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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에 있는 것을 사용하라 (출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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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의 책이 소개된바 있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14살 때 받은 선생님의 질문을 잊지 못한다고 회고 했습니다.

“자네들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때 빙긋이 웃으시며 “자네들이 대답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어. 하지만 말이야? 자네들이 50세가 되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면 인생을 낭비한 것이야.” 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그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고, 현재 자신의 모습이 되기까지 깊은 감명을 준 교훈이었다고 합니다.

나이만큼이나 세월을 살아오신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분 삶은 어떤 결과로 존재하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 모습으로 오늘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기억조차 하고??싶지 않은 모습과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점검해 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았다면 모세처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따라합시다. “네 손에 있는 것을 사용하라”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목자로서, 광야의 벌판에 서 있는 모세에게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모세야 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지닌 목자의 상징이었던 지팡이를 들고 있는지 몰라서 묻어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애굽 궁중에서 왕자로써 잘나갔던 모세가 40년간이나 지냈지만 어느 날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피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 40년 동안이나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드로 장인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밤낮으로 짐승을 치며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니 무능하기 짝이 없고, 연약함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광야에서 의미 없이 살아가던 모세를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사용하시기 위해 일깨우기 위하여 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신 목적은 모세를 사용하시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들을 어떻게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해 오셨습니까? 이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삶의 변화를 새롭게 체험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첫째로 지금까지 살아오신 내어놓을 만한 결실이 있습니까?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살아 온 모세에게 네가 살아오면서 내어놓고 자랑할 만한 인생의 결과가 있느냐?’ 고 물어보셨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상관없이 산 인생, 자신과 동행하지 않았을 때 인생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모세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이었지만 바로의 공주 아들이 되어 왕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모세는 투토모스(Thutmoses) 3세 때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모세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는 ‘물에서 건진 아이’이지만, 이집트 언어로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뜻으로, 모세는 바로왕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애굽을 포함한 근동지방을 통치할 만한 능력과 지식과 힘을 가지고 있었고,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역사를 분석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그 결과는 사람을 죽이는 일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민족을 위해 힘을 써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민족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자신의 생명 하나를 건지기 위해 왕궁을 떠나 광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왕자로 있다가 광야로 도망치게 된 모세는 아마도 마음에 수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원래 꿈꾸던 삶은 이게 아닌데…….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어서야지, 지도자로 다시 일어서야지.’ 또다시 한번 역사 앞에 지도자로 일어서야 한다는 꿈으로 몸부림쳤지만 양을 치는 목자 이상의 존재가 되지 못한 현실에 그는 순간순간마다 무력함을 느꼈을 것이고, 처절하리만큼 좌절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고, 현실에 대해 외면하고,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모두 이 광야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모세의 활동무대는 더 이상 왕궁이 아니었고, 고상한 인격과 세계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 민족을 이끌고 나갈 수 있기 위해 받은 훈련받은 지식이나 경험들이 이 광야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단지 좋은 목초지가 어디 있는지를 살피고, 어린 양의 울음소리에 긴장하고, 달려가야 하는 평범한 목자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삶의 결과는, 자기의 꿈을 묻은 광야와 목자의 상징인 지팡이를 통해 얻은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또한 모세가 받은 자연 속에서의 연단, 광야의 고독을 통한 깊은 묵상도 영적인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만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만한 영적인 감각이 그에게 없었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의 영성은 황폐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찾아가셔서 질문하신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나름대로 은혜를 사모하며, 내 자신이 설정한 삶의 기준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결실이 지금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내어 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광야의 모세처럼 어느 순간에 희망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현실에 매여서, 꿈도 기쁨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짧게는 금년 반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결실의 계절이 얼마 후에 곧 다가오고 있는데 열심히 살아온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내어놓을 만한 헌신의 업적이나 공로가 얼마나 되느냐? 라며 질문하신다면 서슴치 않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나아가서 일평생 살아온 삶의 결실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작은 희망이나 사랑,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는 영적 메마름이 나의 작은 두 손에 들려있지는 않은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혹시 왕의 지팡이가 들려져 있어야 할 모세의 손에 대신 목자의 지팡이가 놓여 있는 모습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자신과 동행하지 않은 모세의 광야에서의 생애를 통해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모세로 하여금 철저하게 보게 만드십니다.

