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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경적 상담 공부 - 죄책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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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자주 상담에 관한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군요.
괜히 많은 분들에게 기대만 하게 하고....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요즘 여러가지 힘든 일이 많습니다.
힘든 일이 많을 때 중보기도실로 가면 되나요...?
하하하... 어쨌든 오늘은 죄책감에 대해서 짧은 성경공부를 올립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시거나 고민하는 분을 돕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와 해결책을 얻고 싶은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참.... 저는 이런 교제들을 상담이 절반 이상 진행되고
어떻게 성경적 관점으로 삶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
피상담자와 함께 한 주제에 대해 2회 정도 나눠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럼 늘 평안하소서


          

  죄책감에 대하여

  1. 먼저 고민하기

    요즘 젊은 층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말 중 하나는 “나도 내가 용서가 안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용서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며, 용서할 수 없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J씨는 30대 중반의 유학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권위적인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지울 수 없는 몇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거친 폭력에 대해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 맞섰던 일에 대한 기억입니다.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방황하던 시절 예수를 영접한 그는 이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는 자신에 대해 놀라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고 미워하던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에게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 안에 있는 성난 얼굴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눈물 맺힌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 대해 품었던 수많은 부정적인 결심과 분노를 기억해 냈습니다.      
    
    그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신이 너무 나쁜 아들로 여겨집니다.  아버지를 그토록 거부하고 미워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들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너무 못난 아버지 인 것 같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을 통해서 그대로 아들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점점 연약해지고 점점 우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 주의해서 성경 읽기

    성경에 ‘자기 용서(Self-forgiveness)'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편 103:12, 14 와 마 5:7, 18:21-35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실 ’자기 용서‘라는 주제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용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용서(Vertical forgiveness)’와 ‘이웃에 대한 용서(Horizontal forgiveness)'는 풍성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자신이 스스로에 대하여 판단하는 ’내적 자기 용서(Internal self-forgiveness) '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죄책감’이란 무엇이며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습니까?
창세기 3:10은 죄를 지은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a.아담이 발견한 것  
  b.아담이 느끼는 것  
  c.아담이 행동하는 것을 나누어서 생각해 봅시다.  

    아담은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죄를 인식하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악하고 부정적인 것이 인식되고 드러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낍니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발달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죄를 인정하고 죄 사함을 받는 종교를 믿어온 것이 아니라, 부정한 삶을 인정하고 덮어두는 종교를 믿어왔습니다.  한국의 부정적인 역사가 청산되지 못하고, 한국 교회의 어두운 과거가 극복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를 믿고 있지만 전통 종교가 가진 신앙의 틀 속에서 믿고 있기 때문에 죄를 드러내고, 고백하고, 사함을 받는 기독교적 죄 문제의 해결에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탄은 바로 이부분에 역사합니다.  아담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가 죄의 문제를 바르게 보지 못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죄를 부정하거나(창 4:9), 죄를 자랑하거나(4:23), 죄를 느끼지 못한 채(6:5)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아담이라면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합니까?  아담의 행동에서 죄책감과 관련한 문제를 찾는다면 무엇일까요?

  3. 깊이 고민하기

    성경은 죄의 문제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깨뜨린 행위요, 그것을 인식하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죄책이며, 그것을 내가 느끼는 것이 바로 죄책감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모든 죄의 책임을 십자가와 함께 못 박았다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도 이 죄책감이 역사한다는데 있습니다.

    만일 마음을 무겁게 하고 삶을 괴롭게 하는 죄책감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면 다음의 몇가지 질문에 대하여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봅시다.

    a. 당신은 정말 용서받았습니까?

   어쩌면 아직도 그 성도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기도하고 외형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자신만이 아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b. 정말 당신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어쩌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그 사람은 그것으로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정도 죄책감을 느끼면 ‘양심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그 일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 일에 대해 pay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c. 당신은 누구에게 용서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나를..... 왜냐하면 내가 얼마나 악하고 가증스런 인간인지 알기 때문에.....”라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을 용납할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큰 분이십니까?  자신이 큽니까?  용서의 권위는 하나님에게 있습니까?  자신에게 있습니까?  사탄은 우리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역사하고 우리를 용서의 주인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용서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주권은 없습니다.
    
    d. 당신의 죄의 크기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인간의 죄의 크기는 그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마 18:21-35에서는 한 신하가 왕에게 진 빚이 일만달란트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의 능력을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왕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 자신의 죄에 민감하다면 우리의 감정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e. 당신은 범죄자입니까?  심판자입니까?

    그 누구도 법정에서 스스로 형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죄가 있는 우리가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내가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없고, 내가 아직 죄가 있노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심판자가 아니라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 18:21-35에서 모든 사람이 심판자가 아닌 범죄자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롬 3:23)

  4. 내 삶에 적용하기

    현대 심리학에 교회에 들어오고 난 이후 많은 교회에서 ‘내적 치유’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핵심은 과거 자신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얽매고 있는 부정적인 삶의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한 이후에도 해결되지 못했던 많은 영적 문제들이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서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용서함으로 영적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신학적, 성경적 문제들이 있습니다.  결국 영적 자유를 결정하고 판단하며 인정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인용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함께 기도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도록,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도록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좀 더 깊이 연구되고 고민될 필요가 있습니다.

    죄책(죄에 대한 책임)에서 해방되고 싶으십니까?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죄책에 대한 심리적인 느낌(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 길은 자신을 예수님 앞에 전적으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 뿐 입니다.  과거를 잊거나 스스로 용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지만 영적인 참된 자유를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무궁합니다.  그 은혜에 의지하십시오.  그 은혜는 바로 여러분에게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 약속에 의지하는 모든 성도에게 자유와 해방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라에서 가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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