 미친 개 한 마리를 잡는 것처럼 사람들이 손에 손에 돌을 쥐어 주고 그를 천천히 때려 죽였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옳다고 여기는 그 길을 위하여 스데반이라는 반역자를 처단했습니다.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택함 받은 우리들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 줄 메시야는 칼과 창을 들고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모든 나라와 민족을 물리치고 영광의 역사를 열어가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신념은 마치 바위와 같이 든든하고 거대해 보여습니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습니다.  “이제 너희가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다”  저 예수쟁이의 당당한 설교는 유대인들의 양심을 찌르고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도 유대인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단단한 유대주의를 깨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대인들의 바위 같은 마음이 조금씩 부숴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서야 했습니다.  부숴져 내린 그 바위들을 손에 손에 들라고 말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에 마음이 찔려 어쩔 줄을 몰랐던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돌맹이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 사악한 무리를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그만 의심이나 후회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던지는 돌맹이에 조금씩 무너져가는 스데반을 보면서 더욱 끓어오르는 분노와 알지 못할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나는 마음에 남아있던 모든 돌맹이들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내가 옳아… 내가 옳단 말이야!!!”라고 되내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 스데반이 옳았습니다.  예수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빛을 비췄고 그가 생생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습니다.  내가 핍박해 온 그 예수가 내게 다가온 것입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던 바위는 이미 스데반에 의해 뽑혀져 버렸습니다.  나의 바위를 향하여 생명 걸고 도전했던 스데반이 결국 이겼습니다.  그에게 던졌던 바위가 뽑혀져 나간 자리에 빛과 음성으로 다가온 그 예수를 나는 거부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항할 힘이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사흘째입니다.  이전의 평생보다 더 긴 사흘을 나는 보내고 있습니다.  무너지고 부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시 밝은 세상을 보기에는 너무 두렵습니다.  철저하게 부정될 나를 보기는 더 두렵습니다.  아….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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