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인왕산을 걸으며

by 그대사랑 posted May 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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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을 걸으며 

- 정석환 교수 (연세대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
 

지난 주말 오랜만에 상쾌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중턱산악회원들과 함께 인왕산을 올랐다. 인왕산은 서울의 역사를 지켜온 산답게 그리고 그 이름의 유래답게 깊이와 품위를 지니며 바위처럼 단단한 생존의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산이다.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이 산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한민족의 눈물의 역사들, 한의 이야기가 펼쳐졌던가. 서대문 형무소와 일제의 아픔, 무악재 고개와 6·25의 아픔, 12·12의 탱크 소리와 민주화 과정의 아픔 등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간직하여 바위처럼 단단해진 산. 우리 한민족의 근성을 상징하듯 이 산은 한성의 수백 년 역사의 피눈물을 굽어보며 오늘도 말없이 눈을 부릅뜨며 그 자리에 서있다.

인왕산이 담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병자호란 시절의 비극과 세검정의 이야기는 이 바위산을 오르는 내내 내 마음을 울리는 공명처럼 되살아나곤 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 임금이 외적의 침략에 재상과 양반들과 함께 수도인 한성을 버리고 피난을 가고,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만 남아 청나라 군인들의 착취의 대상이 되었었다. 청나라 군인들은 한성에 남아있던 백성들의 재산과 음식만 약탈을 한 것이 아니라 부녀자들을 겁탈하며 침략자로서 그들의 야욕을 채웠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치욕을 겪고 한성에 귀경한 후 한성에 남아 있던 부녀자들에 대한 처리문제가 조정에 제기되었다. 당시 엄격한 유교문화의 전통 하에서 여성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조를 잃게 되면 자신의 몸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는 편견에 이미 겁탈을 당한 많은 부녀자들이 스스로 자결을 했다. 살아 남아있는 자들도 남은 어린 자식들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가까스로 생존만을 하고 있던 터여서 조정에서는 무엇인가 그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그때 지혜로운 한 신하가 왕께 고하길, 하루 날을 정하여 자하문 밖 세검정의 계곡에서 몸을 씻으면 그 모든 과거의 일들이 불문에 부쳐진다고 왕의 칙령을 내릴 것을 제안하였다. 왕은 그 신하의 제안을 받아들여 모월 모일을 깨끗함을 받는 날로 정하고 그날 세검정 계곡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의 모든 험한 일들이 다 씻김을 받을 것이라고 공고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날 누가 세검정으로 향한다는 말인가? 벌건 대낮에 만일 세검정에 가서 몸을 씻는 아녀자가 있으면 스스로 그런 경험을 당한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날! 아, 보아라! 새벽부터 한성의 모든 아녀자들이 스스로의 얼굴에 흰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세검정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험한 꼴을 당한 이든지 아니든지 한마음으로 나와 침묵으로 서글픔으로 흐느낌으로 함께 손을 잡고 긴 행렬을 이룬 흰 보자기를 쓴 한성의 아녀자들!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어린아이들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한마음이 되어 지금의 자하문 밖 세검정 계곡에서 서로의 몸을 닦아주며 지난 상처들을 씻어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한 산. 그 이야기의 살아있는 증인이 되어 한성의 역사, 우리 서울의 역사, 이 민족의 역사를 온 몸의 상처로밖에 달리 표현해낼 길이 없어 그 한의 이야기가 돌이 되고 바위가 되어버린 아름다운 산, 인왕. 

상처 많은 삶이 아름답다했던가. 아, 한반도! 한이 맺힌 이 땅을 걸을 때는 정호승의 시가 생각난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인왕산---그 이름은 들을수록 정감 있고 아름답고 위로가 된다.

세검정에서 몸을 씻던 어머니들의 후예들, 그 후손들이 진땀을 흘리며 인왕의 등을 걸었다. 슬퍼서 아름다운 어머니인 조국의 땅덩이를,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걸었다. 세월의 흔적과 함께 쩍쩍 갈라진 인왕의 바위 틈새는 이 민족의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의 증거가 되어 오늘도 인왕산을 오르는 많은 자손들의 가슴에 말없는 말로 지난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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