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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특권을 누립시다 (요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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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특권을 누립시다 (요 16:24)


성경에는 기도에 대한 명령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기도 명령이 많이 나오고, 신약에서는 “기도하라”는 직접적인 기도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너무 많아서 다 셀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때로는 그 명령의 내용도 대단히 강력합니다. 대표적으로 살전 5:17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그 명령이 강제적입니다. 대표적으로 삼상 12:23을 보면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까지 규정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칫 이런 기도에 대한 명령 때문에 기도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의무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기도는 의무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하면 응답을 받게 될 것이고 그때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국민의 의무를 6가지로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첫째가 국방의 의무이고, 둘째가 납세의 의무이고, 셋째가 교육의 의무이고, 넷째가 근로의 의무이고, 다섯째가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 행사의 의무이고, 마지막 여섯째가 환경보전의 의무입니다.

이런 의무의 특징은 마땅히 해야 하지만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에 명시해서 지키도록 하고, 만일 지키지 않으면 적절한 처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방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하는 사람이 기뻐하며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안 갈 수 있는 길을 찾거나 가더라도 마지못해 갑니다. 납세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내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안 내려고 하고 내더라도 마지못해 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는 기뻐하며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고 싶어서 하게 되고, 하고 나면 더욱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의무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를 억지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 기도 자리에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기도는 의무로 여겨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기도가 의무가 아닌데 의무처럼 하게 될까요? 간단합니다. 기도 안에 담겨있는 특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특권을 알아도 피상적으로 알고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할수록 더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특권

그러면 기도의 특권은 무엇일까요? 왜 기도를 특권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일까요?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구하면 받기 때문입니다. 구하는 사람은 구한 것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다른 관점에서 말씀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약 4:2입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하면 받을 뿐 아니라, 우리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놀라운 특권을 말씀해 주는 말씀입니다. 즉 기도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원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정해 놓으신 대로 역사하십니다. 섭리 가운데 세우신 뜻대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신 장면을 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 구원의 과정을 살펴보면,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구원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분에서는 예외적인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1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멸망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세밀하게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소돔고모라 멸망 행보를 진행해 가십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롯과 두 딸이 구원을 받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롯과 두 딸은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는 롯과 두 딸이 구원 받는 일에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롯과 두 딸이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얼마나 기뻤을까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그리고 기도의 소중함을 얼마가 마음 깊이 느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우리에게도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점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도 중요한 것인데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제 스마트폰을 쓴 지가 몇 해가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스마트폰의 기능 중에 손도 대보지 않은 기능들이 참 많습니다.

처음에 무선랜(WiFi)이 뭔지 몰라서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WiFi를 통하면 인터넷 전화를 쓸 수 있고 그래서 전화요금도 대폭 줄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하고 못했고,  MMS 문서 파일이나 요즘 즐겨 사용하는 카톡이라는 것도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앱’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앱을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옛날 핸드폰처럼 써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하나씩 배우고 익히면서 왜 스마트폰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점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 안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특권을 담아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그 풍성한 특권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기도는 하지만 여전히 기도를 의무로 행하며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 특권을 발견하고 그 특권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특권을 누리려면
그러면 우리가 기도의 특권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 눈에 비친 우리네 모습 가운데 낯선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에스컬레이터를 반으로 나누어놓은 것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 가 봐도 에스컬레이터를 반으로 나누어 놓은 곳은 없습니다. 혹 그런 곳이 있다고 해도 옆에 계단이 없을 때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걸어 올라갈 계단이 없어서 걸어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릅니다. 옆에 계단이 있습니다. 걸어 올라갈 사람들은 그리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에 타서도 또 뛰다시피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할 수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둘로 나누어서 서서 올라갈 사람은 오른 쪽에 서있고 걸어갈 사람은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게 한 것입니다. 

외국사람들 눈에 비친 우리들은 바빠도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바쁘게 살아갑니다. 교회생활하랴,  가정생활하랴, 직장생활하랴, 기타 여러 관계들 살피랴 바빠도 너무 바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빠도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시간 안배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은 기도 시간부터 줄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주의 일에 바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주의 일에 열심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바빠집니다. 그래서 이제 시간 안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은 역시 기도 시간부터 줄입니다. 이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토우져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주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주의 일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기도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은 그야말로 영적인 강자였습니다. 믿음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믿음으로 사울의 추격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 다윗이 보여주는 영적인 모습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덮으려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영적 강자가 어떻게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됐을까요? 

삼하 11장을 보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2절을 보면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정말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통일왕국의 왕권을 든든히 장악했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이제 주변에 다윗을 공격해 올 나라가 없습니다. 어느새 다윗에게 영적인 태만이 찾아들게 됐습니다.

골리앗을 대적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던 그 영적인 열심을 찾아보기 힘이 들게 됐습니다. 사울에 쫓기며 부르짖던 그 영적인 간절함을 찾아보기 힘이 들게 됐습니다. 기도가 형식적이 되고 그 기도에 간절함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게을러졌고, 그래서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들이 기도를 쉽니다.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던 사람들이 기도 자리를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특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더욱 열심히 기도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의 특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는 하는데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특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기도는 하는데 왜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야고보 사도가 아주 명확하게 답을 줍니다. 약 1: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는데 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 없이 구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캡틴]이라는 신일덕 장로님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늘 승객을 태우고 출발할 때 이렇게 인사합니다. “할렐루야 신일덕기장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하나님이 동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편안한 여행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은 신혼 여행가는 신혼부부 31쌍과 일반승객까지 해서 150명을 태우고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사이판 공항으로 갑니다. 그런데 공항 도착 15분 전에 유압장치를 점검했더니 유압장치가 고장 났습니다. ‘하이드로릭’이라는 이 유압장치가 고장 나면 바퀴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바퀴를 빼지 않으면 비행기가 동체착륙을 해야 합니다. 
관제소에 연락했더니 그냥 동체 착륙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동체착륙을 하다보면 불이 날 수도 있고 기체가 두 동강이 날 수도 있습니다. 

장로님 마음속에 ‘적어도 내가 교회 장로인데 장로가 운전하는 이 비행기가 사고 나서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나? 그럴 순 없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종간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조종실 바닥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얼마 동안을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자기 몸이 붕 뜨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뇌리 속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이 말씀을 응답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부기장에게 “여보게! 이제 한번 수동으로 조작해봐. 유압장치를 한번 조작해봐.” 손으로 유압장치를 움직였는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퀴가 한 쪽이 빠졌습니다. 또 한쪽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바퀴를 다 펴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오면서 부기장이 기장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기장님! 정말 그 기도해서 바퀴가 빠진 것입니까?” “아니! 여보게! 자네 아까 옆에서 보고도 못 믿나? 하나님이 하신거야.”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의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2013년 기도대행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을특새’를 시작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기도의 특권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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