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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도이상돈의 신앙이야기(제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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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이야기 하다말고 한참 뜸을 들이니까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가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한번더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독자님들께서 지금까지 제 신분이 평신도 아차! 이건 불교에서 부르는 호칭이고 그냥 일반성도가 쓴 글 이라는 생각 하면서 제 글을 읽어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연의 저 깊은 곳에서 “성도 주제에 잘난 척 하기는” 하는 소리를 가끔 들으신 분도 혹 있으셨으리라 사료 됩니다.

사랑이 많으신 갈말가족 들이라 그처럼 터무니없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싶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시험에 들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 믿음의 형제자매 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어 왔다면 하나님께 잠깐만 맡겨 주시라고요..

아니!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가져가셔서 영영 안 돌려주면 어떡하느 냐구요.
음~ 그렇군요. 걱정되긴 하겠지만, 설마 하나님께서 치사하게 그런 것 떼어먹기야 하실라 구요. 달라면 언제라도 이자까지 계산해서 돌려주실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 하느냐고 요... 그것참~ 할말 없네.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서.....! 난감 하군요.. 하하하하...

그래도 부탁 들어주실 거죠. 고맙습니다. 왜 이렇게 몇 번씩 단속하는가 하면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달리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는 잘못해서 “어라 이거 목사님들을 감히 핍박하고 있네” 하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음 입니다.. 그것은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원래의 뜻이 아니라서요. 고맙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군요. 이야기 계속합니다. 앞장에서 교회 나가겠다는 아내에게 “부인 마음대로 하시요” 그랬다고 했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면에서는 “음~ 나보다는 신앙에 대해서 많이 어리니까 교회에 다니다 보면 내 말이 옳은걸 깨닫게 되고 언젠가는 내 뜻에 따르겠지” 생각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럼 함께 절에라도 다녀요.” 하고 물귀신 작전을 쓰면 어떡하나 “그땐 할 수 없이 절에 다니지 뭐” 하여튼 별별 생각을 다 했었지만, 다 열거 할 수 없고 결론만 말씀  드리면, 결혼 후 지금까지 주~욱 교회 다니면서 아이들 모두 “기독교 모태신앙 인” 만들어 놨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무지하게 고집이 센 아내로 인해서 제가 “참사랑”을 깨닫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하다보니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요. 끝까지 하려면 한이 없을 것 같고 앞으로 틈틈이 말씀 올리기로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아내이기에 처음 이곳에 정착하면서 다니기 시작한 개척교회에 지금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교회의 이름이 네 번 바뀌고 목사님 세분 바뀌고 교회의 장소도 다섯 번 바뀌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처음부터 함께 교회에 출석하던 교인은 지금은 단 한분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처음부터 약 십 오륙년 함께 교회에 출석 하시던 K집사님 내외도 인내의 한계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얼마 전에 다른 교회 찾아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만 보더라도 그동안 제 아내에게 일어났을 수많은 갈등과 인고의 세월들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요.. 정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 할 때마다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겠지요? “그거 봐라 그것 봐, 내말 안 듣더니 부인.. 참 욕보십니다.그려..껄껄껄..” 이렇게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여튼 이 신랑들이란 게 평생 도움이 안돼요.. 저만 그렇다고요.. 죄송합니다.. 하하하하...그런 아내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힘들 때마다 새롭게 힘을 얻게 하신 분은 박 권사님이신데 그분은 우리 아이들이 외할머니로 부르는  동시에 아내의 친정어머니이시며 얼마 전 제 꿈속에서 팔순잔치 거하게 하셨던 저와도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는 분이십니다.

그냥 “장모님” 하면 될 걸 하여튼 제가 좀 멍청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요. 장모님께서 그렇게 고비 고비 마다 함께 힘들어하시면서 기도를 해 주셨는데 기도 하신후의 결론은 항상 이렇습니다. “지금 새로 오시는 목사님은 더 좋으신 분이니까 잘 섬겨라..” 혹은 “교회가 이사하면 크게 부흥할 것이니 목사님 뜻에 순종해라..”

늘 이러시니 어려서부터 어머니 아니면 죽을 목숨 여러 번 건진 제 아내이고 보니 어디 감히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약간 바보 같다 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려서 어머니 아니면 죽을 목숨 살아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내원.. 참..! 하하하...

첫 시련은 H교회에서 함께 동업(?) 하던 실질적인 물주인 묘령의 아가씨가 시집을 가게 된 것 으로부터 시작 됐습니다. 대부분의 자본금을 돌려주고 나니 남는 것이 별로 없어서 겨우 건물 한 칸 을 교회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동료 C목사님께 어린양 들을 인수인계 하시고 강원도 횡성 변두리에 땅을 좀 사셔서 그곳에서 목회 하신다고 떠나셨습니다.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은 떠나시게 된 것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에 정착하며 요양 겸해서 가신 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제 아내가 한동안 밤마다 S목사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 같더군요..S목사님에 대한 후일담 이지만 그렇게 이사 가셔서 공기 좋은데서 사니 건강도 좋아졌고, 다시 목회를 하고 있으니 여름에 피서 겸해서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놀러 가기도 한 것 같던데요.. 몇 년 후엔 다행히 그곳의 땅 값이 많이 올라서 땅 투기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덕분에 여유가 좀 생기셔서 아이들 학비 및 이것저것 해결하고 다시 강원도 더 깊숙한 곳으로 이사 하셨다가 처음에 잠깐 언급 했듯이 지금은 충남 홍성에서 또 목회를 시작 하셨습니다..

여담이만.. S목사님 아드님도 목사가 되셔서 군목으로 계신데 현재의 계급은 소령으로 어느 사단 교회에 주임으로 목회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얼마 전에 오셔서는 그 아드님에게 제 아들(2003년 4월 현재 병장으로서 군종으로 군복무중임) 이 있는 곳에 전화라도 해 주라고 하셨다고 좋아 하시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 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 하십시요.. “하나님의 가호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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