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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경의 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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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말씀은 궁극교회 예배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요한계시록 22장 18, 19절)

♣ 서론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성경을 한 구절이라도 더하거나 제해도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근거로 본문을 인용하곤 합니다.  또한 66권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영적 이치가 완벽하게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기독자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기독자라면 이러한 신앙신조를 가지고 성경을 대하고, 주님을 믿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처럼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지식적으로 성경의 완전성(完全性)과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것은 신앙의 기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기독자들이 성경의 완전성과 무오성을 신학적 교리적 지식적으로 믿는 것으로 그치고 신앙사상과 정신적인 면에서는 성경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식으로 주님을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말로는 성경 외에 더하거나 제하는 것은 잘못 내지는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실제 신앙사상과 정신적인 면에서는 성경 외에 추가하거나 제하는 식의 신앙성분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기본적인 신앙 면에서의 성경의 완전성과 무오성을 논증하지 않고 신앙성분과 사상적인 면에서 성경의 완전성을 사실상 부인하는 기독자들이 바른 성경관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기술하고자 합니다.
♣ 말씀을 대하는 자세
18, 19절에서 ‘예언의 말씀에서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을 더 받게 되고, 말씀에서 빼 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못 들어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라고 했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어차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니까 전하는 사람이 예언의 말씀에서 더하느냐, 빼느냐 하는데 따라서, 또한 듣는 내 입장에서도 예언의 말씀에서 더하느냐, 빼느냐에 따라 자기에게 엄청난 영원한 궁극적 결과가 생기기 때문에 교회라 할 때는, 성경을 들고 가르치는 곳이라면 건물이 문제가 아니고, 조직이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고, 간판(교단, 교파, 출신 등)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고, 예배의식 순서나 절차가 문제가 아니고, 예배당 건물 안이든 다락방이든, 2층이든 3층이든, 지하실이든 산 속이든, 바닷가이든 감옥 속이든, 가정예배 건 심방예배 건 구역예배 건, 전도를 하건 기도를 하건 바른 가르침인지를 분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분별하라는 것이 성령님의 말이요, 성령님의 역사요, 안 하는 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분별을 하는데 있어서 첫째, 하나님 말씀이냐?  둘째는 가르치는 목적관이 어디냐?  즉 세상이냐, 천국이냐?  셋째는 액면적으로만 성경구절을 끌어다 붙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냐?  넷째는 교리적인 가르침이냐?  다섯째는 성분적인 면에서의 가르침이냐?  그러니까 말하는 그 사람 속에 누가 주격이 되어 가르치는 것이냐?  그 말하는 사람의 감화성이 어느 쪽 사상으로 감화된 것이냐?  또한 듣는 자기는 성령님에게 감화되어 듣고 있느냐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쌍하고 측은한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성경에 맞는지를 분명히 구별, 분별하고 말하는 그 사람의 감화성과 목적관을 이치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은 지금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어떻게 듣고 받느냐에 따라 너에게 엄청난 결과를 안겨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별해야 됩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 이라고 하는 것은 66권의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66권의 성경책에는 대강 훑어보면 우주만물의 창조가 들어 있고, 개인의 생활과 사건이 들어 있고, 단체의 생활과 사건이 들어 있고, 사회의 생활과 사건이 들어 있고, 국가들의 생활과 사건이 들어 있고, 교회들의 생활과 사건이 들어 있고, 꿈과 이적과 기사와 표적과, 음성과 시와 노래로, 춤으로, 편지로, 비유로, 전쟁으로, 살인으로, 시기로, 질투로, 사랑으로, 사단 마귀 귀신 용 등 악령의 활동으로, 물고기와 날짐승과 동물들의 활동으로, 천군 천사들의 활동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로, 물의 심판과 불의 심판으로, 지나간 것도 있고 지금 일어나는 것도 있고 앞으로 일어날 것도 있고, 그야말로 성경을 들여다보면 성경은 천국의 축소판이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이 성경 속에서 세상도 보고, 천국도 보고, 영들의 활동도 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활동과 소원 목적도 보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바른 평가를 해서 절대로 영원한 손해를 보지 말고 영원한 인격의 부요와 능력과 실력을 잘 길러서 천국을 소유하고 활용하고 누리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자기를 만들어 오라고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 66권 구구절절이 모두는 우리 각자 자기에게 다 해당이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활동, 사건, 말씀에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깨닫고 가져야 할 진리이치가 들어 있고, 이유가 들어 있고, 우리의 일이 들어 있고, 우리의 사건이 들어 있고, 우리의 주장이 들어 있고, 우리의 결산이 들어 있습니다. 
