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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 신앙이야기(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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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이상돈의 유년시절(幼年時節) **

먼저 늘 애정을 갖고 읽어 주시는 갈말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우기자님의 꽃선물에 감탄했습니다. 그동안 뭘 그렇게 우기기 좋아하는 분이신데 이름까지도 “우기자” 인가 궁금했었는데,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고 늘 우기시며 사는분 같습니다. 하하하하하... 지나친 농담... 역시 기자하려면 저처럼 이씨가 제격인데 말입니다.. “이기자” 좋지 않습니까? 하하하...다시 얘기를 시작 합니다..... 어린날을 추억하려하니 어느덧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먼 옛날 철부지 어린이가 된 느낌이 듭니다..

그때 그 시절 제가 어렸던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요즘같은 봄날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상은 헐벗고 굶주려 빵빵한 올챙이 배를 드러내놓고 다니던 친구들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우리 형제자매들과 좀 다른 모습의 친구들이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나서 가슴이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걸 기억할수 있을때만 해도 “재건운동” “새마을운동” 등을 통하여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보리고개를 극복하기 시작했을 때인데도 이정도 이니 그전에야 말로 형언키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먼저 인터넷사이트  http://www.worldvision.or.kr 를 잠깐 소개합니다.

그 옛날 우리나라가 전쟁후유증으로 불쌍한 여자나 어린이등 노약자(老弱者)들이 굶어 죽어갈 때 많은 도움을 줬던 국제 구호단체인데 지금은 우리나라도 주도적인 입장이 되어서 구호단체의 선봉에 서게 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합니다.. 늘 감사해야할 일입니다.

봉사하시는 분들많지만 그중에는 걸어서 지구를 몇바퀴 돌았다는 한비야 님도 있습니다.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하며 지금은 이라크에 파견나가 있는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분이며..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 우리주위에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이 많은 갈말가족들 중에는 당연히 “참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여 진즉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 많을줄로 생각되는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어디가서 외식한번 안하면, 굶어죽는 사람 여럿 살릴 수 있겠더라구요.. 음 ~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아무튼 보시는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는 그처럼 심한 어려움을 격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의 얘기 같지만 사실은 불과 몇십년전 50년대의 우리나라 모습인 겁니다. 그때에 정말 따뜻한 사람들의 구호의 손길이 있었기에 죽을 목숨 살아서 지금은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도 우리 주위엔 많을걸로 생각되는군요.

다소 엉뚱한 얘기를 좀 한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태어난곳은 충청도 서산의 한 농촌입니다. 딸을 낳을때마다 오동나무 한구루씩 심으셨던 아버지 이승우님과 어머니 송정남여사의 사이에서 총11남매중 9번째인데 현재는 6남매중에 넷째입니다.

5명은 어디 갔느냐고요? 궁금하신가요.? 설명드리죠.. 현재 생존해 계시는 큰형님과 바로밑 큰누님 “벽오동나무와 아버지” 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리고는 그 밑으로 내리 5남매가 하늘나라에서 지금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습니다..

가운데 5남매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늘나라에 갔다는데,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으니, 저의 부모님 가슴은 아마도 공동묘지(共同墓地)가 되었을 것 같더군요.. 제 바로위 형인 서해바다 이선장 위로 이처럼 많은 형과 누나가 대개는 10세 미만에 죽은 것 같은데, 그 시기가 대체로 가장 어려웠던 50년대 입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세월을 살다가신 저의 부모님 이신거 맞죠, 맞습니다. 맞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 “나 살아온 과정 책으로쓰면 몇권은 쓸수 있을것이다.” 라는 말씀 틀림없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기억하다보니 언제나 그렇듯이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입니다. 갈수록 얘기가 엉뚱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참!

아무튼 그런 아버지는 당시에 목수일을 하고 계셨던 관계로 제가 철들어 기억할수 있는 기간에는 우리 가족들이 굶주리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에는 세상이 온통 파괴되어 있어서 그걸 수습하는데에는 목수야말로 손발이 열개라도 모자랐을 테니까요.. 그런 덕분에 우리 형제자매들은 올챙이 배를 면할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어라! 이렇게 나가다간 아버지 자서전 쓰게 생겼네요. ㅎㅎㅎ 하여튼 나중에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게 아니라서 잠깐 연습해 본겁니다. 에~이 갈수록 재미없다구요.. 그러나 핑계를 댄다면, 이야기의 진행상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그려..  아니 재미 있었다구요.. 고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는 죽지 않고 열심히 잘 살았는데, 그때당시의 어른들이야 가슴에 피맺힌 한이 남아 있겠지만, 철부지 어린애들이야 어디 그런가요. 그냥 아름다운 추억들만 많이 회상하게 됩니다.. 요즘같은 봄날에는 나물캐러 나가는 누나들 뒤 꽁무니 따라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니고,

아련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지저귀는 종달새 노래 들으며 너~울 너~울 날아다니는 나비 쫓아다니고, 들에 산에 피어나는 이름모를 꽃들과 대화 하면서 놀다보면 어느덧 개구리 뛰쳐나와 동무하자고 합니다..필설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길이 없고 그냥 한마디로 “천국” 됐습니까? 하하 ..... !!!!!

언제라도 이때만 생각하면, 나를 그런곳에서 성장하게 해준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며, 동시에 휘뿌연 도심의 빌딩숲속에서 자랄 수 밖에 없게한 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낼까 합니다..

옛 생각에 한없이 빠져들 것 같아서~ 웬 핑계..사실은 제가 이게 본업이 아니라서요.. ^-^  한없이 컴퓨터 앞에만 있을수 없습니다..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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