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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경적 상담 - 자아상에 대하여

첨부 1


지금 뉴욕의 모임에 성경 공부를 하러 떠납니다.
역시 게으름 때문에 공부하러 가기 직전에서야 성경 공부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언제 이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흐흐흐

          
                               자 아 상

  1. 먼저 생각하기

            얼마 전 한 청년이 내게 와서 “요즘 자괴감이 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괴감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자신이 싫어지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 청년은 미국에 와서 목표 했던 일도 잘 안되고 생활도 어렵고 상황도 그리 좋지 않고 해서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 자기 잘못인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이 자괴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청년에게 “좀더 깊이 그리고 철저하게 자괴감에 빠져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 자괴감이 진실로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된 것이고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좀더 깊은 자기 절망에 빠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할 수 있는 사람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알게 되고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삶의 새로운 목표를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다소 왜곡되어 있기도 하고, 다소 과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되고 백성된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벌레같은 나!”의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모든 것이 내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며 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무능하고, 할 수 없고, 감히 나 같은 게 어찌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나의 모든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도움 없이, 하나님의 인도 없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하는 것과 우리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할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주의해서 성경 읽기

    사도 바울은 여러 편지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음의 세 성경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고전 15 : 9 - 10  : 사도 중 지극히 작은 자
  
                        ->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10).

  2) 엡 3 : 8 - 9 : 모든 성도 중 가장 작은 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교회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8下~9)
                  -> 사도 바울의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3) 딤전  1: 15 - 16 : 죄인 중의 괴수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16)
                  -> 본이 되는 삶의 의미
    
    3. 깊이 생각하기

           이 세 본문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세 본문이 가진 공통점과 차이점을 나누어서 생각해 봅시다.

  1) 공통점

           세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원래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무익한 자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작은 자 중에 작은 자였을 뿐만 아니라 죄인 중에서도 괴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지금은 어떻습니까?  바울이 세 본문에서 함께 고백하는 것은 지금 자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훌륭히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는 무익한 존재였을지라도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해 진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비참한 과거와 감격스런 현재를 연결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바울은 교만한 사람일 뿐입니다. 바울은 세 본문에서 자신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은 은혜와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자신이 변화된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분명한 목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차이점
  
    a. 기록 연대와 그 의미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차이는 성경의 기록 연대의 차이입니다.  세 성경은 각각 다른 사람에게 기록된 편지입니다.  고린도전서보다는 에베소서가 6 - 7년 정도, 에베소서보다는 디모데전서가 3 - 4년 정도 뒤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 바울의 자신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더 낮아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더 많은 죄를 지어서 점점 죄인 중에 괴수가 되어가는 것일까요?  사도 중에 가장 낮은 자가 타락해서 10년 후에는 죄인 중에 괴수가 된 것일까요?
            그가 이렇게 고백하는 까닭은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하면서 자신의 무익함과 연약함과 악함을 더욱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바울과 같이 자신의 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깨달을수록 주님의 은혜에 대한 더 깊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b. 그 깊어짐의 차이

            따라서 우리는 이 연대를 달리하는 세 본문의 바울의 자기 인식의 차이를 깊어짐의 차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무엇이 깊어지고 있을까요?  
            첫째, 자신의 무익함이 대한 깨달음이 점점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저 사도 중 가장 작은 자, 제일 늦된 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아가서, 그는 성도 중 가장 작은 자 중의 작은 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고 생각해보니까 자신의 죄의 깊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낳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 앞에서 자신을 죄인 중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둘째, 그는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목적에 대해서도 점점 깊은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고전 본문에서는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라는 단순한 고백에서, 에베소서에서는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게 하려 함이라!”고 이방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에서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 즉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그 목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택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그 목적대로 살고 있습니까?  
            셋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의 고백뿐 아니라 그의 삶이 점점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전 본문을 기록할 때 그는 3차 전도 여행 중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서를 옥 중에서 기록했습니다.  고난이 복음에 대한 그의 열정을 조금도 식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 말기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 나와 디모데 전후서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내가 과거에 얼마나 무익한 존재였던가?  그토록 무익한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 평생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점점 깊이 깨달아가고, 그리스도와의 보다 깊은 교제의 삶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처럼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4. 적용 - 바울의 감격을 그리워하며


            디모데전서 1장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지금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자기 삶을 회고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1:12부터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그런데 14절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그가 고백하는 첫마디는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감탄사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야, 지금 내가 네게 하는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격스러운지 아느냐?  이 말은 모든 사람이 듣고 믿어야 하는 말이다.  내가 죄인 중에서도 괴수였는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런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16절을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짧은 두절의 문장 가운데 감탄과 선언과 고백과 그리고 반전이 연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크신 긍휼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들 디모데에게 목소리를 높여서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17절의 찬양을 이어갑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바울의 영혼을 울리는 감격이 우리의 마음에 전달되고 있습니까?  이런 구원의 감격,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바울은 고후 4 : 7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자기 인식은 지극히 심플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질그릇과 같다는 것이요, 둘째는 그 질그릇 속에 보배가 들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인생을 가치있게 하는 큰 능력이 오직 하나님에게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고백의 핵심인 이 두가지 – “자신의 질그릇됨”과 “보석과도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두 가지를 깊이 묵상하고 진심으로 인정할 때 바울이 바울되고 성도가 성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가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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