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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어제 본 석탄일 특집 방송 다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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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본거라서 제목은 기억 안나고 다만 여자분들이 출가하여 행자가 되어 수행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스님이 되기 위해서 6개월동안 행자로 이런 저런 잡일과 고생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불교에서 스님들의 고행과 수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힘들고 고된 일 같아 보입니다. 근데 그건 행자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건지 아님 스님도 계속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게 몇가지 있었습니다. 정성이 대단하다는 거죠. 부처에게 쌀밥을 줄때 밥을 풀때 마스크까지 하면서 정성을 드리는 것... 또 드려진 쌀알을 통해서 그 쌀이 나오기 까지의 수고와 거쳐간 손길과 드려진 손길에 쌀알 만큼 복을 많이 받았으면 하는 바램...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이보다 더 큰 정성을 드리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우상에게 행해지고 있는 이러한 정성의 10분의 1이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드리고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자유주의 시대에 이러한 행동은 케케묵은 율법주의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안에 이러한 것도 다 용납되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율법의 심판 보다 새계명의 심판이 더 무섭다고 대전 중문교회 장경동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율법에선 지켜야 될 것 지키지 말아야 될 것이 구분되어 있지만 새계명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간음하는 자가 죄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음욕을 품는 자도 간음한 자라 했고 살인하는 자가 죄가 있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선 미워하는 자가 살인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에서 부터 우리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며, 새계명을 통하여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율법때 보다 죄가 엄청 많다는 것이 됩니다. 또 그 다큐를 보면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하심\ 무슨 뜻이냐 하면...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모르는 척 하라는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 모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히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내세우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해 주고 있는가? 잠깐 본 TV였지만 배울점이 참 많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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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장낙중 2004.05.27. 00:52
\하심\ 그냥 한글로는 그 뜻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전들을 찾아봐도 적절한 것이 없고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보아 \下心\ 이나 \何心\ 정도가 아닌가 싶긴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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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규 2004.05.27. 00:52
그렇게 말씀하시니까...하심...이라는거 불교전문용어인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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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규 2004.05.27. 00:52
지난번에 조용기 목사님이 크게 한 건 했다던데....불교집회에 가서 발언한 내용요...제가 기사를 직접읽은 것이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몰라도...말들이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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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작성자 2004.05.27. 00:52
下心 일겁니다. 낮아지는 마음... 그리고 조용기 목사님에 관한건 잘못 전달된겁니다. 국민일보에 밝힌 바로는 조용기 목사님은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고(다윈종교) 자신은 예전에 불교를 믿었지만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병고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조용기목사님께서 한국교회에 입지도가 크신데 왜 불교대학원에서 그런 얘기를 했겠습니까? 그건 그쪽(불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사를 썼기 때문에 생긴 오보였습니다.
김범석 2004.05.27. 00:52
하지만 성조기 흔들며 성도들을 광장으로 끌고(?) 다니것은 ....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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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점동 2004.05.27. 00:52
제가 텔레비젼을 잘 안봐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배울게 있다면 기본 정신은 배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창섭 2004.05.27. 00:52
저 역시 그 프로와 어제 청화스님의 장자불와(눕지 않고 앉아서 자는 것)와 묵언 수행에 관한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우리의 정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불교를 포함한 타 종교에서 처럼 인간의 열심이 포함되는 예배가 아니라고 요한복음 4장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장낙중 2004.05.27. 00:52
역시 사이트의 성격상 이런글에 대한 반응은 뜨겁습니다.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긴 한데.. \집사\수준이라... 그냥~ ^^*
이창섭 2004.05.27. 00:52
요4장의 내용은(예:예수님 , 사:사마리아여인) 예:물 좀 주소 사:왜 나에게 물달라고 하노 예:내가 누군줄 아나. 알면 나에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거다 사:생수를 어디서 구하노. 당신이 야곱보다 크나 예:내가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 사:나에게도 좀 도. 물길러 오는 것도 힘들다. 예:니 남편 데리고 온나 사:남편없다 예:다섯명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니 남편아니다 사:와~~우째 알았을까 그럼 도대체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하노(여기서 갑자기 예배 문제가 나오는 것을 한번 생각) 예: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온다(여기에 사실 중요한 내용이 엄청나게 있으나 포카스를 예배에 맞추고 진행) 그때가 되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게 된다 사:나도 아는데 메시야가 오면 그 모든 것(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포함)이 해결이 된다. 예: 잇즈 미...그래 바로 나야!!!
