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 (UC 버클리 기노스코 설교)

첨부 1


          


이 세상에 어떤 기업을 성장시키듯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와 끝은 허무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고 주님은 말씀하시게 됩니다.

마7장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자라야 들어가리라"

          

자! 무엇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까?
오늘 이것을 아는 사람은 성경을 알고 예수를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계획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네!~~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자!~~이제 그 뒷절의 말씀을 읽어볼까요?
22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행하라는 것입니까? 사랑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을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8장 이후의 말씀은 모두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문둥병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그리고 소외된자, 가난한자들을
먹이시고 고치시고 그들의 모든 문제를 사랑으로 품고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12장1-13의 말씀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는 종교적인 예식 가운데서 아무 것도 안하고 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율법대로 가르치고
율법대로 지키면 그들은 천국 간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와 함께 있으면 괜찮다!~~
뭐가요? 안식일에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같이 행하는 것이면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자!~~여기서 이거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지요...
반전시위 해야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기노스코 보드에 보니까...김자연 형제가  주일에 "반전 시위하러 갑시다!~~~"
라고 올렸더군요...용감하게^^...개인적으로 저는 주일날 교회 예배를
빠져가면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그런데 기노스코는 개 교회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곳은 누구 한사람의 주장으로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곳이 아니지요?
자유스럽게 자기의 목소리를 낼수 있는 곳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사탄의 가르침을 쫒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머리 맞대고 고민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기노스코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공의와 정의를 생각하면서
이 사회에 도전을 줄수 있는 행위 즉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행하는 것이라면,

I will strongly encourage you to do it!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눅10:38절에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의 비유에서 우리는 예배의 우선 순위를
강조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를 먼저 드려야 하는 것으로 교회는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분을 때에 대한 해석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 말씀을 하신 정황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날 마르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르다는 예배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뵙는 것! 마르다도 예배 준비를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맛난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의 순서를 담당한 사람들이 그 예배를 소홀함이 없게
준비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마르다는 틀렸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우선 순위를 말하고 있는것이지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후 죽으러 가셔야 했습니다.
그 날의 만남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정말 귀한 말씀을 하셨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른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방문 이후에는 다시는 그들을 만나보지 못할것이기에
오늘은 맛난 음식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 내 말을 들을 때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는 중요합니다. 네 정말 이 예배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주님보다 먼저 일수는 없는 것입니다.
너무 형식과 격식에 치우치다 보니까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예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형식에 얽매여 버린 예배를 제사와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가져오는 것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뭘 기뻐하실까요?

같이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미가서6:6-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미 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미 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계명은 두가지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들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지켜야 될 계명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행위의 발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다면
이것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을 결국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한국에서 사역할 때 영등포 시립병원을 찾아간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말 그대로 경악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정말 사람의 모습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빵 200원짜리를 사가지고 병 문안을 갔습니다.
그리고 "주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를 열심히 불렀습니다. 암 말기
환자였는데 일주일 후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목사님 이시지유?....감사합니다...
눈물을 막 흘리시는거예요...손을 계속 만지작 거리시면서....
그 때 정말 인생,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단체가 하나 있는데 이스트 베이 자선합창단입니다.
자기의 전문 직업이 있고 가정이 있는 분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자선 합창단을 합니다. 그 합창을 통해 거두어들인 수익금 전액을 아프리카의
고아들과 난민들을 위해 쓰여집니다. 또한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혜택과 결손가정을 도우고 집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쓰여집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내 젊음을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이러한 일들에 헌신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산호세 자선 합창단을 하나 더 만들어서 성대한 공연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모인 수익금 전액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전액 헌금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작년부터 말씀도 전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음악을 통해서 자선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말씀을 통해 그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기노스코 안에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젊음이 있을 때, 아직 건강이 있을 때, 무엇인가 할수 있을 때에
고아원에서 일손이 모자라서 아이들 목욕도 한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하는 곳들과 병원에서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환자와 노인정에
가서 노인들을 위한 자선 공연과 그들의 어깨라도 한번 주물러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행함의 실천을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눅23:26-28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시다가 너무 힘에 겨워서 넘어집니다.
그때 구레네 시몬이라는 한 시골청년을 잡아서 그에게 십자가를 지웁니다.
그리고 백성과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따라오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 달려나와서

"주여! 어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같은 수모를 당하십니까?" 라며 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마라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우리를 위하여 이미 죽으신 예수를 기념하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정확하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너희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

          



성경에는 예수님이 자신을 위하여 우신적이 딱 한번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상에서 돌아 가시기전에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외마디의 절규 외에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 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
우셨습니다.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위해 우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하여 우신 것입니다. 나와 내 친구와 이웃을 위하여
우신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 우신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아직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위하여 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대하게 기념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각 교회에서 정말 좋은 설교를 수백편을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이 행했습니까?
머리로 이해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을 위해 죽을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다면 이제 행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 계획을 세우십시오. 꿈과 비젼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말로
시인하고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머리속에 있는 생각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잠자고 있는것입니다. 꺼집어내서 실행에 옮기십시오.
능력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행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서 열정적으로 삶을 불 태울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 바다를 향해 내리쳤을 때 갈라졌습니다.
모세가 만약 생각에만 머물렀다면 그리고 의심했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지금
바뀌어졌을 것입니다. 만약 다윗왕이 골리앗이라는 거장을 상대로 싸우지 않고
생각에만 머물렀다면 그는 다윗 왕국을 창조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맷돌을 골리앗 장수를 향해 던졌을 때 다윗의 왕국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인생 가운데서 숫하게 만났던 실패와 좌절들 속에서
낙담하며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면 그에게 다윗 왕국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기도했고 행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도와주셨고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그 시작과 출발을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그 일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 놓은 일을 연구하고 답습하는
일들에서 벗어나 꿈과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일을 행 할 때에
이 땅위에 주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우리 기노스코 회원들이 보게될 줄
확신합니다.


<embed src="/files/attach/images/197/140/048/9d102f395488621a6d88aadf0d261245.gif" hidden=true loop=2>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