모세의 이러한 경험은 출애굽기 32장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모세는 히브리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자 주신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모세는 깜짝 놀랄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론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악한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세야 내가 약속한대로 이 백성을 저 가나안 땅까지 내 사자를 보내서 인도하겠다. 약속은 지키겠는데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

약속의 땅으로의 입성인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목표로 하는 가나안 땅에만 도착하면 목적은 이뤄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기를 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모세는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모세는 그곳에서 주저앉아 절규하며, 이렇게 간구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모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철저하게 깨달았던 것이 있습니다. 화려했던 왕궁 생활 그리고 지치도록 살았던 광야 생활, 그 어느 쪽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목자의 지팡이에 불과하다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자기 인생과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목표와 만족을 얻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떠나신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씀하심으로??모세가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철저하게 깨닫기를 원하셨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갑니다. 광야의 여정 속에서 진짜 신앙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나 가진 것이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 귀한 축복된 유산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네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봐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에 왕궁에서의 훈련을 통해 자기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이 싸울 때에 이스라엘 편에 서서 애굽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동족끼리 싸우지 말라고 말리는 모세에게 오히려 “누가 너를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합니다. 이는 모세의 꿈을 깨뜨려 버리는 한마디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킬 사람이라 여겼는데, 자신의 허무를 발견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광야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사명과 꿈도 다 접은 광야에서 목자로 살아가며 목자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또 한번 발견합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려고 하실 때에도 모세는 “아니요. 그것은 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옛날 한때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 이상이 아닙니다. 내가 배웠던 지식, 가졌던 지혜 아무것도 소용없었습니다. 짐승과 함께 뒹굴면서 오직 좋은 목초지를 찾는 그런 평범한 목자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인간의 무력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민족을 구원하다니요? 아닙니다. 저는 실패자입니다. 살인자 입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광야에서 양이나 치는 평범한 목자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살펴보니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 앞에 제일 먼저 질문한 것이 바로 “하나님 내가 누굽니까? 내가 누구기에 하나님 나를 다시 부르십니까? 아니요, 하나님 나는 목자 이상의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부르지 마시고,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요. 이대로 살다가 죽게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을 통해서 모세 그가 진정 누군 인가? 라는 것을 알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은 겸손하게 하지만 사실 ‘나는 대단한 존재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여유 있고, 지식도 있고, 권세와 명예도 있으니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거짓된 자만심에서 나오는 허영과 교만, 그리고 한계 있는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오만과 무모함으로 모세처럼 스스로 지도자로 자처하며 살아가는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그런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사는 부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아! 인간이라는 것은 노력하고 애쓰고, 무엇을 집어 봐도, 무엇을 획득 해봐도, 무엇을 소유 해봐도 결론은 허무한 것이구나.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도 같은데 양파껍질 벗기듯이 벗기고 벗기면 끝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구나. 아! 인생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구나.’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주어진 여건과 형편대로 소망마저 접어주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왕궁 40년 생활과 광야 40년 생활을 허락하셨을까요? 모세 자신이 누구인가 깨닫게 한 후 사용하시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평가합니다. 좀 부하면 귀한 존재요, 좀 어렵고 실패하면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모세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야, 환경에 따라 너의 가치가 존귀해지거나 비참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청합니다. “모세야, 너의 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팡이를 던져보아라!” 모세가 던졌습니다. 갑자기 뱀으로 바뀌었습니다. 광야생활에 익숙한 모세는 뱀의 무서움을 압니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서 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뱀은 애굽의 상징이었습니다. 애굽 왕의 왕관 속에는 나라의 상징인 뱀이 그려져 있어서, 어려서부터 모세는 애굽과 뱀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뱀을 피하면서 모세는 바로 이 애굽에서의 권력과 죽음의 위협을 피해 광야로 도망쳐온 자기를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죽음의 위협 앞에서 피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저 뱀 앞에서 피할 수밖에 없는 나는 그런 존재구나. 이것이 나로구나......’

