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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없이 주를 보지 못한다. (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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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없이 주를 보지 못 한다.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런데 현대는 거룩이라는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도 30년 목회하면서 거룩에 대한 설교를 두 번 하였습니다. 15년에 한번 거룩에 대한 말씀을 전한 셈입니다. 그리고 내가 설교집을 수 백권을 읽어도 거룩에 대한 설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탄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거룩은 심각한 말입니다.
“거룩이 없으면 예수님을 볼 수 없다.” 이만하면 심각한 말씀이 아닙니까? 거룩이 없이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라는 말은 하기오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순수하다> <헌신되었다> <구별되었다> 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분리되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분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구별된 것을 거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별된 땅을 성지라고 말합니다. 구별된 쌀을 성미라고 부릅니다. 구별된 사람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구별된 책을 성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구별된 가구를 성구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구별된 돈을 성금이라고 합니다. 구별된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구별되어야 합니다. 거룩하여야 합니다.

청교도들의 생활 철학의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함.>
이것이 청교도들의 삶이었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은 감리교를 창설하면서 말했습니다.
“성경에 의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전 세계 알리기 위하여 감리교를 창설한다.”

피비 팔머, 핸드리 모울, 앤드류 머레이, 재시 펜 루이스, F.B 마이어, 오스왈드 챔버스, 호레이시우스 보나르, 에이미 카마이클, L.B 맥스웰 이런 분들은 19세기 영의 거성들입니다. 이들의 핵심은 거룩이었습니다. 이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를 지나면서 거룩으로 성결 운동을 일으킨 영계의 거성들입니다.
종교 개혁 전 영적인 거성은 성 테레사,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마담 기용, 뻬루 그루입니다. 이들도 거룩을 제일로 삼았던 이들이었습니다.

옛 우믈을 다시 판 이삭 

이삭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하여 블레셋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땅은 옛날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우물을 팠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우물을 빼앗고 메웠습니다. 이삭은 그 곳으로 가자 말자 우물이 필요하였습니다. 새로운 땅에 새롭게 우물을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창 26;18)

우리는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과거의 진리를 재발견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래서 과거에 그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대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던 것처럼 우리는 초대 교인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거룩의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다. 무엇이 거룩입니까?

거룩은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생각이 거룩과 세상적인 것의 구별을 하여 줍니다. 모세와 가룟 유다를 대조적으로 보면 됩니다. 모세가 40살에 하나님의 거룩에 들어 섭니다.
<나이가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 볼 생각이 나더니>(행 7;23)

모세는 40살부터 하나님의 거룩에 들어갔습니다. 생각이 나는 것이 거룩의 시작이었습니다. 반대로 가룟 유다를 봅니다. 예수님을 3년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가룟 유다가 거룩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생각부터 다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거룩은 생각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항상 거룩한 생각을 하도록 생각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6.25 직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문둥병 수용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둥병자에게서 흐르는 피고름을 다 닦으며 받아내고 치료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특파원 사진 기자들이 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100만불짜리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100만불을 주어도 이런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 때 고름을 닦아주던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못 합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기프슨(Bamett Gipson) 박사가 그의 저서 <행복한 하루>(hapiness day and night)에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손에 얼마나 쥐어져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행복입니다. 감사하는 생각과 마음이 있으면 무엇에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거룩은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네 기지 측면에서 거룩을 추적하여 보겠습니다.

1. 대신관계(對神關係) 거룩
2. 대인관계(對人關係) 거룩
3. 대물관계(對物關係) 거룩
4. 대아관계(對我神係) 거룩

1. 대신관계(對神關係) 거룩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거룩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본래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 거룩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가 있을 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유대인은 이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닷물에 빠져 죽어 가고 있는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 주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은 이 밧줄을 꼭 붙잡으시오. 만일 놓치면 곧 죽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환란과 역경중에서도 살아 나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밧줄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4;4)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잠4;13)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입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죤 영이라는 흑인 농부 가정 이야기입니다.
그는 흑인이 보통 그런 것처럼 종이었습니다. 공부를 하지 못 하여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가 14명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하였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온 가족들이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지켜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 가정의 가훈이 있습니다.
<이 집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다.>

14명 자녀가 모두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코넬 대학 교수가 나왔습니다. 교사, 간호사, 음악가등 14명이 모두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구별된 가정입니다.

