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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요단강을 건너 땅을 차지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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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요단 동편에 서 있는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건너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입국을 앞에두고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하여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선두에 서서 갈라진 요단강을 도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흔히 요단강을 가나안의 상징인 천국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 땅은 완전히 이루어진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과제였습니다.
반대로 애굽은 자유는 없지만 고기가마가 보장된 곳이었습니다.
어느 곳이 더 나을까요?

요단강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이 지형이 갖는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곳은 성경인물들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는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사울과 다윗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고, 엘리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고, 신약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때에도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는 장소였습니다.

여호수아 3:1의 구절 중 '이스라엘이 싯딤에서 떠났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싯딤에서 떠남을 마지막으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영원히 정착할 땅으로 가야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요단강 도하 사건은 그들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줍니다.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은 완성된 천국이 아니라 싸워서 정복해야 할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루어진 약속의 땅을 맛보았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땅 또한 가나안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는 아직도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머뭇머뭇하는 사람이 아닌지를 진지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즉 '하나님나라를 맛보았지만 승리와 기쁨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2지파의 연합으로 이제 한 국가를 이루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될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넘으로써 가나안 7족속을 소멸시키고 진정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이 되게 하기 위해 힘써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성도)들은 이 땅의 수많은 가나안 7족속의 땅을 빼앗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이 넓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인 투쟁과 강압과 이기심에 의한 땅의 확장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인한 확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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