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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표 내러가는 어느 청년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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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교수 (대신대 한국교회사)

'전부는 아니어도 절반의 성공은 가능할 것'

지난 해 년만 겨울방학 직전에 겪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강의를 마치고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화요일 밤 늦게 상경하는 열차가 구미역에 도착 했을 때 내 왼쪽 좌석의 빈 자리에 30대로 보이는 키도 꽤 커 보이고 건장해 보이는 청년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나는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그 청년을 향해 어디까지 가느냐고 인사차 물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다짜고짜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직장의 상사가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사표를 내러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도 의외의 대답을 듣고서 정색을 하면서 그 청년을 향해 되 물었다. 왜냐하면 이 어려운 시기에 직장을 얻지 못해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실직자들의 수가 지천에 깔려 있는데 내 좌석 옆에 올라온 이 청년은 너무나 쉽게 자세한 내막도 모르는 필자에게 사표내러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청년의 사정이 어떠해 그러는지 슬며시 그 숨겨진 사연에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 아들같기도 하고 제자 같은 처지기이도 해 그를 향해 도대체 무슨 어려운 사정이 있길래 직장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이 시기에 그렇게 쉽게 사표를 내는지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 사연을 물었다.

그 청년은 구체적인 이유는 쑥스러웠는지 말하지 않고 바로 위의 상사가 자기에게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꾸만 스트레스를 주고 그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사표내기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향해 “이 보게 청년, 나도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 사람이라네”라며, 해마다 연말이나 신년 초 졸업 씨즌이 닥칠 때면 많은 학생들이 취직을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을 설명해주며, “사표는 좀 더 생각해보고 내도 늦지 않으니 좀 더 생각의 여유를 갖는 데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청년, 사표 내는 것만은 잠시 유보하게나. 지금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 자네가 사직서 한 장 상사에게 던지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 순간부터 자네 부모님들에게는 불표하는 일이 된다네. 그 뿐만 아니지, 자네 가족들에겐 하지 못할 짓을 가장이 행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네.

사표를 내고 실직하는 순간 부모님들은 ‘오늘부터 저 애가 무엇을 먹고 살까? 며느리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려고 하나?’ 라면서 걱정을 하게 될 것이고 가족들에게는 못할 질을 하게 된다네. 내가 그 상사의 마음을 풀 수 있는 방도를 알려 줄테니 한 번 해 보겠어요?‘ 라고 했더니 그 청년의 귀에 어떤 자극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랬던지 “선생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정중한 자세로 물어오는 것이다. “오늘 집에 가셔서 푹 쉬고 내일 아침 출근할 때 여느 때보다 몸 차림도 좀 세련되게 갖추고 고기 집에 들려서 가장 맛있는 부위의 쇠고기 두 근을 사서 예쁘게 포장해 그 스트레스를 준다는 상사의 책상 위에 선물꾸러미를 갖다 올려 놓아보게. 그리고 자네 자리에 앉아 열심히 주어진 일에 성의를 다 해보게.

선물 위에 <<‘누구누구’ 계장님께 ‘누구’가 드리는 마음의 선물>>이라고 써 놓아보고 말이야. 그러면 아마 그 계장이란 분께서 마음이 누그러지면 다행이겠거니와 다시 시비를 걸어오거나 선물을 가져가라고 하거든, 가까이 다가가 정중히 예를 차린 후, ‘계장님, 그 동안 철없는 이 사람이 마음 썩혀 참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나와보게.

아마 100%는 아닐찌라도 절반의 성공은 할 수 있을게야. 그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고만 생각말고 내가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해 보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어 종당에는 사표를 내지 않아도 편안한 직장인이 될 수 있을 거야. 한 번 해서 안되면 두 번 세 번을 해보게. 상대가 목석이 아니면 자네와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지 모르지...“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피곤했던지 나도 모르게 잠시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런데 누가 내 어깨를 흔들며 나를 깨워 눈을 떠 보니 내 옆에 앉아있던 청년이 일어서서 꾸벅 절을 하며 “선생님, 조치원 역에 다와서 제가 먼저 내립니다”하면서, 하는 말이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대 사표내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내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청년의 얼굴 모습이 내 뇌리 속에 선하게 떠 오를 때마다 그의 연락처를 묻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한 청년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 준 것 같아 마음 아련한 위안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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