말(言) 속에 말(言)이 들어 있습니다.  활동 속에 말이 있고, 사건 속에도 말이 있습니다.  글자적 액면적인 말만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말만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 말씀, 의사,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와 동기와 목적이 있습니다.  쉬운 예를 들면 인간도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이니 먹고 살려고 그 일을 하느냐,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하느냐, 아니면 심심해서 그 일을 하느냐?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인간 마음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활동만 보이지 활동을 하는 그 이유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활동이나 사건은 그 이유와 동기와 목적과 뜻과는 별개일 수도 있습니다.  활동 자체가 꼭 그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활동을 이렇게 할 때 그 활동만 보면 이런 뜻 같으나 그 뜻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 일, 사도들이 이적을 행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 귀신들린 자를 고친신 일, 40일 금식기도 하신 일, 앉은뱅이를 고친신 일, 중풍병자를 고친신 일, 소경을 고친신 일, 바다 위를 걸으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 등 이 외에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면을 깨달아 나가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의 일부분이나 액면적 부분만을 붙들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능력을 행하며 살아 보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갖더라 그 말입니다.  ‘40일 금식 기도해서 나도 예수님처럼 능력을 행해야겠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안수해서 낫게 해 준 것처럼 나도 병자 찾아다니며 안수해서 낫게 해 주겠다’ 하며 그런 일들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떤 병자를 얼마나 고쳤는지 모르지만 고친 것은 자기 능력으로 고쳤다고 그러고, 안 고쳐지는 것은 병자의 믿음이 없어서 안 고쳐졌다고 그러지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 내 능력은 가짜 능력이다’ 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있는고 하니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주님께서 불쌍하고 가난한 자에게 떡 먹여 주시고, 고기 먹여 주시고 했으니 이걸 사회구제 사업으로 보고 자신도 예수님처럼 한다고 사회구제 목적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자기가 행동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겠다고 하며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것처럼 자신도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예언 방언을 하고 통역을 한다고 날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처럼 도덕적 불의라든지 남의 작은 잘못을 목숨을 내걸고 지적만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성문적 교리적 이단을 지적만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이적 기사 표적을 비판하며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경에 나타난 이적 기사 표적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예수님이 물위를 걸은 것이 아니고 물이 빠져나가 물밑에 있던 바위가 나타나서 바위 위로 걸은 것이다’ 라고 하며 이적이 아니라고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깨달아 자신이 그런 식으로 나가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이 병자를 안수하다가 사람을 죽이면 크게 잘못 되었다고 하며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 것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안수하다가 사람을 죽인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하는 그 자신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성경을 잘못 깨달아 성경을 부분적으로, 활동적으로, 액면적으로만 받아들여 성경의 본 뜻은 내버리고도 자신은 성경과 똑같이 예수님의 일, 하나님의 일, 복음의 일을 한다고 주장을 하며 자신이 하는 그것이 복음인 양 해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의 부분적인 면만을 주장하며 어떤 일을 한다면 이방종교인들도 그런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표면적 부분적인 면으로만 보면 이방종교인들이 하는 일이나 기독교인들이 성경대로 한다고 하는 일이나 같은 일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이 같다는 것은 목적과 개념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생명수를, 진리이치를 전해야 할 기독교가 이방 우상종교와 손을 잡고 일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같고 질이 같으니까 손을 잡고 같이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아무리 봐도 앞에서 말한 사람들이 보는 그런 일반적 개념으로는 이 성경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일들은 성령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일인데 그들은 그것을 일반적인 활동으로만 보고 있으니 기독교를 일반 우상종교와 똑같이 보게 되고, ‘모든 종교는 다 똑 같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기독교가 불교나 유교나 미신을 믿는 거나 똑 같아져 버렸습니다. 
누가 그렇게 똑같이 보게끔 만들어 놨느냐?  기독교가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을 이방우상 귀신들과 똑같은 차원으로 앉혀 놨습니다. 
