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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제가 다니는 교회 담임 목사님 칼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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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gif (File Size: 54.6KB/Download: 0)


  이성호
Subject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던 우리 교회의 젊은 찬양대 지휘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고,
또 42세의 젊은 목사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순교하고, 나머지 22명의 봉사와 구호 활동을 하던
성도들이 탈레반에 납치되자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합니까?”
   저도 이런 분들의 희생을 보면서 그 질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것은 그 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이 오래 살면서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유혹과 핍박 앞에 선 연약한 죄인이지 “의인”이 아니고
우리가 당하는 것이 악을 이기는 연단과 훈련이지 “고난”이 아니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하는 질문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기만
하였을 때, 즉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던지는 질문인 것을 알게 됩니다.

1.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마서 3:10)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그러나 그런 욥도 하나님을 직접 만났을 때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5-6). 성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처음 만난 경험을
이야기할 때 부족한 느낌, 부끄러움, 죄인됨을 고백하는데 한 예가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 6:4-5). 일생을 복음 전파에 헌신한 사도 바울도 자신을 바라보며 고백할 때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15)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데서 신앙이 출발합니다(회개-Repentance). 이러한 우리의 죄인된 상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데서 시작이 되고, 우리가 이러한 죄인의 상태를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Restoration)하는데서 완성됩니다.

2.        우리가 당하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회개”에서 시작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이 전체의 과정이 우리들은
흔히 “고난”이라고 부르는 현실의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사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로 우리를 이끌면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이루어 지는 것이고,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면 시험이 되어 악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시험”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페이라스모스”는 “연단”이라는 뜻과 “유혹”이라는 뜻으로 다 번역이
가능합니다. 동일한 사건이 연단도 되고 유혹도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소유지에서 석유가 터져
나왔는데, 이것이 그를 좋은 사업가로 만들 수도 있고 (연단으로 작용한 경우), 졸부에다 방탕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결국에는 폐인이 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혹으로 작용한 경우). 또 다른 예를 들면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것이 그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일국의 지도자가 되게 할 수도 있고
(연단으로 작용한 경우) 불량배와 어울리는 깡패가 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혹으로 작용한 경우).
이것을 묵상해 보면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가에 따라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기회로 삼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어려운 위기를 닥칠 때, 위기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라고 해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 사건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과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해서 세상적인 일에만 자신을 사용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소위 “고난”이라고 불려지는 기회가 올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성경의 구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1)        그런 “고난”처럼 보이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동기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11).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하고 소망을 가지고 생명을 얻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기본적인 하나님의 이 동기를 믿을 때 그 기회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보입니다.
           (2)        그런 “고난”처럼 보이는 일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거룩한 주의 자녀 다운 모습이
될 때까지 우리를 다듬으십니다. 그래서 내가 주안에 주가 내안에 있게 되는 성화를 목표로 계속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3)        그런 “고난”처럼 보이는 일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33).
주님께서는 이미 이루어 놓으신 승리를 통해서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20) 하고 약속하십니다.

3.        선택은 내가 해야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세상을 염두에 두고 그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 회복시켜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생명과 평안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어떤 기회든지 그것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것인지, 더 멀어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어떤 때는 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류가 하나님께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기회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노예 해방을
주도했던 링컨이나 흑백 평등의 꿈을 외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나 행려병자의 인권을 위해 삶을 바쳤던
테레사 수녀나 자신의 희생을 고난이라고 불평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기회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그런 일을 맡기실까요? 욥기를 보면 하나님은 정말 믿을만한 사람,
고통을 감당할만한 사람, 사탄의 모든 공격에도 이길 사람, 대표선수만 뽑으십니다. 나 자신은
그런 실력이 없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당신과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주변 동료들은 능히 그 기회를 잘 활용해서 자신과 주변을 밝게 만들 신앙과 인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일에 불러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재목이라고 생각해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 기회를 불평과 원망과 좌절로 날려 버리라고 사탄은 계속 유혹합니다. 첫 사람 아담처럼 사탄의 유혹의
소리와 하나님의 약속의 계명은 당신 앞에 있습니다. 누구의 소리를 듣겠습니까?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힘을 내어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일어서는 것이 우리들의 유일한 마지막 남은 희망입니다.
대표선수가 쓰러지면 우리들은 다 패배한 경기의 슬픔을 맛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힘을 내고 이겨 주십시오. 우리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도 기도로 응원합니다. 우리의 경기에
당신이 기도로 응원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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