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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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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에베소서 1장 23절)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

 한때 ‘교회성장 세미나’가 성행했지만 사실상 ‘바른 목회 세미나’가 더 많이 열려야 합니다. 성장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다른 세상적인 성공 세미나와 큰 차이가 없게 됩니다. 역설적인 사실은 한국 교회에 교회성장 세미나가 성행하면서 성공한 목회자들이 전하는 성공원리를 수많은 목회자들이 따를 때 오히려 교회성장이 둔화되고 후퇴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커지는 것이 영성의 표시는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는 표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1. ‘깊은 만남’이 있는 교회

 1996년 초, 인천에서 목회할 때 누군가 분당의 상가건물 4층에 있는 110평의 교회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줄 테니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해보라고 제의했습니다. 5번을 거절했다가 계속 제의가 와서 1997년 10월, 목회지 이전 문제를 놓고 40일간 철야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35일째 되는 날 목회지 이전에 대한 평안과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려면 3가지 깊은 만남, 즉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말씀과의 깊은 만남, 이웃과의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끝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은 문제해결과 능력의 최대 원천입니다. 왜 어떤 교인은 평소에는 신실해보이지만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거의 불신자처럼 됩니까?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교제와 봉사도 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축복의 도구로만 여기지 말고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추구하십시오.

 둘째, 말씀과의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 새벽기도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새벽기도 훈련은 공부 형식의 단계별 제자훈련보다 좋습니다. 새벽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이뤄지고 말씀과의 깊이 만남이 이뤄지면 영성이 깊어지고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형편에 되지 않아 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월간 새벽기도>를 통해 매일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보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셋째, 이웃과의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및 말씀과의 깊은 만남은 이웃과의 깊은 만남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자기 삶을 다 지켜보는 가족과 지인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삶을 사십시오. 아내와 자녀와 친구로부터 존경받는 성도는 누가 뭐래도 가장 성공한 성도입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교회 일만 하지 마십시오. 가정은 작은 교회이고 최초의 선교지입니다. 가정을 잘 돌보고 불신자 남편도 최대한 존중해주십시오. 성도다운 모습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인들이 많아질 때 그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2. ‘건강한 비전’이 있는 교회

 ‘건강한 비전’이 있는 교회가 되려면 역설적으로 ‘건강한 교회’에 대한 비전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성장’이 필요합니다. 생명체가 원초적으로 부여받는 크기가 될 때까지는 성장해야 제 구실을 하듯이 교회도 어느 정도까지는 외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갓난아기에게 성숙을 요구하거나 아기를 낳으라고 하지 못합니다. 물론 교회의 성장이 외적인 성장이나 숫자적인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 및 교인의 능력과 영향력이 성장하는 것도 성장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이들이 잘 먹고 잘 뛰놀면 건강하게 잘 자라듯이 교회도 말씀을 잘 먹고 쉼과 교제를 통해 잘 뛰놀면 건강한 성장 가능성은 커집니다. 어떤 목회자는 “목회는 ‘먹회’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만큼 ‘함께 먹는 것’이 공동체 생활에서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주일에 예배와 더불어 ‘식탁의 교제’ 및 ‘비전의 나눔’도 있게 해야 온전한 주일성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주일성수를 통해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함께 참여하면 언젠가 성장의 열매를 맛보게 될 날이 옵니다.

 둘째, ‘성숙’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양적으로만 성장하면 오히려 건강을 잃기 쉽습니다. 교회가 몸집은 커졌지만 지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되면 안 됩니다. 한민족의 순수한 열정은 대단해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캐릭터임에는 분명합니다. 잘 사용되면 정말로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문제는 잘못된 선동가나 이단 교주가 그 순수한 열정을 이용해먹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여먹기 쉬운 민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선동가의 거짓 선동에도 잘 이용당하고 이단의 거짓에도 잘 속는 것입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극좌파나 극우파가 만들어낸 충격적인 가짜 뉴스가 많습니다. 요즘은 구글 검색을 몇 번만 해도 금방 가짜임을 알 수 있는데 그 가짜 뉴스를 그냥 믿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가짜 뉴스를 진짜처럼 전파하다가 가족들 간에 갈등이 생겨 가정이 깨지고 교인들 간에 갈등이 생겨 교회가 깨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이간시켜서 거짓으로 자기 세력을 키우는 행태가 이단의 행태입니다. 이단의 제일 무기가 ‘이간’입니다. 그런 이간질에 속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십계명의 9계명은 흔히 잘못 알고 있듯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아닙니다. 만약 9계명을 그렇게 주셨다면 사람은 십계명을 매일 어긴 심한 죄책감으로 인해 정상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완벽한 진실 가운데 살 수 없음을 잘 아십니다. 거짓말은 다 나쁜 것이지만 자기 보호본능에 의한 순간적인 거짓말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쉽게 용서될 수 있는 영적인 경범죄라면 남을 깎아내리거나 무너뜨리려고 의도적으로 하는 거짓 증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쉽게 용서될 수 없는 영적인 중범죄입니다.

 가짜 뉴스로 미혹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상이나 극우주의 사상이 가장 애용하는 수법입니다. 그런 가짜 뉴스에 넘어가 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웃에게 전파하는 것이 바로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얘기는 전파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와 교인은 자기 세계 안에서만 사로잡혀 있지 말고 거룩한 상식과 소통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받기보다는 주기에 힘쓰면서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재생산’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성장과 성숙을 겸비해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재생산을 위해서입니다. 교회의 제일 중요한 존재 목적 중의 하나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마 28:18-20)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가 개척자나 개척 멤버의 왕국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왕국이 되게 하려면 개 교회로서만 커지려고 하지 말고 교회를 분립해 개척하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건강을 잃지 않습니다.