또 어떤 교파에서 어떤 부분적인 면만을 강하게 주장을 하니까 처음에는 그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다가 불신세상이 알아주고, 교회에서 알아 줄 정도로 덩어리가 커지니 어떻게 해서 커졌던 그건 상관없이 그만 그 교단의 주장이 성경의 진리인 것처럼 돼 버렸고, 그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던 소리도 쏙 들어가 버리고 그 교단에서 하는 말과 사역이 그만 기독교 전체의 복음인 양 되어버려 온 교회가 그 교회에서 하는 방법을 따라 하고 있더라 그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본질이 뭔지, 교회의 본질적인 복음운동이 뭔지, 이단이 뭔지, 거짓이 뭔지, 이질적인 것이 뭔지, 영 운동이 뭔지, 귀신운동이 뭔지, 악령운동이 뭔지, 666 운동이 뭔지 하는 그런 것은 몰라도 되고 세상에서 축복 받고 커진 것을 가지고 그게 믿음이라고 주장하면 그만 그게 복음이고, 그걸 또 세상이 알아주면 그게 복음행세를 하더라 그 말입니다. 
아무리 이단이라도 세상 법으로 통과만 되면 그게 기독교 복음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종교적 세상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사와 소원과 목적과 뜻이, 기독교의 복음이 모두 선악과 따먹고 타락적 기존지식에서 나온 인간 자기의 뜻으로 둔갑을 해 버렸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이런 상황으로 마지막 재앙 때까지 갈 모양입니다.

♣ 성경 외에 더하면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 이것들이란 한 마디로 성경 66권을 말합니다.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깨달아 영원히 후회없이 살고, 또 넉넉히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책은 오직 이 성경 66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의 의사대로 뜻대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는 구원도리는 이 성경 66권에서 지적해 주는 진리이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특별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66권 외에 무엇을 더하느냐?  더한다는게 무슨 뜻이냐?  성경 66권은 완벽한 특별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인데 뭘 더하느냐?  만일 더한다면 큰일 날 소리입니다.  만일 더할 수 있다고 한다거나 더하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사단 마귀 귀신들의 장난이요, 거짓이요, 거짓 종교요, 악령의 짓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짓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짓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자기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해서인지,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하려고 했는데 그만 자신도 모르게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혹 우연히 된 것이라도 무슨 가르침을 받고 그렇게 된 것인지, 어떤 느낌 감정으로 있을 때 그렇게 된 것인지 그렇게 되어진 마음과 정신과 바탕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예언, 방언, 통역, 신유 은사 받았네, 음성, 꿈, 환상을 보았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게 성경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면 그 때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본 그것에 신앙의 힘을, 뿌리를 박고 그것이 성경인 것처럼 떠들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거나 체험한 것이 성경에 문자적으로 나타나 있으니 자기는 성경대로 한다고 하며 그러는 것입니다.
진리이치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자기도 성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무슨 응답을 받아 보겠다고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고, 토굴기도를 하고, 골방기도를 합니다.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보다 열 사람이, 열 사람이 하는 것보다 백 사람이, 백 사람이 하는 것보다 교회 전체가 기도를 하고 집회를 하면 하나님께서 더 잘 응답해 주신다는 식으로 돌아가면, 이런 사상 정신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그런 것만 신경 쓰게 되지 성경을 깨달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런 것을 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그 마음 속 중심을 보면 모두 다 영웅성 허풍성이 가득 차 있어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자기도 해 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들으면 자기도 하나님처럼 해 보겠다는게 성경처럼 보이지만, 믿음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그런 위주로 믿는 사람 속에는 무서운 미움, 시기, 질투, 욕심, 사기성 등 온갖 거짓적인 성분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기를 고치려고는 하지 않고 자기는 성경대로 산다고 하며 그러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사역을 크게 이뤄서 종교적 지상천국을 이루자고 하며 성경을 이리저리 붙여서 자신들의 그 주장을 밑받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의사와 뜻은 인간 자기가 온전자로 만들어지라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뜻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지막인 이 때에 성도가 성경을 가지고 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 마귀는 성경을 들고 성경을 부정하게 만들고, 모든 거짓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들고 성경을 구절적으로 맞춰 가며 자기가 하는게 곧 성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는 중에 구원받을(성화구원) 자는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영능의 실력으로 주님을 닮아 가는 일을 하고 있고, 심판 받을 자는 종교사역적 목적위주로 일 크게 하자는 위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 성경 외에 더 붙이면 성경에 있는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겠다는 겁니다. 