동시에 자신의 상징과 같은 지팡이가 뱀으로 변할 때 모세는 자신 안에 있는 사악함과 교만을 보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뱀이 약 70번 정도 등장합니다. 뱀이 등장할 때마다 뱀이 상징하는바 공통적인 특징은 교만과 파멸과 마귀입니다. 순간 그 앞에 나타난 뱀을 바라보며, ‘아! 내 속에 악함과 교만이 바로 지팡이가 변하여 된 뱀과 같구나......’ 그렇게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용하시기 위해 애굽의 바로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뭐라고 한줄 아십니까? ‘오! 하나님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나는 가말리엘 문하의 학자요,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볼 때 대단한 사람이라 할지 모르지만 진정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요, 나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그의 죄를 대속하시고 씻어주셔서 하나님 자녀로 다시 삼아주시며, 하나님 일꾼으로 세워 주신 은혜를 깨닫고 선포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함이 없다’ 그리고 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여건의 어떠함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여겼으나, 모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실체와 모습은 이미 실패한 자요, 이미 무너진 자요, 소용없는 자라는 것, 그러나 오셔서 다시금 쓰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말씀으로 자기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세우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맹자의 맹모삼천지교 이야기에서도 교훈합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 제일 먼저 이사 간 곳은 장의사 옆집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들은 울고 장례연습을 합니다. 그 다음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시장 통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아들은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흉내 냅니다. 마지막에는 학교 근처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의 지혜로운 어머니를 대표하는 분이 시행착오를 3번 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재해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세 번이나 이사한 맹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끊임없이, 누구든지, 언제든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세운 인생의 기초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시장바닥에 가서 생존경쟁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배우지 말아야 할지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별 가치 없는 존재지만 주님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세에게 일깨워 주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통하여 일깨워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여 모세처럼 헌신하게 될 때 낙심하지 않고, 다시금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발견한 사람, 나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앞으로의 삶은 더욱 중요합니다. 모세는 뱀으로 변한 지팡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어떤 일이 전개될지도 몰랐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뒤로 물러서서 피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또한 뱀처럼 엄청난 애굽을 상대로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도 광야로 피해왔듯이 도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합니다. 뱀은 머리를 잡아야지, 꼬리를 잡으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아마 모세는 얼떨결에 뱀의 꼬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꼬리를 잡자마자 뱀은 다시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상식 밖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에 그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오는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17).” 모세가 피해서 도망간 뱀, 그것도 뱀의 머리가 아닌 꼬리를 잡았는데 다시 지팡이가 되어 그의 손아귀에 돌아온 것을 보고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실패와 그리고 깨어진 꿈의 상징이었던 지팡이가 하나님 앞에 높이 들려지면서 자신의 인생이 새롭게 쓰임을 경험한 모세는 그 사건이후에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위대한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訶川要産)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사 직전에 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구출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1909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그는 신가와 빈민굴 한 평짜리 오두막으로 이사하여 빈대와 벼룩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고독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는 굴뚝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기 밥으로 죽을 쑤어 함께 먹었습니다.

불량배들에게 맞아 앞니 4개가 부러지는 핍박을 이기고 주일학교를 세웠으며, 그가 휴지를 주워 쓴 소설 ‘사선을 넘어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그 수입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주후 1927년 일본 노조를 최초로 설립하였고, 1929년에는 일제 군부에 항거했고, 투옥되었다가 종전 후 실명상태에서 다시 빈민굴로 돌아와 사랑의 봉사를 계속했습니다. “당신 자신을 주시오.” 이것이 그의 신조였습니다. 자신을 드린 헌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귀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왕궁을 지어놓고 완성하기 위해 큰 거울을 하나 주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울을 운반하던 상인이 그만 실수를 해서 거울을 깨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왕궁을 설계했던 설계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깨어진 거울조각 있는 데로 가서 망치로 그 조각을 더 잘게 깨뜨려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큰 거울 대신에 조각난 거울을 붙이기 시작했고, 잘게 부서진 거울은 태양이 비칠 때에 영롱하고 찬란한 무지개 빛을  내면서 이 왕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세로 40년 동안 왕궁에서 리더 훈련을 받게 하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광야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게 하신 다음, 마지막 인생의 40년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하셨던 하나님은 바로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시기 위해 이 시간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실패조차 아름답게 사용하셨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발견하고 여러분도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헌신하여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NOAH was a drunk.... 노아는 술 취한 사람이었고,

ABRAHAM was too old.. 아브라함은 너무 노쇠하였고,

ISAAC was a daydreamer....이삭은 공상가였고,

JACOB was a liar...야곱은 거짓말쟁이였으며,

LEAH was ugly...레아는 못생겼었습니다.


JOSEPH was abused....요셉은 학대를 받았었고,

MOSES couldn't talk....모세는 말을 잘 못했지요.

GIDEON was afraid....기드온은 두려워했고,

SAMPSON had long hair & was a womanizer ....삼손은 긴 머리에 바람둥이였고.

RAHAB was a prostitute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JEREMIAH and TIMOTHY were too young...예레미아와 디모데는 너무 어렸었고 ,

DAVID had an affair & was a murderer...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였지요.


ELIJAH was suicidal. ...엘리야는 심한 우울증 환자였고,

ISAIAH preached naked. ...이사야는 벌거벗은 설교자였고,

JONAH ran from God.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였습니다.


