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야의 기적 (요 6:5-13)

  • 잡초 잡초
  • 296
  • 0

첨부 1


  설교 





제목  광야의 기적
이름  문기태 None
첨부 


(요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요 6: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요 6:7) 빌립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d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 (d.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요 6:8)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요 6:9) "여기 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요 6:10) 예수께서 "사람들을 앉혀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잔디가 많았다. 사람들이 앉았는데,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요 6:11)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요 6: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 6: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어느 집에 침입한 도둑이 주인을 협박했습니다. "조용히 하고, 갖고있는 현금 다 주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그러자 주인이 볼멘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놈아, 의사도 살릴 수 없다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살려준다는 거야."

인생은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같은 위기에 처할 때를 만납니다. 이런때 우리는 기적을 기대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에 나타난 기적을 나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문제를 만나야합니다.문제는 기적의 씨앗입니다. 문제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처를 줍니다. 문제는 갈등을 유발하고 위기에 직면하게 합니다. 문제가 올 때 우리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두려운 느낌을 갖게됩니다. 문제는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문제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낙심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기적의 재료로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문제를 풀어주는 지도자를 찾습니다. 문제를 잘 풀어주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문제를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안목으로 문제를 바라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직면한 문제에 창조적으로 반응합니다. 문제가 찾아오면 문제를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문제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친구로 삼습니다. 문제를 새로운 배움의 기회로 봅니다.
우리가 문제를 적으로 보면 문제가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친구로,스승으로 대하면 문제는 우리 곁에 와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자극합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지혜를 줍니다. 문제속에서 기회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줍니다. 문제속에서 비전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줍니다.

성경은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랐기 때문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빈 들에서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병이어로 남자만 5000명을 먹이는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골치 아픈 문제를 가지고 빌립을 시험하십니다. 빌립이 이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다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겠는냐?"하고 물으십니다. 빌립은 문제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정확한 계산을 하며 고민하다가 기적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모두 먹게하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빵을 사와도 부족합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빌립과 달랐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예수님께로 이끌어왔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기적의 재료를 찾아 문제 한 가운데로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기대한다면 빌립보다는 안드레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지말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잇는 안목을 키워야합니다. 문제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를 통하여 기적을 경험하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안드레에게 이끌려 온 어린 아이의 도시락이 기적의 밑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것을 사용하여 오 천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나 부스러기를 모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중에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기적을 기대하고 보잘것 없는 도시락을 가진 어린아이를 이끌어 온 안드레같은 제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이지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도록 자신의 소유를 예수님께 기꺼이 드린 그 어린아이가 거기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은 아무 기적도 행하시지 않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동일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정말 많이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아무런 기적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 안드레같은 믿음을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에 예수님께 표현할 줄 모르고 빌립처럼 계산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는 어린 아이처럼 작은 것이지만 주님이 기적의 재료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드리지 못하고 이기적인 욕심으로 감추어두고만 있기 때문은 아닌지 솔직하게 자기를 성찰해야 합니다. 기적을 보기를 원하면 기적의 재료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전적 신뢰입니다. 어떤 문제도 예수님의 손에 맡기면 해결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최선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쓰고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준비했던 것이지만 주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니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들은 척도 안하지만 나라도 드려야 겠다. 하는 사랑의 헌신이 드려질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가정에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린 아들이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가난했습니다.
"여보, 우리 앤드류는 이제 죽은거나 다름 없소. 수술비가 이 작은 집을 팔아도 모자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아아아... 오직 기적만이 앤드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소."
부모의 대화를 엿듣던 어린 아이는 자기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남동생을 기적만이 살릴 수 있다는 아빠의 말을 되새기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깊숙한 곳에 숨겨 놓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 유리병에 있는 동전을 방바닥에 다 쏟아 놓고 여자 아이는 세고 또 세었습니다. 그러더니 동전을 유리병에 다시 담은 후 옷깃 속에 유리병을 감추고 살짝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여섯 블록쯤 걷자 자그마한 약국이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는 조제실 앞 유리문에 서서 약사가 자기를 쳐다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약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느라고 바빠서 그 아이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아이는 동전 한 잎을 유리병에서 거내 유리창을 두들겼습니다. 낮은 유리창 너머로 목을 내민 약사는 귀찮다는 어조로 대꾸했습니다.
"넌 뭘 원하니? 나는 지금 오랜만에 내 형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전 기적을 사러 왔어요."
"뭐라고?" 약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 어린 남동생의 이름은 앤드류인데요, 머리 안에서 뭔가 나쁜 것이 자라고 있대요. 아빠가 그러시는데 기적만이 제 동생을 살릴 수가 있대요. 그런데 기적은 얼만가요?"
"우리 가게에서는 기적을 팔지 않는단다. 안됐다만 나는 너를 도울 수가 없겠구나." 약사는 약간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아저씨, 전 기적 값을 갖고 왔어요. 만일 모자라면 더 가져올게요. 기적 값이 얼마에요?"
그 여자 아이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사가 그 아이에게 다가왔습니다. 바로 약사의 형이었습니다.
"얘야, 네 남동생은 어떤 기적을 필요로 하지?"
"저도 모르겠어요. 제 어린 남동생은 머리가 많이 아파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용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 돈을 쓰려고 해요."
"너는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데?"
"1달러 11센트요… 그렇지만 모자라면 더 가져올게요."
"이것 참 우연의 일치구나, 네 동생을 위한 기적 값이 바로 그 돈이랑 똑 맞아 떨어졌구나."
그 신사는 한 손에 그 아이의 동전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너의 집까지 데려다주겠니? 내가 네 어린 남동생과 가족을 만나보고 싶구나. 아마도 네가 원하는 기적을 내가 줄 수가 있을 것 같다."
그 신사는 다름 아닌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뇌수술 전문의, 칼 암스트롱 박사였습니다. 시카고에서부터 동생을 보러왔던 그는 앤드류의 병이 자기 전공분야인 것을 알았고 그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기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수술비는 무료였습니다. 물론 가장 기뻐한 건 앤드류의 부모였지요.