일곱 인(印)에서 보여준 재앙이 있고, 일곱 나팔에서 보여준 재앙이 있고, 일곱 대접에서 보여준 재앙이 있습니다.  자기가 성경 외에 더한 것만큼 그런 재앙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불신세상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해치거나 상하게 하면 세상법의 심판을 받지만 성경은 66권 외에 더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받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조심해야 될 일입니다.  뭘 보려고 하기 전에, 무슨 활동을 하려고 하기 전에, 무엇이 되려고 하기 전에 그런 마음을 먹는게 하나님의 의사와 뜻을 따라 했느냐를 따져 봐야 합니다.  진리이치로, 영적 신앙이치로 하나님의 기준을 찾아 따져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믿음으로 한다’고 할 때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새사람이 주격이 되어 나온 믿음이냐, 옛사람이 주격이 되어 나온 믿음이냐에 따라 그 목적과 방향과 믿음의 성질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한다고 할 때도 무엇을 보고 은혜라고 하는지를 심사해야 합니다.  자기는 은혜 받았다고 말하지만 은혜가 뭔지를 잘못 깨달았으면 큰일 날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재앙을 더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누가 뭘 하겠다고 하면 그게 그만 믿음인 줄 알고 그를 높이 올립니다.  그러니 그 재앙을 어찌 다 받지 않겠습니까?  재앙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해서 받는 것입니다.  일을 안 한다고 오는게 아닌 사람이 안 고쳐지니 재앙이 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 무엇으로부터 타격을 받고 구타를 당하고 강타를 당하고 상처를 입고 재난을 당하고 불행을 당할 때 믿음이 있는데도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어서 두들겨 맞는 건지, 믿음이 없어서 맞는 건지, 못 깨달아서 맞는 건지, 어리석어서 맞는 건지를 예수 믿는 자기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 알려고 노력을 해야 옳은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도 안 든다면 그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알려는 마음도 안 들고 사람이 멍청하게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 성경에서 제하면
19절: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을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 예언의 말씀인 성경 66권은 우리가 이루고 갈 구원의 진리이치가 100% 들어 있는 특별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6권 중에 한 권이라도 빼 놓으면 인간 자기의 이룰 구원에 있어서, 깨닫는 면에 있어서 그 만큼 적어지는 것입니다.  여러 권을 빼버리면 빼버린 그 만큼 못 깨닫는 것이고, 66권을 다 빼버리면 자기는 하나도 못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안 보면서 기도해서 깨닫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악령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시대적으로 이미 지난 것도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건 버릴 성경이 아니라 성경은 계시가 무한히 들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자기 개인에게 이룰 구원의 이치가 또 들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깨달아도 다 깨닫지 못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천 사람이든 만 사람이든 다시 깨달을 진리이치가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성경 한 구절 속에는 백 사람이 각각 깨달아도 또 깨달을 것이 있고, 만 사람이 각각 깨달아도 또 깨달을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한 설교를 같은 시간에 여러 사람이 들을 때 각 사람의 깨달음이 다른 것은 성령의 역사로 그런 것인데 이건 성경계시의 깨달음이 무한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성경 66권의 계시의 무한성, 충만성을 모르고 ‘어느 신학박사가 이렇게 말했다더라, 어느 종교지도자가 이렇게 말했다더라’ 하며 인간이 말한 게 성경의 전부인 것처럼, 절대적인 것처럼,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옳게 깨달은 좋은 스승을 만났다 해도 그 종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지 완전한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 분의 깨달음이 다가 아닌 것이며, 그 분이 깨달은 진리이치를 내 것으로 삼아 성경을 더 깨달아 나가면 내가 또 더 많은 진리이치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만든 연장을 가지고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진리이치를 많이 깨달으면 남의 죄보다도 자기 죄가 큰 것 같고, 더 많아진 것 같고 그렇게 되니 자기는 없어지고 주님만 자꾸 크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통해 자기에게 새로이 주실 은혜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기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실 것을 다 받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줄 것을 못 받고 가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창세 이후로 5천 년이 지나도록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한 성경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깨닫지 못한 것을 자기가 진리이치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천국은 전부는 진리로 만들어진 한 의사로 사는 곳인데 주님이 좋으니 나도 좋고 나도 좋으니 주님도 좋고 한 그런 곳입니다. 
