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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경적 상담 공부 7 - 질투와 그 결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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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그 결과에 대하여

1. 먼저 고민하기

        C 목사님은 열심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분입니다.  그 두 가지는 그 분의 목회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한 5년 쯤 전이었습니다.  한 자매가 영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교회를 찾아왔고, 그 자매를 통해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녀와 그녀의 언니는 정말 대단한 열심으로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그 자매들에게 쏟은 목사님의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두 자매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몇 개월 전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한 자매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교도소가 가게 된 이유는 얼마 전 한국에서 크게 언론에 보도되었던 단군 신전 건립을 반대하여 단군 신상을 파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좋은 대학을 나왔을 뿐 아니라 신앙 훈련도 잘 받았고 또 젊었습니다.  교도소 사역에 관심이 많으셨던 C 목사님은 그 자매를 너무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제껏 다른 사람에게 해 온 것처럼 최선의 사랑을 쏟아 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두 자매와 가족들이 교회를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보기만 봐도 화가 나서, 너무 보기 싫어서 내가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보기 싫었을까요?  바로 새로 온 자매였습니다.  목사님이 그 자매에게 대하는 것이 너무 시기심이 일고, 그 자매가 가진 것 - 외모와 젊음과 교양과 믿음 등에 대하여 너무 질투심이 일어나고, 그러나 그 자매가 자신들에게 뭐 잘못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목사님이 잘못한 것도 없고.... 하지만 너무너무 화가 나고.... 결국 괴로워하던 두 자매는 그렇게 존경하고 감사하던 목사님과의 관계를 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열심이던 교회와의 관계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가진 감정에 관해서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분노하고 시기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싫어합니다.  그 감정이 우리 자신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한 부분이라면 그 감정의 결과가 우리의 전체 삶에 미치는 영향, 혹은 결과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영적 상태,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특별히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감정 자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러한 감정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들이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조절되지 않을 때 서로에게 깊은 상처가 되고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도 상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특별히 야곱의 가정을 통해서 적절하게 말씀으로 조절되지 않은 감정,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어떤 삶의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주의해서 성경 읽기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인 레아와 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을 일해주고 얻은 사랑하는 라헬과 그 두 여인이 서로 아들을 많이 낳겠다고 바쳤던 몸종이었던 빌하와 실바였습니다.  그 가정은 과연 평탄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너무 쉽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평탄하기에 참 어려운 가정인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을 통해서 야곱 가정의 문제점을 발견해 봅시다.

    1) 창 35:22

        - 르우벤과 빌하와의 신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 왜 실바가 아닌 빌하였을까요?
        - 왜 라헬이 죽고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 빌하에게서 난 단과 납달리의 입장에서 이 일을 생각해 봅시다.

    2)  창 37:3-4

        - 야곱의 요셉에 대한 사랑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 사랑의 결과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까?  
          야곱과 형들과 요셉의 삶의 경우를 나누어서 생각해 봅시다.
        - 형들의 분노는 결국 누구를 향하게 될까요?

3. 깊이 고민하기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의 움직임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 속에서 스스로 속기도 합니다.  형들의 감정에 대해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고민해 봅시다.      

    1) 형들의 시기와 분노는 합당합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분노하고 시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더 많이 사랑받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당연함’이 만들어내는 ‘논리적 정당화’입니다.  내가 아닌 아버지의 잘못된 사랑이 나를 이렇게 분노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리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하는 사람은 이후 자신의 행위까지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창 34:30-31에서 우리는 야곱이 이미 가장으로서의 영적,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분노할 수 있습니까?  예, 분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조절되어야 합니다.
      
      2) 그들의 시기는 무엇으로 바뀌었습니까?  

        여러분이 형들이라면 과연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혹시 시기와 질투를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이 곧 그 대상에 대한 분노로 바뀐 적은 없습니까?   그리고 그 분노를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해 본 적은 없습니까?
        요셉에 대한 형들의 시기는 곧 분노와 적개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을 뿐입니다.

