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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허(三虛)와 삼실(三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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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현 목사 (사랑의 교회)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 최근에 신문 일면을 장식했던 헤드라인이다. 모 유명대학에서 연구부진을 이유로 교수들을 퇴출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언론에서 크게 기사화한 것이다. 철밥통은 사전에 없는 말임에도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쓰는 단어로 무능해도 법에 따라 신분을 평생 보장받는 만년직장을 의미한다.

진짜 철밥통은 아무리 패대기쳐도 깨질 수가 없다. 험하게 다루면 약간의 흠집을 날지 모르지만 그 단단한 것이 부서질 리 만무하다. 그런 철밥통이 깨진다는 것은 사실 표면만 철로 코팅되었을 뿐 안쪽은 텅 빈 사이비이기 때문이다. 빈 깡통은 조금만 흔들어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게 되어 있고, 부실한 것은 한 꺼풀만 벗겨내면 자신의 텅 빈 몰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는 말은 더 이상 허장성세가 발 붙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정상궤도로 들어서고 있다는 반가운 반증일 수 있다.

꽉 찬 것은 아무리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요즘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가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흔들어대고 있기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사회가 흔들 때마다 교회는 비명소리를 내고,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할 때에 성도라면 단장(斷腸)의 아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회가 교회를 조금만 흔들어도 왜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는 한 번 숙고해볼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삼허(三虛)라는 병폐 때문인지 모른다. 삼허란 허상(虛想), 허세(虛勢), 허수(虛數)다. 본질보다는 부수적인 것에 힘을 낭비하고, 교세를 과장하고, 교인 수를 부풀리는 것이 삼허이다. 교회가 삼허의 중병에 걸려있다는 것은 불신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교회를 흔드는지도 모른다.

수 년 전에 한국갤럽 연구소가 한국 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의뢰를 받아 ‘한국 교회 미래 리포트’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신자와 비신자 1000명을 대상으로 기독교인의 교회 활동과 신앙 생활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것인데,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질문과 대답이 있었다.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과제, 또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지만, 흥미롭게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은 대답은 양쪽 모두 “교회가 내적인 면보다 외적인 모습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교회가 불신자들의 흔듦에도 요동하거나 소리를 내지 않고 깊은 물처럼 우리 사회의 심장부까지 예수의 피로 적시는 길은 삼허를 버리고 실세(實勢)와 실수(實數)와 실상(實像)의 삼실(三實)을 회복하는 데 있다. 이럴 때에만 교회는 빈 소리를 내지 않고 교인들은 신앙과 삶의 불일치라는 고질병에서 놓일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삼허를 버리고 삼실로 가기 위해서 사랑의교회는 2006년부터 “정직한 나, 감사하는 우리, 정감 넘치는 사회”를 모토로 정감(正感)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작은 일에서부터 정직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아무리 흔들어도 텅 빈 소리가 나지 않도록 내실을 키우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쪼록 한국 교회가 삼허를 버리고 삼실을 회복함으로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위장된 철밥통이 아니라, 아무리 흔들어도 요동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금밥통이 되어 영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우리 사회를 거뜬히 먹여 살리는 거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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