살아 생전에 은혜 못 받고 못 깨닫고 못 깨달으니 사람이 안 만들어지고 사람이 안 만들어지니 주님과 의사불통이고 의사불통이니 사람이 답답할 수밖에!  이와 같이 세상에서 주님과 의사적, 인격적으로 통하지 못하고 결합되지 못했다면 천국에 가서 주님과 어떻게 통하겠습니까?  인격적, 취미적으로 막힘이 돼 있는데 무슨 맛으로 살겠습니까?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자기에게 영원히 손해가 납니다.  그러니까 ① 성경 66권 중에 어느 성경이든 제하지 말고.  ② 어느 성경이든 소홀히 여기지 말고.  ③ 진리이치를 찾아 내것으로 삼아야 하고.  ④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이것을 제쳐놓고 딴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생명나무는 사는 나무요 살리는 나무입니다.  예언의 성경말씀을 제해 버리면 자기 살리는 것, 사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있듯이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삼킨 바 된다’ 하는 그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살아나는 것에 삼킨 바가 안 되니까 살 수 있는게 그대로 죽어 나가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건 그냥 믿는게 아닙니다.  예수 믿는 여기에는 모든게 살아나고 살리는 생산적인 것이 무한히 들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냥 예수 믿고, 그냥 교회 다니며 ‘죽어서 천당 간다’ 하는 그 하나만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인간이 천당 간다고 할 때 껍데기만 갑니까?  인간 속에 있는 성격, 성질, 취미, 지혜, 지식, 선, 사랑, 거룩, 진실, 의, 주권 그런 성분들이 전부 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껍데기는 어차피 죽을 것이니 죽는 이것을 이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죽지 않는 진리에 피동돼 나가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진리지식이, 하나님의 취미성, 하나님의 거룩성,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이 자기 속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그 효력을 내가 봐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헛 믿는 것입니다. 
심심하다고 교회 다니고, 공들이는 식으로 교회 다니고, 재미있다고 교회 다니고, 어떤 사람은 억지로 교회 다니고, 누구 얼굴 봐서 교회 다니고, 감정적으로 교회 다니고, 무슨 응답 받겠다고 교회 다니고 하는 이거는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과거에 자기가 어떻게 예수 믿어 나왔던 이제라도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삼킨 바 되도록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중심과 각오를 가지고 진리이치대로 나가면 이제까지 믿어오며 효력을 본 그 이상의 예수 믿는 효력을 보게 됩니다.  사는 면에도 효력이 있고, 인격성장 면에서도 월등히 성장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앞일을 모른다고 해도 자기에게 그림자가 따라 다니듯이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에게 따라 다닙니다.  과거에는 귀신이 따라 다녔고, 거짓 것이 따라 다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영적 진리이치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듣느냐, 아니면 일반도덕성적이고 세상적인 말로 듣느냐?  성경을 어떤 말로 듣느냐에 따라 자기의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이 성장되거나 죽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말씀이냐, 아니냐’ 하는 거기에서 죽고 사는 문제가 현재적으로 자기에게 발생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죽은 자를 심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죽은 것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 산 것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 하는 그게 하나님 앞에서 심판돼서 나가는 것인데 우리는 이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세상은 자기 속에서 무엇이 얼마나 죽어 나갔는지, 얼마나 살아 나갔는지를 모릅니다.  불신세상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이치가 그걸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이치를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6)’ 하는 이게 다 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죽으면 나중에 부활한다는 그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그 말속에는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라 하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수 믿어 천국 간다고 하는 하나만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치를 모르면 자기는 죽자 사자 충성 봉사하며 예수 믿어도 그 면에 대한 효력성을 영원히 보지 못하고, 예수 믿고도 심판은 심판대로 받고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진리지식을 바로 알아듣고 바로 믿으면 무한히 진리이치를 발견하고 깨닫고 바로 순종하고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고, 믿음이, 진리지식의 지혜가 고차원, 질적으로 자라가고 성장하고, 또 자기가 자기를 진리이치로 잘 다스리게 되고, 자기가 자기를 잘 알게 됩니다.  앞일을 잘 압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는 이 면을 잘 안다는게 아니고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사람인지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려 모든 사물에 대해 바른 비판과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교회들의 시대적 흐름을 보고 자기의 신앙과 처신을 바로 준비를 합니다.  자기에게 죄와 세상성이, 인격적으로 주격이 되지 않게 됩니다.  예수 믿은 후와 믿기 전과는 인격이 질적 면으로 달라지는게 기독교 신자요, 예수 믿는 성도인 것입니다.  불신세상에서는 내가 내 마음을 잘 안다고 하지만 자기가 자기 마음을 어찌 압니까?  알 리가 없습니다. 
