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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회는 이 시대의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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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은 공산정권의 억압에서 <자유를 얻고자> 죽음을 무릎쓰고 대동강을 건넙니다.
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도 종종 모슬렘들의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시댁에서 쫓겨난 며느리가 물레방아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 지나가던 나그네 중 처음 발견한 한 남자가 그녀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는 일>이 전설처럼 전해져 옵니다. 물레방아간은 우리나라의 일종의 고대 '러브호텔'로도 이용되어 왔지만 사실은 이런 아픔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에 종교가 죄인들의 도피성으로 이용된 것은 명동성당이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시위를 하기 위한 곳으로 악용되다 보니 그 장소가 조계종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대의 진정한 도피성,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이든 불가시적인 교회이든 억눌린 자들, 가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사명을 맡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호수아 20장은 도피성 제도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도피성은 레위지파가 거하는 24개의 성읍 중 6개를 선택하여 지정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에 12지파가 있었는데 전국 각 지파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던 <제사장 지파였던 레위 지파>의 성읍 중에 이 도피성을 제정해 놓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즉 이 성은 레위공동체로서 사실 도피성이라는 피동적 의미가 아닌 영접의 성이라는 적극적 의미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토라(율법)를 가르치는 이 제사장 공동체들은 부지중에 오살하여 도피하는 자들을 끌어들이는 공동체, 안식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피성에 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실수로 인하여 사람을 죽인 자들이지, 결코 고의로 범한 자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짐짓(고의로) 범하는 죄를 지은 사람들은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려도 용서받지 못하고(제사자체가 힘들고), 여호와의 총회에서 끊쳐지는 것 같은 심각한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실수로 인한 범죄로 드리는 것이었다면 한국교회는 실수로 인한 죄에 대하여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는 죄였다고 덮어주고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비교적 고의로 범한 죄에 대하여만 그 죄를 적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성도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도피성 제도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지 중 오살한 자에 대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피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련하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레위공동체는 부지 중 오살한 자가 도피하여 왔을 때 세가지 의무가 있었습니다. 첫째, 영접하는 것이었고 둘째, 살 장소를 주는 것(생계의 방편을 줌)이었고, 셋째, 피의 보수자의 손에서 지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도피성 제도를 환하게 빛내 주신 분이셨고 열매를 맺게 하신 장본인이십니다.
그 분은 먼저, 죄인과 세리를 영접하여 주셨고 병든자와 고아와 과부를 소중히 여기셨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해 억눌린 사람들을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둘째,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요한복음 14장 1-3절).
셋째, 사탄의 정죄에서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로마서 8:1).

그리스도 안에서 도피처를 발견한 교회(성도)는 이 세상의 도피처, 이 시대의 도피성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불신자를 <영접하는 성>이 되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피할 도피성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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