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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말테 <2> 대학서 만난 여학생과 치열하게 토론하다 사랑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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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조상들 중 마지막 목사가 200년 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의 부친은 기독교 경건주의자셨다.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혼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까지 공부하셨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교회에 실망해 개종했다. 내 외조부모는 힌두교 신자들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매일 좌선(坐禪)을 하셨다. 내 친조부모도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는 분들이었다.

부친은 교육대학을 다닐 때 전공으로 수학 외에 신학도 선택하셨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평범한 독일 기독교인 가족이었다. ‘독일의 평범한 기독교인 가족’이란 해마다 서너 번만 교회에 나갔다는 뜻이다. 우리 가족은 아들만 4명인 대가족이었다. 집값이 비싼 뮌헨시의 테라스하우스를 구입하다 보니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갑부가 되는 게 어릴 적 꿈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에는 아직 관심이 없었다. 사춘기 시기에는 그게 더 심해져 학교가 정말 싫어졌다. 억지로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13학년 말에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업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기독교교육 시간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교실에서 나가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기독교교육을 가르치던 목사님의 넓은 마음을 악용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그 과목에서 보통 A나 B를 받곤 했는데 나는 D를 받았다. 기독교교육에서 D를 받은 목사는 독일을 통틀어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정말 놀랍다. 화장실에서 토론할 때 친구들과 세상을 비판하고는 했다. 기독교교육, 교사들과 교육제도, 사회 구조와 정치를 비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거대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진리가 무엇인가?”

아무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지 못했다. 곧이어 친구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철학을 전공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다른 결론을 냈다. “아니야, 철학자들은 진리가 여러 가지라고 하잖아. 신학자들은 진리가 하나밖에 없다고 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신학을 공부하자!”

이렇게 해서 나는 신학을 공부하게 됐다. 뮌헨대학에 들어가 이중전공으로 사회학과 신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신학 학사 과정은 진리 탐구로 시작하지 않았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부터 배워야 했다. 포기하지 않은 게 기적이다. 이미 학교에서 라틴어를 공부해 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다 3학기에 폴 틸리히의 ‘존재하고자 하는 용기’를 공부하면서 내가 찾던 진리를 발견했다.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이후 본대학에서 지금의 아내 한정애(협성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당시 아내는 경건파 기독교인이었는데 방언기도를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철학파이자 정치파였다.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러다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배우려는 마음도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란 신비롭다.

아내 덕분에 나는 영적 경험을 했고, 영을 분별하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 목사가 됐다. 아내는 내 덕분에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를 통해 어머니도 교회에 대한 관심이 강해져 장로가 되셨다. 동생도 신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됐다.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전 15:10)”

정리=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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