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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왕하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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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왕하 5:1-14)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삼 년 육개월을 비 한방울 오지 않는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오늘도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닙니다.  그러나 모든 교인이 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삶 속에서 많이 체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늘의 능력을 힘입어 신나게 생활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그처럼 좋은 은혜를 아낌없이 부어 주시는 것일까요?    
  
큰 흉년같은 위기를 만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사렙다 과부같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큰 질병을 만날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깨끗이 치유받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에 치명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라도 엘리사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큰 도움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는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큰 인물이며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라를 구한 화려한 경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왕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용기도 누구못지 않고, 물질도 부요하며, 명예, 권세, 인기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딱 한 가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는 문둥병에 결렸습니다.  병균이 그의 몸을 점령하여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살이 썩고 있었습니다.  옷 위로 고름이 흐르고 냄새가 진동합니다.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고 사람들이 그를 보면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대단한 사람같지만 딱 한가지에 걸려버리니 삶의 모든 희망이 꺽여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물이 잘 생겼으나 성격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부자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으나 가정이 불화합니다.   안고 있는 단 한 가지의 문제로 인해 모든 행복이 삼키워지고 큰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아만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거머쥔 사람입니다.  그러면 무엇합니까?  문둥병에 걸렸으니 다 소용없습니다.  왕의 인정과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물질이 많고 유명하여져서 온 백성들의 존경을 받지만 불행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루 하루가 지옥입니다.  언제 문둥병에 완전히 삼키우게 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나아만을 위해서라면 무엇도 아끼지 않는 아람 왕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 온 아내도 자식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부하들도, 오랜 세월 마음이 잘 통했던 친구들도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1. 복음을 들어야 능력을 체험합니다.(3) 
   
아무도 나아만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나아만 부인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작은 여자 아이가 부인에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만 만나면 좋겠네요.  그 분께서 주인어른의 문둥병도 고쳐 주실 것입니다."  나아만부인이 그 말을 다시 나아만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나아만에게 있어서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불치의 병인 문둥병이 치유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가 번쩍 열리겠습니까?  나아만을 불행하게 만드는 문둥병이 떠나가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돌아보니 그런 대단한 뉴스를 전해주는 이는 현자도 아니었고 부자도 아니며 권세있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계집 종이었습니다.  패전국에서 끌어 온 힘없는 아이요 시중이나 드는 천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나온 말이 복음이었습니다. 자신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이 많은 사람이 사마리아에 있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된 소식은  천사를 통해서만 들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성경을 연구한 학자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같은 천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스스로 보기에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통해서 은혜를 주실 때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끌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만난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둘이서 타고 갈 수 있는  나귀를 옆에 두고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일이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나귀의 등에 올라타고 편안하게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가지 않아서 두번째 만난 사람이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나귀에 타고  가느냐?며 비인간적이라고 비난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나귀에서 내리고  아버지만 나귀를 타고  길을  갔습니다.  세번째 만난 사람은 어른은 나귀에 타고 어린이를  걷게  한다고 아버지를  나무랐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자기는 걸어 갔습니다.  곧 이어 네번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아들이 자기보다  더 나이  많은 아버지를 위할 줄 모르는 불효자식이라고 아들을  책망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짊어지고 지친 걸음으로 터벅터벅 길을 가는데 우물가의 여인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세상에 끌고가면 될 나귀를 지고 가느라고 생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네'하며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에 놀라 나귀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개울에 풍덩 빠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남의 말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면 불필요한 죄의식과 좌절감만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말"의 공해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가 사람들의 말을 다 듣다가는 결국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는 우를 범하게 되고 말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55장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진리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입시다. 사람들의 말은 참고만 하면 됩니다.

나아만은 어린 아이를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아만이 능력을 체험하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소식을 듣고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메시지를 듣고 믿음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을 들을 때 오직 복음에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이 체험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전해주어도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종이 전해 주어도 나를 위한 하나님의 복된 소식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어린 여종의 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음을 귀기울여 듣고 즉각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2. 자기 생각을 내려 놓아야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11)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과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문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마중을 나오지도 않습니다. 대신 종이 나오더니 "선생님 말씀에 가서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낫는데요."  하고는 들어가 버립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습니다. 몸을 돌이켜 분을 폭발하며 그 곳을 떠나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왜 나아만이 그처럼 화가나서  다 포기하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내 생각]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나아만이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그런 환상을 품고 엘리사를 찾아 왔습니다.  '내가 비록 문둥병에 걸렸으나 강대국의 장관인데 특별히 예를 갖추어 정성껏 맞아 줄 것이다.  시리아의 제사장들이 하던 것처럼 수 많은 군중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 친히 나와서 거창하게 환영식을 하고  거룩한 제단을 차려 놓은 후  신비한 복장을 차려 입은 채 나타나  특별 기도를 해 줄 것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나아만의 환상을 엘리사는 박살을 내 버렸습니다. 나아만의 생각을 산산조각을 냈습니다.  오라고 해 놓고는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사환을 시켜 요단강 물에 가서 일곱 번 씻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요즘도 [내 생각 ]을 앞세우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교회가 이래야 하는데 왜 안 그러느냐?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목사가 이래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내 생각에는 하나님이 이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너무 절대적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큰 방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줄 알지만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아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의 강한 생각을 꺽으시려고 엘리사가 나가서 손님을 맞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나아만이 자기의 생각을 버려야 큰 은혜를 받고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어라"
   
사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어라"하는 말씀을 받았을 때 나아만은 감사했어야 합니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기만 하면 나을 수 있다는데 왜 화를 냅니까?  그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병을 낫기 위해 독한 약을 오래 복용하라고 해도 머리가 다 빠지고 위장에 장애를 일으켜도 낫기 위해 기를 쓰고 먹지 않습니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20%만 된다고 해도 수술해 달라고 사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몸을 요단강에 담그라는 것이 뭐가 화날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을 절대 중요하게 여기기 보다 자기 생각을 절대화하고 있었기에 자존심이 상해 화를 내었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많이 받고 싶습니까?  먼저 여러분의 생각을 내려 놓으세요. 능력을 많이 체험하며 살고 싶으세요?  여러분의 고집을 내려 놓으세요.  문제를 해결받고 싶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만 역사하신다는 선입견도 내려 놓으세요.  자기를 앞세우고 높이려는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여러분의 뜻을 맞추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함께 한 사람들이 화를 내며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만류하며 부드럽게 권면했습니다. "장군님! 하나님의 사람이 이보다 더한 일을 시켰으면 안했겠습니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시키는대로 순종하시지요."  그말을 듣고 나아만은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길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고나니 나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게 고집을 부릴때 일깨워주고 부드럽게 권면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목장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목장에서 새교우들을 예수 영접 모임에 참석하여 구원받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목장에서 새생명을 받아 거듭난 사람들, 영적으로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을 생명의 삶에 들어가도록 권해야합니다. 기도를 시작하도록, 함께 봉사에 동참하도록, 간증하도록, 권할때 모든 교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새롭게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나아만 처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하여 변화되고 문제가 다 해결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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