"아아…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비싼 수술비를 면제받은 것인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자 아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기적이 얼마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적의 값은 정확히 1달러11센트였지요. 거기에는 물론 그 여자 아이의 사랑과 믿음이 가산되었구요.
이처럼 믿음위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이 실릴 때 주님은 그것을 받으시고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그 작은 것을 가지고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사람들을 잔디에 앉히고 모두가 보는 가운데서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누어주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바로 감사 기도가 기적을 불러온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그것은 감사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사람은 오 천여명이나 되는데 가진 것은 어린 아이 하나의 배를 채울 양인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개에 불과했습니다. 턱없이 부족함을 모를리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화려한 성찬이라고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평을 일삼습니다. 그런 환경이면 사람들은 원망하기를 잘합니다. 예수님도 군중들을 향해 "어린아이도 순종할 줄 아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 게요." 하고 책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아니 이럴줄 몰랐어 칠칠치 못하게 음식도 준비하지도 않고 뭐하는거야." 힐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셨습니다. 그 적은 것을 붙들고도 감사하셨습니다. 왜 사람들이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까? 내게 주어진 것을 보며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생활을 실패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어둡게 보기 때문에 감사에 실패합니다. 소수의 헌신자 순종자를 보기보다는 다수의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이기적인 욕심에 찬 사람들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 충만하고 헌신할 줄 아는 두 사람을 보고 기적을 행하시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수를 먹이셨습니다.

1874년부터 3년동안 미국 미네소타주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극심한 가뭄과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농작물은 전부 상했습니다.설상가상으로 경제 대공황이 겹쳐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습니다.사람들은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었습니다.1877년 4월27일 필스버리 주지사의 연설은 주민들을 감동시켰습니다."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이 시련을 통해 반드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고통의 날'인 오늘을 `감사기도의 날'로 정하고 한 목소리로 기도합시다" 주민들은 필스버리 주지사의 말에 따라 한 목소리로 기도했습니다.며칠후 들판을 새까맣게 덮었던 메뚜기떼가 전부 사라졌고 경제도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기쁠 때는 누구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난의 때에는 감사기도를 드리기 어렵지만,그 감사기도가 기적을 만든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감사의 조건이 있는데도 이것을 물에 기록하기 때문에 잊고 맙니다. 건망증이 심해서 잊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불평할 일이 생기고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감사해보세요. 그러면 우리의 삶은 역전이 됩니다. 영적 생기가 생깁니다. 새로운 촉진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밝은 면을 보면서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여성 두 사람을 꼽는다면 크로스비와 헬른 켈러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 사람다 장애인이란 점입니다. 크로스비는 출생한지 6주밖에 안되었을 때에 안질을 앎았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불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비는 신앙으로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불행은 변하여 은총이 되었습니다. 여사는 잃어버린 시력대신에 신앙의 영안을 떠서 찬송가 6000여 작품을 썻습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이 밝고 소망을 주는 감사의 시란 점입니다. 예를 들면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같은 정말 아름다운 시입니다.

헬렌 켈러는 성홍열로 귀머거리, 맹인,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선생의 피눈물 나는 교육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에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놀라운 것은 여사의 글도 감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불행하다 해도 크로스비나 켈러보다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사로 일생을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에 인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기적의 역사가 보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예수님의 감사를 배우면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믿습니까? 부족하게 느껴져도 풍족해질 것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해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광야에서 일어난 것보다 더 큰 기적을 삶속에서 수없이 경험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위해 안드레같이 예수님이 오늘도 이 일을 통해 튼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름모를 어린아이처럼 내가 가진 적은 것이라도 주께 드려 주의 손에 들려지면 훨씬 가치잇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데 쓰일 것을 기대하고 헌신하기를 주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부족한 중에 감사하고 평범한 일에 감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신앙의 자세를 갖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수없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