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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금식

  • 강승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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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참된 금식(사58:1-12)

최용우씨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면이란 글에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것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근심 걱정이 없어 집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저 담당하게 맞닥뜨릴 뿐입니다

그래서 얼굴에 기쁨과 감사와 웃음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얼굴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얼굴을 예쁘게 꾸며도 하나님은 볼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천만금을 가지고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불안과 초조의 표정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환경 때문에 얼굴의 표정이 환하거나 어둡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렀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인간의 생각속에 주의 일을 행하다보면 주의 일을 하는것이 아니고 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여기 본문에도 금식한다 하면서

3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금식자는 왜 하나님이 우리의 금식을 보지 아니하시옵니까?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금식하는데 우리의 금식을 보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괴롭게 하는데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형식적인 금식일 뿐입니다. 보이기 위해 금식했을 뿐입니다. 마치 바리새인이 기도할 때 보이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눅18: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이처럼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함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여기 금식하는 자가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주께서 알아주지 않으시냐고 하지만 이들은 금식 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였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금식은 형식적이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금식을 해 보신분들은 암니다.

첫째날은 잘 보낼수 있습니다. 둘째날은 몹시 배가 고파서 견디기 어렸습니다. 셋째날 가장 어려운데 눈앞에 밥이 왔다 갔다 하며 무엇이나 주워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셋째날을 넘기고 나면 일주일간은 쉽게 지낼수가 있습니다. 일주일 후 부터는 얼마나 괴롭던지 살 맛이 안납니다.

그런데 여기 금식한다고 하는 자는 금식하면서 오락을 구하다니요 이는 금식한다 하면서 몰래 밥을 먹던지 했을 것이요 또한 온갖 일을 시킨다는 것은 도무지 금식에 들어가지 안해본 자입니다.

그러니 형식적으로 보이기 위한 금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4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금식하면서 논쟁하다니요 논쟁할 힘이 어디 있습니까? 금식은 식음을 전패하는 일이기에 논쟁할 힘이 없습니다. 또한 다툴힘도 없습니다.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하는데 어디 주먹으로 칠 힘이 있겠습니까? 식음을 전패하기에 아무 기력도 없고 다툴힘도 없고 주먹으로 칠 힘이 없습니다.

금식은 나는 죽었습니다 하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것이 아니니라 5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오직 보이기 위한 그의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이 금식들은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금식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금식이 참된 금식인가요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참된 금식은 도덕성이 겸비 되어야 참 금식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 도덕이란 사회 내의 약한 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압제를 멈추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강자 또는 집권자가 사회의 약자를 구박한 것은 민간역사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고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그 압제자는 멸망하였던 것입니다.(이상근주석)

 

또한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가난하고 어려운 자를 도와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린 자”에게 자신의 식물을 나눠주어 먹게 하고 집이 없어 “유리하는 빈민”은 자신의 집에 맞아 들이며 “벗은 자”에게는 입을 옷을 주고 “네 골육” 즉 가까운 친족이나 동족을 만나면 그를 도와주지 않겠다고 피하지 않고 그를 맞아 도와 주는 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여리고에 강도 만난자를 도와주는 일이 참된 금식임을 말씀합니다.

눅10: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이렇게 참된 금식은 8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참된 금식은 응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9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다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기도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선지자 시대의 유다 백성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사59:1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냄이라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죄악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생활이 단순한 의식적인 예배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이웃의 불쌍한 자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더욱 중요합니다. 그라한 자의 금식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즉시 응답하여 주실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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