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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앙인과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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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종교개혁의 중심지인 독일을 비롯, 체코, 스위스, 프랑스 교회들을 방문했다.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는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문명의 주체,그 자체였음을 확인했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모두 좋은 자리에 화려하고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수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교회에 젊은이들은 사라지고 소수 노인들만 출석하고 있었다.

이들 교회에는 십일조는 없어지고 종교세를 국가에 납부하면 국가에서 목사 봉급과 운영비를 준다. 그리고 성도가 떠나서 매물로 나온 교회도 있었고 특히 영국에서는 큰 교회가 술집과 식당으로 팔린 것을 보았다.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교회에서 교인들이 떠나니 이혼 가정이 늘고,가정이 깨지니 어린 자녀들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고 의지할 곳 없는 젊은이들이 마약에 중독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또한 우울증 환자도 증가하고 물질적 풍요속에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현지인의 설명을 듣고 교회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서구에 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유신학이 인간을 중하게 여기고 개인의 인권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종교 다원론을 앞세운 자유신학은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돕는데는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성경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믿을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믿다보니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데 인색했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심을 약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교회에서 교인을 떠나게 한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철학과 과학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종교인이 엘리트처럼 멋있게 보이지만은 않았다.한국의 일부 신학교에서도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고 성경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신학생이 많다는 어느 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얼마전인가 우리집에 미국 할머니가 손님으로 오셨다. 60대 후반에 촌티 나고 가난해 보이는 평범한 할머니였다. 그런데 전화통에 불이 났다. 주로 대학교수들이었는데 모두 자기집에서 묵고 가라고 야단법석들이었다. 이 할머니는 아주 난감한 표정이었는 결국 인천의 모교수가 모셔갔다.

이 할머니는 앨라배마주립대 근처에 사는데 슈퍼마켓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한국 학생들만 하숙시키며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신앙을 갖고 사는 것을 보고 싶어서 없는 돈에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그 유학생들이 이제 할머니를 자기집에 초청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늙은 부인이 바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의 본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를 나는 이 할머니를 통해서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종교인인지,신앙인인지 반성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게 하소서.”


- 강덕영 장로(한국유나이티드제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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