‘믿사오니’만 하지 진리이치가 없는 말, 진리이치가 없는 사상, 진리이치가 없는 종교활동은 분별없는 신앙인고로 그런 신앙을 하는 사람은 신앙사기 당하고 이용당하기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고, 당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예수 잘 믿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믿사오니’ 신앙은 이방종교적 사상과 이방미신적 신관을 100%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런 식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깨닫지도 못하고 먼저 활동부터 하게 되면 그 활동이 커지게 될 때 그 활동을 알아달라고 하게 되고, 안 알아주면 섭섭해하고, 그런 활동을 하는 만큼 교만이 커져서 뿔이 돋아나게 됩니다.  사람 속에서 이 성질이 커지고 커진 것이, 너도나도 커져서 합쳐진게 666 중에 다 들어 있습니다.  666 주동자들이 그런 신앙자들을 알아주고, 천국 가서 큰 상 받는다고 추켜 올리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인 줄 착각하고 순교의 정신으로 죽자 사자 하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이치로 바로 놓이지 않으면 교회를 마귀의 집으로 만들어 놓고 사람을 다 망쳐 놓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무성하게 커져도 열매 없는 나무와 같아서 언젠가는 찍히게 되어 있습니다.
19절: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말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의 거룩한 성에 못 들어간다는 말은 지옥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거나 더하면’ 하는 것은 이미 예수 믿고 있고 성경을 가진 자, 성경을 보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이니까 영원한 불구덩이 지옥을 연상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영원한 지옥 구덩이로 보게 되면 천국에 갈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원리적으로 안 맞게 되고, 해석이 안 되는 것이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린다는 것은 거룩한 성품이 못 되면 거룩한 성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거룩이라는 그 라인(권) 안에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너희’ ‘저희’ ‘저들’이 있습니다.  ‘우리’라 할 때 누가 주격이 되어 우리라고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주님 따르는 우리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따르고 소원하고 목적하는 우리들이냐?  ‘그들’이라 할 때 그들의 주격이 누구냐를 성분적으로 잘 따져야 합니다.  ‘너는 우리 주님의 진리노선으로 가지 않으니 우리가 아니니까 세상노선으로 가는 그들에게로 가거라’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까?  같이 앉아 있어도 ‘우리’가 아닌 ‘그들’이 있습니다. 
어떤 전문적인 라인, 실력적 라인(권), 질적 라인 등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권)이 많이 있습니다.  역시 신앙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직업적으로, 신앙적으로 모든 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라인이 있습니다.  물론 그 라인은 실력 면에도 있고 능력 면에서 있는 것인데 이 라인은 격차와 차등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거룩한 성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말은 거룩한 성에 참예하는 선(라인)과, 참예하지 못 하는 라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수험생이 몇 점까지는 어디 학교를 가고 몇 점까지는 못 간다고 하는게 있는데 이건 실력적 라인입니다.  학생점수가 몇 점이라는 선 안으로 못 들어가면 그 학생이 더 낮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해 감옥에 가는게 아닙니다.  그런 것처럼 거룩한 성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천국에는 가되 천국을 누리는 실력 면에서의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간다, 못 간다’ 하는 면으로 생각을 하지 말고 ‘거룩한 성에 왜 못 들어가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 더하거나 제하는 방편과 그 결과
앞 절에서 다 말했습니다만 ‘성경 외에 더한다, 뺀다’ 할 때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는 것이냐? 
