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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 송재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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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시27:8)


2009년 10월 1일, 톱스타 배용준씨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여행 에세이집을 출판하여 한국과 일본에 내 놓았습니다. 책이 인쇄도 하기 전에 예약만으로도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으며, 불티나게 팔리는 책을 출판하기에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그 해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겨울연가” 애니메이션 제작발표회와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 선포식에는 배용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각각 5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하토야먀 유키오 총리 부인인 미유키 여사는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 참석을 위해 덴마크로 가야 하는 일정을 늦추면서까지 그를 보기 위해 선포식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배용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일본의 팬들은 물론 총리부인까지도 공식적인 일정을 미루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께 호소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라는 의미의 시적 표현법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열국들 중에 흩어진 후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신4:29)라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은 단순히 어떤 사람의 생김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 자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신뢰하는 것,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의 방편을 의미합니다(시13:1). 상대적으로 주의 얼굴이 숨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은 의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을 의미합니다(시4:6, 67:1, 80:3,7). 그러므로 의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가장 큰 은혜 중의 은혜요 복 중의 복입니다(시17:15, 민12:8, 신34:10). 그 복을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되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구약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 혹은 하나님만을 예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 때 제사장들은 절기와 모임이 끝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스라엘의 제사장의 축복은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간절한 축복이 있습니다. 제사장의 세 가지 축복은 세 가지가 반복형으로서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는 다윗에게 “내 얼굴을 찾으라” 혹은 “나를 찾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또한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그 얼굴을 나타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심판을 취소하신 후 모세가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33:18)라고 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손으로 가리우고 지나가신 후에 하나님의 등만 보여주셨습니다. 그 얼굴을 직접 보고 살아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한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에서가 400인의 군사를 이끌고 자기에게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창32:6). 야곱은 기가 막혔습니다.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습니다. 야곱은 대책을 세우기를 만약 에서가 한 떼를 치면 한 떼라도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의 모든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야곱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32:9-12)


야곱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그의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야곱은 에서를 위해서 예물을 보내는데 암염소-200, 숫염소-20, 암양-200, 숫양-20, 젖 나는 약대와 그 새끼-각각 30, 암소-40, 황소-10, 암나귀와 그 새끼-각각 20을 준비했습니다. 또한 이 예물을 세 떼로 나누어서 형에게 보냈습니다. 형의 마음을 차츰차츰 풀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생각하기를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푸 후에 형을 대면하면 자기를 받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예물과 함께 아내들과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혼자 얍복 나루를 건너지 않고 뒤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한 것이 아닌가요?(창32:24) 여기에 “씨름하다”라는 말은 먼지투성이가 되도록 구르면서 씨름을 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격렬한 씨름이었습니다. 누가 죽느냐를 결판이라도 낼 듯한 씨름이었습니다. 그 씨름은 밤이 지나도록, 날이 새도록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야곱의 기도였습니다. 몸과 영이 함께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그 상황을 야곱이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호12:4)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환도뼈를 쳐 위골시켰습니다. 야곱의 환도뼈 위골은 신체상의 무력함을 나타내는 표와 같았습니다. 환도뼈는 야곱에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면 안 된다는 표시였습니다. 야곱은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위골된 환도뼈를 보고 느끼면서 인간적인 방법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힘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는데도 그 사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을 붙들고 죽자 살자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 사람을 놓쳐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생애에 마지막 기회요 마지막 순간이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기회를 잃어버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이 야곱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창32:26) 그러나 야곱은 그 사람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그 결과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붙들고 매달렸던 사람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을 놓아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때 드디어 사람의 모양으로 분장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야곱은 대답하기를 “야곱이니이다”라고 이름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의 이름을 물으셨던 것은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셨던 것이 아니라 야곱이 그의 이름처럼 다시는 살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사기꾼, 남의 발뒤꿈치나 잡는 사람, 즉 육신의 야욕대로, 육신의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셨는데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야곱 중 누가 이겼다는 말입니까?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서도, 사람과 겨루어서도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즉 야곱은 에서와 아버지 이삭과 삼촌 라반과 겨루어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과 겨루어서도 이긴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창32:25)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인간이 하나님과 겨룬다면 누가 이길 것입니까? 모든 사람을 다 이긴 사람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기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기도록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이길 자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이길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은 그 성도들에게 이기려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져 주시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물리치지 못하신다.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신 것은 지금까지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에서가 400인의 군사를 대동하고 야곱을 맞이하러 오는데, 어떤 상황이 일어나든 그 결과는 야곱이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임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이튼날 하나님과 그 씨름했던 곳을 떠나면서 “브니엘”이라는 이름을 지명을 지었습니다(창32:30).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약속을 받아 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라고 하실 때 그 마음으로 대답하기를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새해가 됩시다! 다른 그 어떤 것의 얼굴도 찾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얼굴만을 찾는 새해가 됩시다!


마지막으로 새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금년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이루시도록 하나님을 이시기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애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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