2. 대인관계(對人關係) 거룩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룩이 나타나야 합니다. 거룩은 보이는 형식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거룩이 눈에 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중요한 말을 하여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과도 시기, 질투, 미움, 속임이 개입되면 거룩함이 아닙니다.
거룩한 사람은 남을 편안하게 하여 줍니다. 격려하여 줍니다.

연극 배우가 무대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왔습니다. 그리고 배우 친구를 보고 말했습니다.
“구두끈이 풀어 졌네.”
그 배우는 얼른 구두끈을 고쳐 맸습니다. 그리고 연극 연습을 계속 하였습니다. 조금 후 그 친구가 나갔습니다. 배우는 구두끈을 다시 풀어 놓고 연극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세요?”
배우가 말했습니다.
“내 연극 배역이 거지입니다. 구두끈을 풀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거지 역할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구두끈 풀어졌다고 지적할 때 나름대로 나를 잘 되라고 하는 것이기에 그대로 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가 다시 나갔으니 풀어 놓아야지요.” 이것이 거룩입니다.

남을 편안하게 하여 주는 것이 거룩입니다.
성자라고 알려진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여성입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신문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의 말뿐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사위가 충격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장모님은 악마입니다. 악독한 여자입니다. 가정에서 항상 남편을 멸시하고 깔봅니다. 장인 어른이 약간 어수룩합니다. 그렇다고 자존심상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거룩은 누구에게나 거룩하여야 합니다.
도닌(Donin)은 유대인이 가져야 할 12가지 거룩한 성품을 지적하였습니다.

1. 예의 바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방랑생활로 절약하고 절제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어느 부모가 아들 며느리와 같이 살다가 지금은 따로 살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변호사이고 부유한 생활을 합니다. 며느리도 물론 기독교인이고 시부모에게 잘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 정말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서 같이 못 사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가 헤프게 사용하는 휴지가 헤어지게 된 화근이었습니다. 며느리는 휴지를 아끼지 않고 듬북듬북 씁니다. 그리고 한번 쓰고는 휴지통에 미련없이 버립니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오줌을 싸면 걸레로 치우고 빨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걸레를 가지러 간 사이에 휴지를 듬북 꺼내어 오줌을 닦고는 쓰레기 통에 버립니다. 그것도 아끼며 꺼내는 것이 아니라 낭비적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충고를 하면 잔소리한다고 반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참다 못 한 며느리가 급기야 대들었습니다.

“제가 이 집에 시집와서 휴지 하나 맘대로 쓸 권한이 없어요?”
예의가 없어서 헤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2. 정직

유대인의 정직은 상거래에서 나타납니다. 탈무드에 보면 사람이 죽어서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가장 처음 받는 질문은 “너는 거래할 때 정직하였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탈무드의 규정에 보면 “상점 주인은 되(斗)를 일주일에 두 번 닦아야 합니다. 추는 일주일에 한번, 저울은 매번 쓰고 난 다음에 닦아 두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정직하게 살면 이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 하리라>(시25;15)

3. 완전
유대인들은 절세(節稅)는 할 지언정 탈세(脫稅)는 결코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4. 진실

5. 침착성 유지
유대인들은 아무리 화가난다 할 지라도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아 왔습니다.

6. 깔끔한 언행

7. 용기

8. 친절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성경의 기본정신은 사랑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19;18)는 말씀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강조점입니다.

9. 인내

10. 수양
수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제입니다. 구제는 제다카(Tzedakah)라고 합니다. 이는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탈무드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선을 받아 먹고 사는 거지라 하여도 자선을 행하여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이 의무로부터 벗어 날 수가 없다.”
나그네를 돌보아야 합니다. 이삭은 주워 가지 말아야 합니다. 겉옷을 전당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 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해가 지면 그 것을 덮고 자기 때문입니다.

11. 겸손

12. 책임감

다른 사람들과 사이에 거룩함이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대인관계의 거룩입니다.

