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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머니.. 엄마..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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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엄마...  
  나누고 싶은 글이라 이곳에 옮겨봅니다.


  2003.02.17.월요일
  딴지일보

          
나이가 들면 죽음이라는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나 봅니다.

어린 시절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알 수 없는 공포와 슬픔이 밀려오곤 했었는데,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주변에서도 영면을 맞이하는 사람을 드문드문접하다 보니 죽음은 삶 한쪽에서 늘 우리와 함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어머니는 작년 9월에 돌아가셨습니다. 83세에 운명하셨으니 호상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했었지요. 어느 부모의 죽음에 있어 호상이라는 말이 적당하랴만, 그래도 자식들 다 장성하고, 몇년을 병환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으니 슬픔 속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장례까지 치뤄드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벌써 다섯 달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특별하게 어머니의 부재를 일상에서 크게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입관을 하면서 바라본 어머니의 잠든 모습이 너무나 고와서였을까,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어느 곳에서 편하게 주무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 뿐, 왜 이렇게 당신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돌아가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한 달에 서너번씩 불청객이 나를 찾아옵니다. 초겨울 스산한 바람처럼 나 홀로 잠든 방을 가득 메우는 그 불청객은 유년의 기억 한 자락을 동반한 채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머물다 사라지곤 합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파노라마처럼 수많은 기쁨과 슬픔, 아픔과 통한의 장면들이겹쳐지지만 내 어릴 적 기억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내 아홉살 새벽 풍경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그 해 겨울, 잠결에 옆이 허전해 실눈을 뜨면 이불 속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남겨진 어머니의온기를 더듬다가 엉거주춤 기어와 방문을 열었었고, 그 때마다 어머니는 마치 그림처럼 동트는 새벽을 비질하고 계셨었습니다. 뽀얗게 먼지가 이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고 사악 사악 정갈하게 마당을 청소하시던 모습...

내 뒹굴던 이불보다 더 따뜻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어, 다시 흐믓하게 이불로 기어들어가던 아이는 머리맡에 놓여진 과자 봉지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새벽에 어머니가 놓아주신 과자봉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는 몽롱함 속에서 과자 한 개를 입에 품은 채 다시 꿈나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 두 명의 아이들도 잠자리에서 조차 제 어미에게 떨어지려 하질 않아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의 침대에서 혼자 잠을 잡니다.

늦게 퇴근해도 잠들기 전에 꼭 책을 한 줄이라도 읽는 습관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이 자는 방에 끼어 들어가 불을 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맞벌이 하는 아내의 피곤에 뒤늦은 고단함을 던져주고 싶은 생각도 없어 나는 아이들에게 부부의침대를 빼앗긴 채 2년여를 살아왔습니다.

불청객이 나를 찾는 시간은 바로 새벽 두세 시쯤, 읽던 책을 접고 방의 불을 끈 그 찰나, 혹은 어쩌다 너무 일찍 눈을 떠버린 새벽녘 입니다. 어머니와 어머니에 엌힌 기억이, 특히 아홉살 겨울 새벽에의 기억이 몸서리쳐지게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갑자기 방의 벽들이 마구 좁혀들어오고, 형광등 불빛이 서럽게 쏟아지는 걸 느끼고, 이 새벽 방문을 열어봐도 어머니는 없을 것이며 이제 살아 생전 어머니 모습을 어디서 다시 보나라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에 커억하고 한숨을 쉬어 봐도 마음을 달랠 수가 없습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눈물이 쏟아질까봐 어쩌지도 못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란 무게와 지금의 내 나이는 어머니, 아니 엄마를 부르며 혼자 울 수 있는 여건 조차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든 아이의 발을 만집니다. 꼼지락 거리는 아이의 발은 죽음 혹은 외로움의 자리에 생명력을 채웁니다. 잠들어 버린 아내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내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내의 품속에서 어머니의 가슴을 찾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내는 내 마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어서 좋습니다. 아이의 발이, 아내의가슴이...

며칠 전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아내에게,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랬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아내는 무심하게 티비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 당신이 내 맘을어찌 알랴.. 혼자서 술만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왜 그렇게 서럽던지... 어머니가 살아있었으면 내 맘을 벌써 헤아렸을 텐데...

그런데 어제, 잠결에 머리맡에 무언가가 걸려, 손을 뻗쳐보니,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물체가 손에 잡혔습니다. 불을 켜고 보니...

에이스랑 빠다 코코낫 과자 두개였습니다. 아이들은 포장이 촌스럽다며 잘 먹지도 않아 우리집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과자.

아아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그 새벽에 걸신이 들린 듯, 봉투를 뜯고 과자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고.. 아마 서너번은 더 잠결에 과자를 입에 넣은체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침대 옆에 빈 봉지가 과자 부스러기와 함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아침처럼 부엌에서는 아내가 내는 도마질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랜만에 생활기사 쓰는
뚜벅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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