이창섭 2004.05.27. 00:52
여기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메시야를 만났음을 전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의도하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무엇일까요?
이창섭 2004.05.27. 00:52
사도행전 17:25이 말씀도 한번 깊이 생각하심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바울이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아덴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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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작성자 2004.05.27. 00:52
이창섭 목사님... 사투리식 대화 무척 재미있습니다. ^^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이 말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장소에 관한 거 아닌지요? 예수님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 다는 것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형식적이 아닌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예배 드리는 곳은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봅니다. 위에 제가 언급한 것은 행위가 아니고 우리의 정성을 말한거였습니다. ^^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저렇게 정성을 드리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세가 어떤가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죠. 요즘 은혜랍시고 너무 예배를 등한시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보입니다. 형식과 규율에 얽매인 예배는 저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어떠한가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모셔 들일 때 거룩하신 성령님하고 말하는 것 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사모하는 것은 신령과 진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러한 것은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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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규 2004.05.27. 00:52
앗뜨거워~~~ 정말 토론들이 후끈 달아오르는 군요...^^
이창섭 2004.05.27. 00:52
정산 목사님, 요4장에서 예수님의 답변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다(예루살렘도 아니랍니다...이거 매우 중요)즉 장소를 이끌어 내기 위한 예수님의 답변이 아니라는 거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의 목적은 메시아가 왔음을 알리는 거고 그 메시야와 신령과 진정의 예배의 상관 관계를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전반부 이야기이고 후반부에는 12제자를 상대로 음식이 아닌(분명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음식을 구하러 갔지만)예수님은 양식이라는 것으로 설명을 하시며 여기에 새로운 예수님의 추수개념이 설명이됩니다. 여기서 다 설명하기는 어렵구요...초점인 예배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계속 대화를 하시는데 그 정점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 하면 여인의 죄를 들추어 내는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여인은 깜짝놀라면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예수님께 다시 질문하는 것이 예배의 문제를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햐지만 자신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리심산이 옳으냐 예루살렘이 옳으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창섭 2004.05.27. 00:52
예루살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행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럼 죄를 용서 받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느냐. 그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때의 문제라고 예수님이 밝히십니다(23절)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렇게(예루살렘이나 그리심산에서의 예배가 아닌 - 형식이나 정성,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예배가 얼마나 거룩합니까? 불교인들의 정성과 대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하시는 것입니다)예배하는 자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때는 언제인가? 사마리아 여인이 알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왔을때입니다. 메시야가 오면 다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명한 법어를 남기셨습니다. \내가 그로라\
이창섭 2004.05.27. 00:52
자 여기서 사마리아 여인이 그럼 우리가 현재 드리는 예배처럼 그런 예배를 드렸는가? 아닙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메시야를 만나는 그 순간이 이미 신령과 진정의 예배였다는 사실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배시간 10분전에 나와서 기도하는 맘으로 준비하고 은혜받기를 준비하고(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준비하는 자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것은 삯이 되는 거죠.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 은혜!!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주신는 선물!!)헌금을 정성껏 준비하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의 죄를 알고 그 죄문제는 오직 메시야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음을 고백하는 그런 예배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나신의 죄성을 항상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죄(이것도 윤리적 도덕적인 죄 말고..원초적인 죄인)를 알아야 메시야의 필요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늘 죄를 깨닫고(이것도 하나님의 열심) -> 형제여 어찌할꼬(이것도 하나님의 열심) -> 회개(하나님 나 도적질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회개는 내죄는 오직 주님외에는 처리하실 분이 계시지 않습니다라는 고백) -> 기쁨(사마리아 여인처럼)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에휴 적다 보니 너무 긴 장문이 되어 버렸고 한편의 설교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요한복음 4장의 전반부를 통해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 관해서 한번 더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을 보실때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우리는 성경을 바라봅니다. 그러지 마시고 선입견을 다 버리시고 성경을 보시고 보시되 될 수 있는데로 \?\\왜 그렇게 하셨을까\라는 것을 스스로 의문을 가지시면서 보시고 그 의문을 풀기위해서 기독서점에가서서 관련된 여러 서적들을 한번 살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구입은 하지 마시고요...아니면 여러분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께 부탁드려서 주석같은 것을 빌려서 보셔도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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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작성자 2004.05.27. 00:52
당연 성경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면 안되죠.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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