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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회 안에 들어온 미신적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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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거기서 청교도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교회가 성경에 대하여 무지해지면 미신적 요소가 판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갈라디아서 4장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9-11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그당시 율법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율법교사들은 날과 절기, 안식일 등의 종교적 행위 자체가 행불행을 좌우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인들은 불행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여 형식적으로 종교행위를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 당시 율법교사들이 날과 절기의 종교적 행위 자체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는 가르침을 반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고 책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사탄과 죄로부터 구원받은 성도가 또다시 세상사람들처럼 천한 초등학문인 미신(기독교 미신)에 종노릇 하려느냐고 책망하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서도 이런 미신이 많지 않습니까? 주일 성수를 하지 않으면 행불행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십일조를 덜하면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된다거나, 또는 기도를 좀 적게하거나 쉬었을 경우 사고가 난다는 미신들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성도들을 보면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율법주의에 묶여서 구원의 감격이나 감사없이 미신적으로 종교행위에 종노릇 하면서 삽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에게 종교적 행위 자체는 행불행을 결정하는 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교회당 안에서의 종교행위는 내용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종교적 행위를 했다고 해도 내용이 없으면 그 종교적 행위는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외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도들은 그 종교적 행위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공포심으로 종교행위를 합니다. 이것은 복음이 왜곡된 현상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이런 모습이 미신적 행위라는 것을 제가 간단한 예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성도님이 십일조를 덜 했더니 하나님께서 손해를 보게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다른 성도는 십일조는 잘 했지만 십일조의 근본 정신(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신앙고백)을 망각하고 십분의 구를 가지고 사기치고 뇌물주고 악한 곳에 돈을 사용했는데 손해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모든 예배는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일 낮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사고가 생긴다고 하는데, 주일 오후 예배나 수요일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는 사고가 생긴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관성에 모순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경 어디에도 주일 낮 예배만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은 공포심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이방종교의 미신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신앙생활은 구원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 자발적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미신과의 차이입니다.

만약 어느 성도가 이런 자유함 때무에 주일성수나 십일조 행위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 성도는 스스로 신앙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적 행위를 했다고 해도 그 종교 행위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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