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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파원 코너-전석운] 실종된 남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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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북한에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북한의 반응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북·미 간 훈풍이 불 조짐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을 쏘아올린 직후만 해도 백악관과 미 의회에서 전쟁 가능성이 거론되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느닷없는 국면 전환이다. ‘화염과 분노’ ‘확 쓸어버리겠다’ ‘늙다리’ ‘전쟁 미치광이’ 등 최근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주고받은 ‘말의 전쟁’을 떠올리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일촉즉발로 치닫던 한반도 위기가 진정되고,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서 남북 관계도 평화로 가는 급물살을 탄다면 더 바랄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북한의 행보만큼 예측과 전망이 부질없는 것도 없다. 북한은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네 차례 북·미 협상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합의를 깨거나 후속조치를 외면했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면서도 “진정성을 먼저 보여라”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는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을 만난다면 영광”이라고 했다가,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돌변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와 접촉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곧바로 미 정부 관계자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했다. 차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북한을 상대한 미 정부 인사는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였다. 그런 접촉 끝에 북·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뉴욕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김정남 독살 사건으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의 비자가 거부되면서 첫 북·미 대화 시도가 무산됐다.

이후에도 공식·비공식 대화와 접촉은 이어졌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면서도 지난 6월 억류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석방하기 위한 명분으로 윤 대표를 평양에 급파했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웜비어가 사망하면서 얼어붙었지만, 웜비어가 숨지지 않았다면 대화의 물꼬가 트였을 것이다. 그후 북·미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학술대회 등을 계기로 서로의 의사를 타진하는 노력을 이어갔다. 윤 대표외에도 전직 국무부 관리와 학자들이 북한 관리들을 만나는 ‘1.5트랙’ 대화가 활발했다. 양측이 말의 전쟁을 벌이는 중에도 틸러슨 장관은 “북한과 2∼3개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타까운 건 문재인정부의 존재감 상실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전에는 ‘워싱턴보다 평양을 먼저 가겠다’고 하는 등 남북 관계 개선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정작 취임 후에는 대북 특사조차 보내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남북 정상회담과 군사회담 제안 등은 북한으로부터 묵살당했고, 선거 공약이던 개성공단 재가동은 미국의 반대를 의식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풀기 어렵다고 실토한 것은 문 대통령의 솔직하고 냉정한 현실 진단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 아무런 진전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건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한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니 비핵화 목표를 단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문재인정부는 지금이라도 남북 대화 채널 복구에 정성을 쏟았으면 좋겠다. 한·미 사이에 북·미 대화의 목표와 수단, 절차 등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남북 간 핫라인은 고사하고 아무런 대화 창구조차 없다는 건 더 심각한 사안이다. 한·미 관계의 코리아 패싱만 염려할 게 아니라 남북 관계의 문재인 패싱을 염려해야 할 단계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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