    3) 결국 그것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이 성경 공부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 미움과 증오, 그 분노와 적개심은 결국 누구를 향한 것입니까?  결국 누구에게 죄를 범하게 됩니까?  그것은 분명 요셉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을 보면 화가 나고, 요셉을 보면 적개심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분노는 아버지 야곱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르우벤의 통간이 단순한 한 여인과 남자의 일만은 아니었던 것처럼, 아들들의 분노 또한 단순히 요셉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불평등과 부조화를 발생시킨 아버지 야곱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10명은 나중에 요셉을 팔고 난 후 수십 년간 아버지를 속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분노와 적개심은 아버지 야곱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요셉은 50장 19절에서 하나님이 형들의 잘못에 대해서 하실 일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였음을 분명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단순히 요셉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야곱을 공격하는 것이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4) 결국 형들의 부정적인 감정은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형들 중 한 명에게 물어봅시다.  처음 그들이 시기와 질투를 느낄 때 이러한 결과를 계획하거나 예상했었느냐고 말입니다.  결코 아닐 것입니다.  악한 감정은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와도 같은 것이어서 구르면 구를수록 점점 커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들에게 너무도 무겁게 다가온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편애, 그리고 자신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다가온 차별 - 그것은 분명 부당한 것이었고 그들은 당연히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들의 삶과 마음에 깊은 상처로 뿌리내리게 되고, 그들의 삶은 점점 깊은 죄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5) 형들의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50장에 나타나는 이들 형제들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요약하면 ‘두려움’과 ‘위로’입니다.  50장 15절을 봅시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그들이 범했던 죄의 결과를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요셉과 형들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죄의 결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은 그 일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하여 보디발의 아내를 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두려워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대부분 오해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드러나는 것, 그래서 그 죄의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할 때를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죄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때까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 형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을 때에는 자신들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죽고 나자 그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아닌 죄의 실존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어디쯤 존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이들의 삶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위치입니다.  형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이 느끼는 하나님은 아주 먼 곳에서 그들에게 불평등한 삶을 제공했던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크게 보였던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랑을 주었던 아버지 야곱에게 가려 있었고, 아버지를 통해서 본 하나님은 역시 그들의 분노와 범죄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인생은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고 왜곡된 것입니다.

4. 적용하기

        요셉에게 있어서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아버지로부터 원하지 않았던 편애를 받았고, 어려서 생모가 죽었고, 형들이 자신을 팔아 넘겼고, 보디발의 아내는 거짓으로 자신을 고발했고, 오랜 기간 옥에 갇혀 있었지만 요셉이 자기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자 했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야 말로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악한 감정과 원한과 복수심을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기 인생을 ‘사람의 악함’으로 채워 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하나님과 deal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그 인생을 내어놓았더니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선하게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요셉은 아름다운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여 하였으나 나는 당신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니 하나님은 당신들의 악한 마음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질투나 분노를 벗어날 수 없는 분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에 대한 비성경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닌 그 사람의 잘못이므로 나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합리화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내가 희생당하고 손해를 입었으므로 나도 그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고 사는 것이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라고 여기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이 있다면, 혹은 그런 분이 주위에 있다면 질문 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어디쯤 위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저 먼 곳에 두고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람을 통해서 그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야곱의 열명의 아들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왜곡된 사랑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상처가 그들의 삶이 결정하는 비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편애를 주었던 야곱보다 악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통해서 사람이 하는 일을 바라본 요셉은 그 모든 분노와 슬픔을 이겨내고 고난과 고통의 세월 속에 자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삶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에 역사하는 사탄의 놀라운 힘과 그 결과를 보셨습니까?  그 감정으로 말미암아 결국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황폐해지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황폐해지는지를 보셨습니까?  그 감정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삶을 지배하고 신앙을 지배하게 되는지를 보였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맡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통해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통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필라에서 가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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