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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마음밭, 길가밭 4 - 누가 선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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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마음밭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을 들으면서
항상 답답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국 ‘옥토’가 되자는 건데….
  그러면 지금 예수 믿고 있는 나는 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다 옥토가 되나….?  
  그러면 이 말씀은 내게 필요가 없는 말씀이군...  
  나는 예수 믿으니까 옥토아닌가....?’  

그런데 실은 저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부족함과 연약함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목회자가 되고 난 다음 다시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아주 간단한 진리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단순하고도 명징한 명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 진리를 심령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의 복음은 없는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에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두 가지 정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첫째,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이지만,
      이미 신앙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용서하지 못하는 성도에게 용서를,
      사랑이 없는 성도에게 사랑은,
      은혜를 잃은 성도에게 은혜를,
      죄를 품고 살아가는 성도에게 회개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성도에게 자신의 참된 가치를,
      분노하는 성도에게 평강을,
      낙심한 성도에게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꾸짖고 권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뚜렷한 푯대를 향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성도에게 있어서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마음밭을 하나의 고정된 밭으로 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밭은 가시밭이 되기도 하고
      때로 돌 밭이 되기도 하고
      때로 어떤 환경과 일에 대해서는 길가 밭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옥토같았는데,
      내 성품을 변화시키는 일은 돌 밭과 같고,
      자신의 미래와 가정의 안정을 준비하는 데는 가시밭과 같고,
      영적이 감각에 대해서는 길가 밭과도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거 너무 많이 왔군요…..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길가 밭의 또 다른 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글이 자꾸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제가 소개하는 밭들은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예에 불과한 것이구요,
이런 예 속에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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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밭 중 마지막 한가지를 더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성도들 중에서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은데
어떤 말씀에 대하여 자기 기준을 가지고
선택적으로 거부하거나 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이... 목사님... 요즘 세상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그런 말씀하는 목사님들이 싫어요.....
  왜 그렇게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세요...
  좀 편하게 예수 믿도록 해 주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큰 교회 나가는 집사님 한 분에게
거의 2시간 짜리 강의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요컨데 이민 목회는 이래야 한다는 겁니다.  
심방은 이렇게, 기도회는 저렇게,
설교는 이런 내용으로, 교회 재정관리는 저런 방법으로....
그 분은 차라리 목회를 하는 것이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시다 보니
늘 목회자와 갈등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표현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큰 교회에 그냥 출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 공부를 하기 전에,
하나님이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기 전에,  
하나님이 그의 영적 필요를 보시고 그를 향한 말씀을 주시기 전에
이미 자신만의 선택의 기준을 세워놓고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우.. 그건 아닙니다.”  
“아... 그거 좋군요...”  
"그건 정말 은혜가 됩니다.  내 마음에 딱 맞습니다."
“그건 요즘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고는 예수 못 믿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어쩌면 예수님을 만나도

“예수님...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씀 준비해서 다시 오십시오.  
  그건 별로 재미없습니다....”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이런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그 자신 중 누가 더 큰 자입니까?  

그의 필요를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권위를 가진 그 자신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때를 따라 적절한 은혜와 가르침과 사랑을 주십니까?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말씀을 고르는 것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따릅니까?  
하나님이 그를 섬기고 있습니까?  

그의 신앙과 삶을 CONTROL하는 권위는 과연 누구에게 있습니까?
누가 그의 신앙과 삶의 주인입니까?

그들의 마음에는 두텁고도 길게 다져놓은 길이 있습니다.  
사탄은 그 두텁고 딱딱한 자기 기준과 가치 밑에 숨어서
복음을 가로막고 복음을 튕겨버립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로 살기를 원하시는 당신에게
지금 도전하고 있는 복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말씀으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 복음을 수용하거나 저항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 밭의 상태를 어떻습니까?


필라델피아에서 마음 찔리고 있는 가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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