3. ‘사랑과 공의’가 있는 교회

 기도 중에 목회지 이전을 결심하고 분당으로 이사할 때 제가 가졌던 전 재산은 아이들을 위한 적금 통장과 현금 25만원이었습니다. 무모한 이사였지만 그래도 6개월간 즐겁게 목회했습니다. 교회에 조금씩 사람이 모이면서 활성화되자 그 공간을 빌려준 사람이 한 마디 언질도 없이 그 장소를 다른 교회에 팔아버렸습니다. 갑자기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중에는 현금이 40만원밖에 없어서 당장 살 길이 막막했지만 마음은 지극히 평안했습니다. 그저 “이 일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미국에 있는 기독교 선교연맹(C&MA) 소속 동역자들이 보고 싶어서 아내와 상의해서 아이들 적금을 깨자 102만원이 생겼습니다. 그것으로 비행기 표를 사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한인총회 감독 목사님이 몇몇 이민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추천했습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동료 목사님들은 분당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후에 몽골 선교사가 되신 임병철 목사님이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 목사는 목사를 필요로 하는 양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거기로 가야 합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귀국한 후 분당의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새로 개척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세워질 교회가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바른 교회가 되고 외형은 크지 않아도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모델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때 교회개척이 저의 원초적인 사명이고 현재의 고통은 찬란한 내일을 약속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교회 개척에 새롭게 나설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재정 상황을 생각하면 교회 개척보다는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제게는 그 전에 대학에서 신학영어를 가르치면서 기도 중에 개발한 <네트영어>라는 찬란한 재정을 약속하는 수단이 있었습니다. 또한 매일 18시간 이상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노력을 앞세워 <네트영어>를 발전시키면 생계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교회개척은 생활수준의 희생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교회 개척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목회 현장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교회를 섬길 때 생기는 그런 고통을 무엇으로 극복합니까? 중요한 것은 ‘성도 한 사람의 사랑’입니다. 여러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만 목회자를 이해해줘도 큰 힘이 됩니다. 자신이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교회생활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한 사람의 사랑’입니다. 자기 교회에 ‘사랑을 아는 한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그런 한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일입니다. 요즘 계산이 빠른 청년은 아이를 낳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커리어를 개발할 시간이 많아지고 자유롭고 편하게 살 수 있고 돈을 모을 가능성도 커집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를 낳고 키웁니다. 그것이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모든 부모는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자기’라는 초를 태워가며 아이의 성장을 돕습니다.
 
 교회에도 그런 아비의 사랑을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한 사람이 되어 서로를 섬겨주십시오. 초신자 때는 받으려는 마음으로 교회생활을 했어도 점차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하십시오. 십자가의 사랑이 교회에 넘치게 되도록 자신도 일조하십시오. 동시에 공의가 바로 서도록 자기 뜻도 잘 꺾을 줄 알아야 합니다. 공의의 반대말은 ‘자기 뜻’입니다. 교회에 사랑만 있고 공의가 실종되면 점차 병들게 됩니다. 사랑과 공의를 병행한 성도들로 넘치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 좋은 교회의 좋은 교인 >

 마침내 1998년 7월 26일, 상가 건물에서 내몰린 지 2달 만에 저의 집에서 교회개척을 위한 첫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간의 물질이 모여 1998년 9월 10일 26평 공간을 임대로 얻었습니다. 실평수는 14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입니다. 그 후 약간씩 사람이 모이면서 2달쯤 후에는 14평 공간이 비좁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재정도 조금씩 모여지면서 창립예배 드리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교회를 번듯한 장소로 옮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이런 음성을 주셨습니다. “이 목사야! 교회의 외적인 성장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느냐? 처음부터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욕심이 끝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때가 아닌 상태에서 교회를 옮기면 명예욕이 절제되지 않으면서 그때부터 교회와 교인은 신적인 도구가 아닌 인간적인 도구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내적인 음성을 듣고 교회 이전 문제를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꼭 필요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재정형편을 따라 교회를 옮겨야지 교회 입주한지 몇 달도 안 되어서 과시용으로 또 옮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도 잘 참아야 하지만 욕심도 잘 참아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을 꿈꾸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건물과 숫자에 너무 매달리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좋아하지만 때로는 유명하지 않은 목사의 설교가 더 바른 길을 제시할 때도 많습니다. 교회성장 세미나도 건강한 세미나가 되게 하려면 성공한 목사님들만 강사로 초빙하기보다 작은 교회의 좋은 목사도 강사로 초빙해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 잡힌 목회의 가능성과 건강한 교회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때로는 바른 길을 고집해서 외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유명해지는 길보다 바른 길이 더 중요합니다. 너무 유명해지는 길만 찾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성공은 진리도 아니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도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세상적인 성공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성공에 집착하면 점차 율법주의자가 되고 편법을 쓰게 되고 겉과 속이 달라질 수 있고 삶이 각박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적으로 얻은 재빠른 성공의 거품은 언젠가 터집니다. 급격히 올라갔다 떨어지는 삶보다 서서히 올라서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빨리 성공을 이루겠다고 가게나 교회를 수시로 옮기는 것이나 좋다는 프로그램은 다 따라서 하는 것이 실제적인 성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물론 돈을 벌고 성공했다는 남의 얘기대로 해서 잠깐 대박이 터지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장기간으로 보면 그런 대박이 최종 승리로 연결되지 못하고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자기 달란트대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참된 성공과 행복이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바른 길로 묵묵히 전진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의 좋은 교인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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