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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영적 공허에서 벗어나 복음전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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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성도 (순복음교회 대학청년국)

  동생의 죽음이 삶의 허무로 내몰아 
  하나님의 위로 속에 선교사명 얻어

  어릴 때 나는 너무 허약해서 자주 앓았다. 이런 나를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신 부모님은 여동생과 남동생을 더 낳으셨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보다 더 건강했던 여동생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 여동생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당시 여동생은 15살, 중학교 2학년이었다.

  골육종암이란 병은 너무 허무하게 나이 어린 여동생을 우리 가족에게서 빼앗아갔다. 당시 꿈 많은 새내기였던 나는 그때부터 신앙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믿고 누구보다 성령 충만했던 나였지만 삶의 회의감은 나를 자살이라는 코너로 자꾸만 몰아갔다. 그순간 만큼은 하나님이 나와는 상관이 없고, 나와 우리 가족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으로 여겨졌다.

사실 나는 5살 때 동네 언니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한 후 달고 살았던 감기도 떠나가고 몸도 아프지 않아 건강하고 씩씩하게 생활했었다. 그러다 아동4부 하계수련회에서 방언을 받게 되면서는 더 더욱 전도도 잘 하고 신앙도 깊은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동생을 떠나보낸 후 하나님이 미웠다. 그렇게 좋았던 신앙도 간곳 없어졌다. 그러자 방언도 소멸되고 하나님과 동떨어진 세상사람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99년 신년축복다니엘기도대성회를 통해 다시 방언을 받게 되었다. 이어 터져나오는 나의 믿음 없음에 대한 회개와 여동생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방황을 벗고 하나님의 위로 속에 평안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을 다시 찾게되자 그해 가을 나는 그동안 가슴에 품고있는 단기선교에 대한 꿈을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2000년 초 난생 처음으로 일본 단기 선교를 가게 되었다. 처음하는 전도라 모든게 어색하고 쑥스러워 마음이 곤욕스러웠지만 단기 선교 마지막 날, 전도지를 거부하는 한 청년에게서 공허한 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 하나님이 울고 계시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울러 하나님이 단기선교를 왜 원하시는지 단기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때의 일은 내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이어 2000년 여름 이스라엘 단기선교팀을 다시 지원하였고 그 땅에서 나는 드디어 하나님께 선교헌신자로 살기로 결단하였다. 그해 2000년 11월 부터는 대학청년국 소속 위트니스클럽에서 찬양, 반주봉사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또한 2001년과 2002년 우즈베키스탄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그리고 2003년에 선교국(PMTI)에서 실시하는 PMTC 과정을 졸업하고 카자흐스탄 단기선교를 다녀오는 등 본격적인 선교헌신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나는 2004년, 2005년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팀의 팀장으로 세움받아 팀을 섬겼다. 2006년도에는 아랍에미리트, 오만, 예멘 단기선교팀을 섬겼다. 또한 2006년 9월부터는 PMTC 간사로 지원하여 오순절 영성으로 선교에 비전을 품은 선교 훈련생들의 훈련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나는 평신도로서 전문인 선교를 통해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예비선교사들의 헬퍼로서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선교비전을 세우는 선교동원가요 평신도·전문인 선교사로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여동생의 죽음으로 야기되었던 나의 영적 공허감을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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