NAOMI was a widow....나오미는 과부였고,

JOB went bankrupt. ...욥은 파산하였고,

JOHN the Baptist ate bugs....세례 요한은 벌레를 먹었고,

PETER denied Christ...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으며,

THE DISCIPLES fell asleep while praying...제자들은 기도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MARTHA worried about everything....마르다는 모든 일에 대해 근심하였고,

MARY MAGDALENE was demon possessed...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이 씌었었고,

The SAMARITAN WOMAN was divorced..more than once!!...사마리아의 여자는 이혼했었고, 그것도 한번 이상 이었습니다.


ZACCHEUS was too small. ...삭개오는 키가 너무 작았습니다.

PAUL was too religious...바울은 너무 율법적이었으며,

TIMOTHY had an ulcer....디모데는 궤양이 있었고,

AND LAZARUS WAS DEAD....나사로는 죽었었습니다.


NO MORE EXCUSES....이제 더 이상의 핑계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쓰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002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카터, 그는 임기말년 이란에 인질로 잡힌 대사관 직원을 구하기 위해 미 특공대를 투입했지만 헬기가 떨어지면서 구출작전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히 미국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경제가 활기를 띄면서 미국경제는 위축되고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불안함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레이건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백악관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우린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로 기억합니다만, 당사자인 지미카터 대통령은 어떠했을까요? 플래시는 새로운 대통령 레이건을 향해 터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운데 떠나야 했던 외로운 대통령 지미 카터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동분서주 해 보았지만 남은 것은 실패뿐이었습니다. 역사 속에 길이 남는 실패자, 오명을 씻을 수 없는 사람,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아, 넌 나의 여전히 귀한 존재야.” 자신의 손에 들려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부름 앞에 자신의 실패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직에 물러난 후에 카터재단을 세우고 고통과 분쟁이 있는 지역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기도하며 모든 일을 행하였습니다. 퇴임 후 대통령이 갖는 일반적인 안락한 노후생활을 거절했습니다. 그의 인생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음을 확신하고 실패를 툴툴 털고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받은 수많은 상외에 이번에는 노벨상을 받음으로 인해 그의 삶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취할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변함없고 여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인생에 대해 하나님은 철저히 광야를 통해 가르치시기 원하십니다.

한해의 절반이 지나지 오랩니다. 장마가 끝나면 머지않아 가을 문턱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만 비가 오지 않고 또 다시 장마 기간이 연장 된답니다. 하나님은 오늘 수요 예배에 나온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시는 주님의 질문을 생각하며 짧게는 금년 반년과 내 일생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고달픔과 깨어진 꿈의 상징이었던 지팡이가 본문 20절에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표현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보잘 것 없이 여겨졌던 지팡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사용하시니 광야 생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기적의 지팡이 권능의 지팡이가 되어졌습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2: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고합니다.

무디(D L Moody)는 자기의 전도 강연을 들은 사람으로부터 이런 충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강연은 문법적으로 틀리는 게 많습니다. 대중연설은 좀 삼가시는 것이 좋겠는데요.” 그는 학자였습니다.

그러자 전도자 무디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미안합니다. 저는 그렇게 부족하지요. 그래서 말하는 것도 서투르고 많이 틀립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주님을 위해 쓰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당신의 그 좋은 지식과 통찰력과 판단력이 참 부럽습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시는지요?”라고 말하자 아무런 대답도 못하더랍니다.

아름다운 헌신의 기준은 지식이나 재물이나 능력의 많고 적음, 그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데 참된 헌신과 아름다운 헌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을 위해 어떤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좌절하여 의미 없이 살아가는 나의 삶이 이제는 네 손에 있는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해 보라는 음성을 듣고, 결단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노력해 보시다.

“ 주여! 나의 건강을 드립니다. 재능을 드립니다. 믈질을 드립니다. 시간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라며 네 손에 있는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임 받는 헌신자로 순종하므로 능력의 삶, 승리의 삶, 나를 통해 모든 가족과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생애가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아멘>

* 기도 : 어린 아이가 가진 적은 오병이어의 헌신을 통해 베데스다 광야에 모인 장정 5,000명과 모든 무리 약 2만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게 하시고, 모세가 자신의 생계 수단의 전부이었던 광야에서 짐승을 치는 지팡이를 의지하였지만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나를 위해 사용하던 것을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사용하였더니 출애굽을 지휘하고 인도하는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의 인생이 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네 손에 들려진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초라하고, 족하오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충성되게 헌신하여 쓰임받기 원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도구로 사는 일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저희 미스바교회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 영 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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