먼저 더한다는 것은 성경 기록 외에 인간 조작배기를 더하여(예언, 방언, 안수, 신유 등) 자기가 받은 걸 성경에 대보니 성경에도 그와 똑같은게 있으니 자기가 받은 그것도 성경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은 계시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추인 뜻을 깨달으라고 보여준 것인데 성경을 통해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지는 않고 자기도 성경과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사역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꿈도 그렇고 사역도 그렇고 활동도 그렇고) 그 속에는 영웅성, 허풍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 외에 덧붙이는 격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을 먹였으니 나도 사회에 나가서 구제사업을 해야겠다’ 하는 그게 다 성경에 덧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을 이 부분 저 부분에서 탁탁 뽑아서 어떤 부분적인 면에 전문적으로 나가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이건 다 자기는 성경대로 한다는 것이지만 성경 외에 붙이는 것입니다.  인간 조작배기를 붙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깨닫고 만들어지라는 것이지 성경에 있는 어떤 사역이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슬며시 물러나 버리고 자기가 체험한 게 자기의 신앙의 뿌리가 돼 행동을 하고 열심을 내게 됩니다.  이게 인간 조작배기요 성경 외에 더 붙이는 것으로 성경 외에 더 붙이면 성경에 재앙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재앙들을 더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언해 주신 것, 내가 하나님께 받은 거룩한 것을 어느 한 구절이라도 빼거나 등한시하게 되면, 내가 성경을 모르고 예수 믿으면, 성경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받을 진리, 선, 사랑, 거룩, 진실, 의와 주권, 신령한 것, 하나님의 능력 등 모든 것을 받지를 못합니다.  성경 안 보고, 모르고 어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은 예수 믿는 그 날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의 중보 사역으로 거룩한 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곧 죽더라도 천국에 가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로서 그 다음에 할 일은 그 기본적 구원신앙에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그 날로부터 진리의 깨달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일반 깨달음이 아닌 거룩성으로 자라가고, 거룩한 지식, 성품, 인격으로 자라가고 성장해야 하는데 거룩한 진리이치를 못 깨달으니 거룩과 진리의 사람으로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진리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강조되는 것입니다. 
깨닫고 보면 거룩한 성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말 속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게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 이단과 거짓 신앙노선을 경계하는 말을 기록한 것도 이게 강하게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지 말아라, 이단은 이런 것이다’ 라고 성경에서 말을 해 주는데 그 말씀 속에는 그런 것을 따라가면 거룩한 성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게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있기에 성경에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영원이 들어 있어서 계시록 1장 1절에서, 1장 20절에서 오른손의 별(사자)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른손의 별은 긍정적, 구원적, 건설적으로 들어 쓰는 별을 의미하고, 왼손의 별은 부정적으로, 비구원적으로 들어 쓰는 별(목사, 성도)을 의미합니다. 
보통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나가게 되면 사역적인 신앙으로 나가게 됩니다.  일을 크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자체적 진리이치의 신앙실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을 사역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보며, 하나님의 종을 그런 식으로 찾으며, 자기도 그렇게 한다면, 그게 바로 성경에 더하거나 빼는 현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교회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깨닫는 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게 뭔지, 주님 성품이 뭔지, 진리가 뭔지, 비진리가 뭔지, 참과 거짓이 뭔지, 이단이 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성경이 문자적으로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성경을 가지고 가르친다는 하는 기독교의 지도자들마저도 그것을 모른 채 이방종교와 손을 잡고 자리를 같이 하고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찌 참 하나님의 종이겠습니까?  이런 종은 절대로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이 교체되는 그 속에 내가 깨달을 수 있는 거룩한 보화가, 진리이치가 들어 있는 것인데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걸 모르고 어려운 사건이 오면 그 사건이 제 죽이는 줄 알고, 마귀가 갖다준 줄 알고 기도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이치를 모르니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이치를 알면 그런 사건이 자기에게 올 때 ‘아멘’ 하고 받게 되지만, 모르니 슬퍼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고 통곡하고 밀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령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사건 환경 속에서 진리이치의 사람으로 깨닫고 만들어진 것만큼의, 영적 기능과 지능이 살아난 것만큼의 각자의 실력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 천국을 마음껏 누리고 다스릴 수 있는 영능의 실력자, 능력자로 만드느라고 예수 믿는 그 날로 우리를 그 좋은 하늘나라에 데려가지 않고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사건을 만나게 하며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것이 있는 것이고, 세상은 세상대로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간 성도끼리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사건 환경을 통과하면서 영능의 실력과 능력을 덧입은 양에 따라서 각자가 천국을 누리는 누림성에 차등이 있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예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역사를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영적 신앙 면에서의 격차성과 차등성을 무시하고 주장하게 하는 그 역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를 잘 믿어라’ 해 놓고는 신앙의 방향을 사역적인 면으로 틀어 놓습니다.  사역을 많이 하면 이력이 붙고, 거기에서 감사패나 우승컵을 주며 그 사역에 더욱 매진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믿음 좋다 나쁘다 하는 게 아닌, 종교적인 사역을 열심히 하게 해서 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사람의 실상(주님 닮는 것)을 완전히 망하게 합니다.  