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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가장아름다운 연애편지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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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는 날 처음으로 캠퍼스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바라 본 것은 사람들이었다.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힘차게 걷는 대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알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이 솟구쳤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며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공부는 둘 째 치고 예쁜 여자 친구를 갖는 것이 첫 번째 꿈이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오직 남자 친구들하고만 지내온 나로서는 정말 말주변머리 없는 촌뜨기 신입생에 불과했다. 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마음은 아주 간절했지만 여학생에게 말 한 번 걸어보기는커녕 앞에 서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진땀만 빼는 경우가 허다했다.

군대에 갔다와서 다시 복학했을 때에도 마음은 늘 똑같았다.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여자친구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바램이었지만, 그런 친구 하나만 있으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지만 달라지거나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란 개나리와 분홍빛 진달래꽃이 온 캠퍼스를 수놓을 무렵, 착하고 예쁜 눈을 가진 여학생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웃을 때마다 귀엽게 생긴 덧니가 드러났고 유난히 가늘고 긴 하얀 손이 순수한 그녀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녀를 본 순간 내 마음은 온통 그녀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녀는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피아노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매일 피아노 협주곡을 음반을 통해 감상하는 것은 물론 즐겨듣는 라디오는 늘 고전음악 방송국에 고정되어있었다. 언젠가 먼 훗날 그녀가 해 주는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싶은 꿈을 꾸며 매일 우리 가곡을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가까이 다가서지도, 말을 걸어보지도 못했으며, 그저 마음으로 애타하며 학교에 갈 때마다 그녀 얼굴 한 번 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어느 날 오랜만에 주일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는 데 누군가 등뒤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그리고 오랫동안 투병생활로 신앙생활에 멀어져 있었던 나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그냥 성당문을 나서려 하고 있었다.하지만 놀랍게도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신부님이셨다.

'신부님이 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일까?'
신부님께서 다시 내 이름을 부르셨을 때 그 부르시는 소리가 분명 나를 향한 음성임을 깨달았을 때에야 나는 걸음을 멈추어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신부님은 내게 다가와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짧은 한마디 말씀
"마태오, 저녁미사가 끝날 즈음에 사제관에 놀러 오겠니?".
나는 그 때까지 사제관에 놀러가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주일학교 학생회에 가입하여 성당을 다니면서도 사제관에 들어가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어둠을 딛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는 나에게 있어 이일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신부님의 말씀이 귓전을 울렸지만 내가 그곳에 가야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신부님이셨다.

'어떻게 우리 집 전화번호까지 아셨을까?'
두려움과 기쁜 마음으로 사제관에 들어섰을 때 신부님은 성서를 펼쳐놓고 있었다. 신부님은 따뜻한 몸짓으로 나를 맞이했다. 신부님은 나를 가까이 앉혀놓으시고 당신이 펼쳐놓은 성서를 읽으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마태오에게 보내신 연애편지라고 하시면서…

나는 그때까지 성서를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성서 말씀을 자주 듣기는 했지만 들은 것은 주일학교 교리 시간에 혹은 가끔 미사 시간에 봉독되는 말씀을 의무적으로 들어온 것이 고작이었다.
신부님께서 펼쳐 놓으신 성서는 누렇게 빛 바랜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성서에는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깨알처럼 많은 글씨가 쓰여져 있었는데 너무나 손때가 많이 묻어 까맣고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신부님이 제시한 대목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중간쯤 지나자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참으려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과 함께 콧물도 나고 나중엔 목소리도 높여 엉엉 울었다.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내가 다 울고 나자 신부님은 방금 읽은 성서대목을 설명해 주셨다. 다니엘서 3장 유다인 세 청년이 불가마 속에서 살아 나온 이야기였다. 세 청년의 삶은 마치 내 삶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세 청년처럼 곤경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을까? 아뭏든 알 수 없는 감동이 나의 온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사실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신부님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처음으로 나는 성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사제관을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었다. 신부님은 나를 매일 초대해 주셨고, 거의 매일 신부님과 성서를 읽고 토론하고, 신부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경청하였다. 어떤 때는 정담을 나누다 보면 하얗게 동이 터오는 때도 있었다. 성서공부를 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평일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봉독되는 성서말씀이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어 짜여져 있음을 알게되었다.
신부님의 임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떠나실 때가 되자 신부님은 그토록 아끼시던 손때 묻은 성서를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그 성서를 학생들과 함께 읽고 가르치라는 엄청난 사명을 맡겨 주시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

-성서 백 주간
구약을 76주간, 신약을 45주간에 걸쳐 성서 전체를 통독하는 프로그램.
그 주간에 읽은 성서에서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모임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발표하는 ‘묵상나누기’가 핵심이다.02)741-4415
  -바오로 성서모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 선포 정신을 따라 성서 지식과 그리스도의 체험이 가정과 사회 안에서 생활화 되도록 할 목적으로만든 프로그램.
1)성서를 따라서
매주 2시간씩 지도자가 성서의 내용과 배경 등을 강의식으로 설명하는 성서 공부 방법.
2)말씀이삭줍기
소그룹으로 나누어 성서를 읽은 후, 마음에 느껴진 말씀을 나누고 문제를 풀어본 다음
전체로 모여 지도자의 강의를 듣는다.

그 때부터 나는 매일 성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성서 말씀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다. 뿐만아니라 성서 말씀은 그 동안 내가 몰랐던 많은 세계를 열어주었다. 하느님과 우리 인생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군부 독재 시절 삭막해져 있던 내 영혼은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신앙의 새싹이 다시 움트고 있었다. 그제야 내 영혼은 싱싱하게 생기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된 희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비우는 삶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목표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다. 아나니아와 아자리아와 미사엘처럼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랜만에 버스 자리를 잡았을 때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여학생이 내 옆에 다가와 섰다. 그런데 마음이 왠지 편안했다. 나에게 가방을 맡기고 서있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학교에 도착해 가방을 주면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녀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녀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한 번도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느낌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동안 변화되어온 나의 삶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나의 얘기를 듣고 자신도 매일 미사를 드리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졸업연주회 날, 나는 꽃 한송이를 들고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가녀린 손으로 힘차게 또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졸업식 날 우리는 멀리서 서로의 길을 축복해 주었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롭게 신학생으로 새출발하는 나를 그녀는 정말 멋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사제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성서공부를 해 온 교우들이다. 성서를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하고 생활하는 교우가 제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가장 말이 잘 통하고 가장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 성서공부 열심히 하는 교우들이다.
올 가을 성서공부 개강을 앞두고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올 가을에도 하느님 말씀을 통해 내 자신의 껍데기를 벗고 무디어진 나의 신심을 날카롭게 벼기고 싶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더욱 하느님을 사랑하고 교우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 옛날 신부님과 함께 성서공부를 하며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던 그 시절이 참 그립다.


안성 공도성당 주임신부


    

          
안녕하세요 자주 이곳에 방문하는 천주교신자입니다.
매달받아보는 신앙잡지에서 읽었는데 은혜가되어서 나누고싶어서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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