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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윤학원 <5> 대학생 때 동네 꼬마들 모아 연 연주회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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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원’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합창단들이 있다. 선명회합창단(현 월드비전합창단)과 대우합창단, 레이디스싱어즈, 윤학원 코랄, 영락교회 시온찬양대 등이다. 모든 합창단에 애정이 크지만 난 어린아이들과 합창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생소리로 소리만 빽빽 질러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다듬어 화음을 만들어내는 일은 벅찬 감동을 준다.

어린이와 청소년 합창에 관심이 생긴 건 대학 때 발성법을 지도하셨던 곽상수 교수 덕분이다. 곽 교수는 소년합창단을 위한 발성법을 가르쳐 주셨다. 배우고 나니 적용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대학 4학년 때 일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인천 집으로 가던 길에 저녁이 다 됐는데도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점포방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맞벌이하는 집 아이들인데, 밤이 되어도 저렇게 길에서 논다고 하셨다. 쾌재를 불렀다.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연습실은 살던 집이었다. 좁은 집에 초등학생 열댓 명을 모으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방문을 떼어 내 마루와 방을 연결했다. 천방지축인 아이들과 합창을 하기 위해선 먼저 친해져야 했다. 함께 놀아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면서 ‘좋은 동네 형’이 됐다.

대학에서 배운 대로 합창 연습을 시작했다. 제각각 나오던 목소리가 점점 하나로 모아졌다. 배운 대로 되는 게 신기했고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난 인천 시내에 있는 신신예식장을 덜컥 대관했다. 아이들과 연주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포스터도 만들어 붙이고 맹연습에 돌입했다.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큰 보람을 느꼈고 맞벌이한다고 자녀교육을 등한시했던 부모들은 눈물바다였다. 연주회를 마치자 인천문화원 관계자가 나를 찾아왔다. ‘인천문화원 어린이합창단’을 만들면 계속 지도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고마웠다.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인천문화원 어린이합창단은 방송국에도 출연할 정도로 좋은 합창단으로 성장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만든 인천문화원 합창단은 훗날 내가 선명회합창단을 지도할 때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했다. 어린이합창단을 지도해본 노하우가 두고두고 합창 지휘자로 성장해 나가는 데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당시 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사람만 모으면 합창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두 번째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게 합창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경험으로 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당부한다.

“여러분이 지휘할 곳은 도처에 널려 있어요. 어린이만 모으면 됩니다. 그럼 합창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휘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적극성과 열정이다. ‘대충 하면 어떻게 되겠지’와 같은 나태함으로는 절대 좋은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후 나는 가는 곳마다 합창단을 만들어 명물로 성장시켰다. 첫 직장인 동인천중고등학교에서도 까까머리 청소년들을 데리고 합창단을 만들었다. 1년 동안 연습시켜 전국합창대회에 참가해 1등을 차지했다. 미술에 조예가 깊어 미술부에 많은 투자를 하셨던 교장 선생님이 교사 조회시간에 이렇게 외치셨다. “윤 선생,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야기하세요.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이날부터 동인천중고등학교 합창단은 학교와 지역의 자랑이 됐다.

정리=장창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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