성도 각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운동이 신앙을 사역적으로 몰고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러니 헌금 강조가 나오고, 물질 짜내는 집회를 하게 되는데 이게 다 성경에 더 붙이고 빼는 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사단 마귀의 이런 수법을 모르고 속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단 마귀의 졸병들은 ‘너만 믿음이 좋으냐, 그러면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냐, 예수는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며 이 말을 하는 사람을 죽일 듯이 대듭니다.  성분적으로 진리이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자고 알아듣기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을 들어서 말해주면, 말하고자 하는 핵심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자꾸 어떤 행동을 ‘하라, 하지 말라’ 하는 말로 듣고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집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사람의 영의 눈을 밝히고 하나님의 거룩성을 알게 하는 진리신앙을 아주 싫어합니다.  세상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도 이런 소리를 싫어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되지 왜 그리 예수를 복잡하게 믿느냐, 대충대충 믿자’고 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되지’ 하는 게 어찌 보면 신앙의 말 같으나 그 말속에는 성경을 안 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시대다’ 라고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 마귀가 진리신앙을 싫어하는 것은 성도들이 진리신앙을 가지게 되면 분별력이 생겨서 자기들의 속셈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 마귀에게 미혹 돼 세상적으로 믿는 사람은 ‘잘못된 신앙을 바로 고치고, 잘못된 정신, 마음, 성격을 바로 고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만들어지자’ 라고 하면 제 죽이는 줄 알고 펄쩍 뜁니다.  그러나 ‘일 크게 해서 복 받고 상급타자’ 하면 좋아합니다. 
거짓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자기는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고 해도 말씀의 이치를 가지고 짚어 나가면 그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 탄로가 납니다.  자기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자기는 참말로 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성분성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기 때문에 참말이라고 하는 것을 진리이치를 가지고 따져보니 거짓이라는 게 탄로가 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참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까지 효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적으로 믿는 사람의 소원 목적은 세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할 때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 게 아니고 자기는 사실대로 말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사상을 그의 말에 대보니 그 사람이 참말이라고 하는 그 참말이, 그 효력이 영원까지 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끝나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참말이라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 이 세상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신령계에 가서 보니 그들이 참말이라고 하는 것도, 그 공력도, 행복성도 없으니 궁극적 결과적으로 거짓임이 탄로가 나는 것입니다.
진리이치를 가지고 현재적으로 나도 보고, 다른 사람도 봐야 합니다.  이게 영의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이게 진리이치의 눈입니다.  이 눈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을 보면 예수 믿으면서도 거짓적인 성분이 들어 있어서 거짓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게 많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이치를 깨달아 바로 사는 게 참 신앙이고, 세상 것에 대해 구하는 신앙은 거짓적인 신앙입니다.  진리이치에 의해 그렇게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성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거짓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으로, 그 신앙은 거룩하지 못한 신앙으로 그런 신앙성분은 신령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성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통해 신앙에는 눈에 안 보이는 라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내가 거룩한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의 성분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하는 것을 지금 깨닫는 게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죽어서 깨달으라는게 아니고 지금 깨달으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예수 믿는 사람을 지옥에 끌고 가지 못 합니다.  그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대신 사단 마귀의 역사는 교회로 하여금 음녀적 신앙으로 나가게 하고, 성경구절대로 일 크게 해서 조직과 외모, 모양을 화려하게 만들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계시록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부는 신령한 것으로 잘 꾸며집니다.  성도가, 교회가 신령한 것 하나님의 것으로 잘 꾸며지면 마음 구석구석마다 지혜를 쓰는 면에서, 지식을 갖는 면에서, 선행을 하는 면에서, 생활을 하는 면에서 조목조목 신령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잘 단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부요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알든 모르든 모든 면에서 인간 자기는 실력적 격차, 능력적 격차, 영광적 격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조만간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이치를 모르면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사단 마귀의 사역주의에 속고, 성경을 보며 성경을 버리고 믿게 되고, 결국은 불신세상이 받는 형벌을 예수 믿는 자기가 이 땅에서 다 받고 가는 것입니다.
현재 사단 마귀가 교회 안에서 성경을 가지고 사람을 넘어뜨리는 일을 많이 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하는 운동 속에 사단 마귀 악령 류의 운동이 고차원적 수단 방법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계시적인 관점으로 보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의 글을 보시려면 본 교회 발행의 전도지 12호 ‘성경계시의 바른 이해’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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