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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실한 삶을 사십시오 (마 2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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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삶을 사십시오 (마 23:27-28)

여러분들은 여름철 과일하면 생각나는 과일이 무엇입니까? 단연, 수박일 것입니다. 수분도 많고 당도도 높아서 여름철 과일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이 수박을 사기 위해서 한번씩은 고민을 해 본다고 합니다. 다른 과일들은 사기 전에 그렇게 고민하지 않는데 비해 이 수박이라는 놈은 다른 과일을 고르는 것보다 2배의 시간과 머리를 쓴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수박은 겉으로 보기만으로 살 수 있는 과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수박 겉이 잘 생겼다고 해도, 막상 속을 들여다 보면 엉망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박을 고를 때는 겉모양보다 속 상태를 보고 골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수박의 속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좋은 것을 고를 수 있을 텐데, 수박의 속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특유한 방법으로 속이 잘 익은 수박을 고르는 비법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겉과 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샌가 저도 벌써 불혹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이 40이 되면서 요즘 들어 제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일들을 요즘은 자꾸 고민하게 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나는 말과 행동에 일치성을 보이고 있는가라는 제 자신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습니다. 더욱이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더욱 더 말씀과 내 삶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시면서, 오랜 시간 교회를 섬겨오시면서 여러분의 신앙 중심은 여러분의 삶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행동은 일치하고 있습니까? 크리스천으로서의 믿음과 행실이 있으십니까? 

지금까지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여러분은 마태복음 23장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십니까? 저는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꾸중하고 계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보고 저토록 저주스럽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쩜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잘못이 오늘 날 우리의 잘못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을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요?

그 답은 바로 이미 마태복음 23장 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죄는 바로 신앙생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를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장 경멸이 여기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자세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자칭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지도자들로서 자신들의 신앙을 근본적이고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너희가 너무나도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지난 주까지 우리가 나눈 말씀입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자기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식일법을 비롯한 율법규정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얽어 매고 죽이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방인들을 개종자로 만들고는 그들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전도해서 신앙을 받아들이게 해놓고는 그들을 자기들보다 더 지독한 율법주의자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느라고 허덕이다가 결국 율법에 치어서 지옥의 자식이 되어버리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성전이나 제단을 두고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 위의 제물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앙의 본질을 뒤집어버렸고, 신앙의 목적을 수단과 방법으로 바꿔 치기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하나님을 이용해 먹음으로써 하나님을 망령되게 만들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이용해서 제 잇속만 차리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넷째,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비롯한 율법의 조항들을 지킨다고 큰소리치지만 그 근본정신은 저버린 죄를 저질렀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많이 낸다고 큰소리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지 않는다면 이것은 저들과 똑같은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다섯째,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마음에는 탐욕과 방종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다 지킨다고 큰소리치고, 거룩한 척 폼은 잡았지만 그리고 깨끗한 손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는 했지만 탐욕으로 가득 차고, 방종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 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자칭 의롭다고 생각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회 칠한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신이 죽은 다음에는,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 가까운 기드온 골짜기의 비탈진 언덕에 묻히는 것을 가장 크게 소원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언젠가 유대인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올리브 산에 내려와 공동묘지의 중앙 길을 통과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갈 때, 그 때 그 언덕에 묻혀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부활한다고 그들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와와 함께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리신 벌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유대인들은 믿었습니다. 창세기 3:1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시신을 안치할 때는 반드시 세마포로 싸거나 나무관을 이용하여 가능한 한 시신이 빨리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유대지역이 매우 무더운 지역이라는 점도 빠른 매장을 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시신을 땅에 매장하거나 동굴을 묘지로 사용했습니다. 동굴을 묘지로 사용할 경우 입구 바닥에 홈을 파고 둥근 돌로 가로막아 사람이나 짐승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무덤에 들어가셨을 때 그 입구를 돌로 막았다는 기사가 바로 거기에 해당됩니다.

땅을 파고 묻었든 아니면 동굴 안에 시신을 넣고 둥근 돌로 막았든 일단 무덤을 만들고 나면 유대인들은 그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회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덤은 원래 부정한 곳이었고, 따라서 그 누군가가 모르고 무덤 위를 밟고 지나가거나 무덤 곁을 지나가게 되면 불결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덤 위에다가 횟가루를 뿌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순례객들이 어둠 속에서도 그곳이 무덤임을 알아보고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요즘도 갈릴리 바다 근처 티베리아에 가면 율법학자들의 공동묘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아예 무덤 옆에다 횟가루와 반죽통을 마련해 놓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무덤 위에 늘 깨끗하게 횟가루를 뿌리거나 회반죽을 해서 칠을 했습니다. 그러면 무덤 주위도 깨끗해지고, 미리 알아보고 가까이 가지 않으니 부정을 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민족은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들의 조상의 무덤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 하는 것으로 그 집안이 효도하는 집안인지 아닌지 판가름했었습니다. 무덤을 늘 깨끗하게 벌초하고, 비석도 크게 잘 세우면 효도하는 자식이라고 칭찬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효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래서 잘 사는 양반이나 서민들은 무덤을 가꾸고 제사 지내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런 집안의 무덤은 언제나 정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그렇게 조상들의 무덤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런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 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무덤 위에 아무리 회를 잘 칠한다고 해도 그 안에는 결국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무덤 위를 깨끗하게 칠하고, 아름답게 꾸민다고 해서 무덤 속이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짓이요,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하는 짓일 뿐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 조항들을 다 지킨다고 큰소리쳤으니 그 겉모습은 의롭고 깨끗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것이 전부 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요,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들은 위선과 불법이 가득한 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부터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겉으로는 누가 봐도 손색없는 신앙인이지만, 그 속은 참된 믿음을 담고 있지 못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또한 회 칠한 무덤이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그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같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르침은 그것이 아무리 거룩하게 보일지라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들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엄중 경고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오늘의 본문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행위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회 칠한 무덤과 같다는 의미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주고 거룩한 행실을 행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미 그들의 삶 자체가, 아니 유대교라는 종교 자체가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들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회 칠한 무덤과 같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과연 교회 안에서 회 칠한 무덤과 같은 존재는 누구이겠습니까? 화려한 건물, 값비싼 의복, 번쩍번쩍하는 자가용, 호화찬란한 직업과 지위 등으로 겉은 아름답지만 속에는 탐욕과 거짓, 부패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자들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다 회 칠한 무덤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겉은 너무나 초라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 그러한 공동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새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덩치만 큰 교회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속에는 여전히 분쟁과 나눔, 시기와 질투, 주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면 아무리 많은 숫자가 모인다 한 들, 그 교회는 바로 회 칠한 무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비록 작지만,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함께 나누고 사랑할 수 있는 교회라면 그 교회가 바로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한 교회일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삶고 행동이 바르게 일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대로 행동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 성도들이십니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진실함을 가지고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은 교회생활과 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다 이해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조금 못하더라고 그게 서운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가 먼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먼저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준 만큼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필요한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필요한 이들에게 그 필요가 되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모두 이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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