3. 대물관계(對物關係) 거룩

거룩은 물질관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거룩한 물질을 드리는 것이 거룩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물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십일조는 구별된 헌금입니다. 거룩한 물질 십일조를 구별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권투 선수 포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거친 성격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난폭하고 성질이 고약하고 침략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권투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지자 권투 선수에서 은퇴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전도하려고 하니까 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권투뿐이었습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권투 하나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45살에 권투 선수로 다시 복귀하여 다시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가 늦은 나이에 그렇게 한 것은 전도를 위한 돈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번 돈은 모두 전도에 투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거룩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 추수감사절에 아이티 빈민을 돕기 위하여 모금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켈리라는 조그만 소년이 엄청난 헌금을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아주 가난한 집 소년이었습니다. 
사유를 알아 보니 자기 집에서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는 말을 팔아서 헌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티에 오지 못 한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파티에 입고 올 번번한 옷이 없어서 못 왔다.”
거룩한 예물을 드리는 것이 거룩의 표시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물질을 헌신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4. 대아관계(對我神係) 거룩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를 성결하게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다 속여도 둘만은 속일 수 없습니다. 자기와 하나님만은 속일 수 없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병아리 한 마리씩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죽여서 이 곳에 담아라.”
그리고 통을 하나 두었습니다.
조금 후 통속이 죽은 병아리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병아리를 들고 왔습니다. 
“너는 왜 병아리를 죽이지 않았니?”
그 아이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 학교안에 없어요. 어디 가든지 하나님이 보고 계셨어요.”

사실은 선생님이 병아리를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오산 송 민섭 목사님은 호텔에서 만남이 있을 때 아내와 같이 가면서도 따로 들어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모를 아는 사람은 괜찮은 데 사모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자와 호텔들어 갔다고 소문날 수도 있잖아.”
이렇게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가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 한 분은 늘 종말론적으로 사셨습니다.
오늘 집을 나섰다가 교통사고 당할지 모른다. 언제 어떻게 쓰러져 죽을지 모른다면서 아침마다 목욕을 하고 매일 속옷을 새롭게 갈아 입고 나온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하여도 하나님앞에 갈 준비를 하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심하다가 여름휴가를 철원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담배를 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원에서도 숲속으로 몰래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고 나오곤 하였습니다. 담배를 피우고는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왕에 결심하고 올라왔으니 도중에 내려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데 이상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버려라. 내버려라.” 무엇을 내버리라는 것일가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져보았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유유히 흐르는 한탄 강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날부터 담배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났습니다. 담배를 완전히 끊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셔야 합니다.

거룩함의 12가지 증거

죤 찰스 라일 영국 주교는 거룩함(Holiness)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거룩함의 12가지 증거를 나열하였습니다.

무엇이 거룩입니까?

1.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한 마음을 가는 것이 거룩입니다.
2. 모든 죄를 피하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거룩입니다.
3.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위하여 고군부투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4. 온유하고 오래 참으며 인내하며 혀를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5.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6. 거짓말, 비방, 험담, 속임수등이 발붙이지 못 하게 자기를 경계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7. 선행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8. 마음을 청결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거룩입니다.
9.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10. 겸손하게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거룩입니다.
11. 인간 관계를 잘 하며 모든 면에 성실한 것이 거룩입니다.
12.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거룩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드림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강화도를 둘러 보면서 자연환경이 좋아서 산속에 성막의 집을 세우고 싶어졌습니다.
50명 정도가 잘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은퇴가 8년 남았는 데 그런 센터를 주옵소서!” 새벽에 주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 것이 없었단다. 마리아 태를 빌려 가지고 태어났단다. 병원 대신에 마굿간을 빌려 테어났다. 짐승이 밥을 먹는 구유가 내 최초의 침대였단다.

그리고 나귀를 빌려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다. 그리고 무덤도 빌려 가지고 묻혔단다. 내 것이 없었다. 빌려서 사용하여라. 너 때문에 그런 곳을 가진 사람이 유익을 보도록 유익을 주고 죽어라.” 
눈물이 핑그르 돌았습니다.
내 것 없이 남에게 유익을 주다가 하나님께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남의 것을 내 것같이 사랑하다가 죽고 싶어졌습니다.
거룩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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