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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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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은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들이 지키는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을 한 주간 앞둔 이 시간 맥추감사절의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해마다 지킨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첫째, 유월절입니다. 이 절기는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맥추절입니다. 한해의 첫 곡식인 여름의 밀, 보리를 수확한 후 햇곡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맥추감사절이 이에 해당됩니다. 셋째, 수장절입니다. 가을에 추수를 한 후 풍성한 양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제사를 지낸 절기입니다. 이는 오늘날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신약시대의 교회에서는 4대 절기를 지키고 있는데, 성탄절,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이 그것입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은 구약시대의 유월절과 의미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통해 죄악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가 성탄절과 부활절이기 때문입니다.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은 지금도 각 나라마다 계절에 맞춰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절기에 대하여 본문 16절에 말씀하시기를“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로지택으로 한해의 첫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들이 먹고 마시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녀들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절기입니다. 그러므로“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명령하셨습니다.

一. 맥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1. 감사하면서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올해에 밀, 보리 농사짓는 것을 보신 분이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 보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도회지에 살기 때문에 밀, 보리 농사짓는 것을 보실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농촌에 가도 밀과 보리를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밀, 보리를 재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밀과 보리는 우리들의 주식이었습니다. 봄이 되면 밀과 보리를 수확하기 까지 먹을 양식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를 가리켜 춘궁기(春窮期)라고 했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 밀과 보리가 익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견디다 못해 칡뿌리, 소나무 껍질을 벗겨 양식을 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춘궁이란 말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뿐만 아니라 밀, 보리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을 것이 넘쳐 납니다. 잉여 농산물을 관리하는 비용만 하더라도 수천억 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 우연입니까? 우리들의 힘만으로 이룩한 부(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혹‘나는 감사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욕심의 그림자가 내 마음을 가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욕심이 감사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못된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도록 합니다. 낙심하게 합니다. 끝내 실패하게 합니다.

미국의 상담 전문가인 노만 빈센트 피일 박사 에게 어느 날 5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노만 빈센트 피일 박사를 만나 상담을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고 피일 박사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희망도 없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깊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피일 박사는 그에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당신의 귀중한 재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번 찾아봅시다.”라고 하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입니까?”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피일 박사는 그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부인은 게신가요?”하고 묻자
“결혼 생활 30년에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이 나를 격려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몇이나 되는지요?”
“예, 셋인데 착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좋은 친구 몇이 있습니다.”
“건강은 어떤가요?”
“건강은 좋아서 누워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할일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하나님은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화 중에 찾아낸 것을 재산목록에 적어보았습니다.
① 훌륭한 부인이 있다.
② 착하게 자라는 자녀들이 있다.
③ 의리 있는 친구들이 있다.
④ 건강이 있다.
⑤ 미국에 할 일이 많다.
⑥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피일박사는 이 중년 신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과 여기에 기록된 재산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그는 부끄러운 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큰 보화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그는 자신에 찬 발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대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을 발견하여 감사하면 소망과 용기가 생깁니다. 이러한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쇼펜 하우엘은 “사람들이 가진 것은 좀처럼 생각지 않고 늘 없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이 세계의 가장 큰 비극이다.”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립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나가버린 것과 없는 것만 생각하며, 그것을 원망하고 탄식하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이는 스스로 자기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하셨습니다.

2. 회개하면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풍성한 양식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죄짓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개에게 주인이 먹이를 주는 까닭은 도둑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젖소에게 주인이 풀이나 사료를 주는 것은 젖을 억기 위함입니다. 닭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계란을 낳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에게 풍성한 양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까닭에 허물과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양식을 먹고 범죄한 일은 없는지 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살펴 잘못된 것을 찾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이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찾지 않으십니다. 완전한 의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옥가야 마땅할 존재임을 깨닫는 사람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3. 화목하는 날로 지켜야 합니다.

절기를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신명기 16:11 말씀에“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지니라.”하셨습니다. 감사의 절기에는 자녀와 종, 거민과 객, 고아와 과부 모든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약에는 맥추절 절기 즉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며, 자가의 소유로 서로 도와가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맥추절은 화목의 절기입니다. 성경은 화목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24)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양식을 주신 것은 그 것을 먹고 힘 얻어 서로 다투며 반복하며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며 도와가며 화목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화목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9에 말씀하시기를“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하셨습니다.

어느 날 홀어머니가 결혼하여 분가한 아들 내외를 찾아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을 열고 어머니를 맞은 사람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귀하게만 키운 아들이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너 지금 무엇을 하느라고 고무장갑을 끼고 있니?”
“예, 빨래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니, 네 처는 무엇을 하고 있는데?”“감기로 누워있어요.”
“대학까지 공부시켰더니 겨우 고무장갑 끼고 빨래나 하고 있어, 못난 녀석 같으니!”
화가 난 어머니는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어머니로서는 화가 날 법도 했습니다. 일찍 홀몸이 되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식에게만 소망을 두고 고이 키운 자식이었습니다. 기대한 대로 아들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차 결혼을 시켜 분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귀하게 기른 자식이 장가들어 빨래나 하고 있다니, 가부장적 질서에 익숙해진 어머니로서는 아들의 모습이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딸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문을 열고 맞이하는 사위의 손에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는 것을 본 장모가 사위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무얼 하고 있는가?”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애는 어딜 갔나? 왜 자네가 청소를 다하나?”
“감기로 방에 누워 있어요.”
“고맙네 이 사람아.”

같은 사람이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시어머니는 화가 나서 돌아갔고, 장모는 기뻐하며 사위를 칭찬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일할 때 며느리가 누워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보였고, 친정어머니는 딸이 아파 누워 있을 때 사위가 일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뒤로 가는 곳마다 며느리가 자식을 망쳤다고 흉을 보았고, 친정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마음씨 넉넉한 사위를 얻었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허물을 보았고, 친정어머니는 딸의 허물을 덮고 사랑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고부간의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들추시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고 더 이상 보지도 묻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화목제물을 통해 시어머니와 같았던 하나님이 친정어머니처럼 되신 사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옥 심판을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 많은 가정과 교회, 직장과 지역사회는 이 땅의 천국입니다. 이러한 삶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성도다운 삶인 것입니다.

화목하려면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하여 틀린 것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는 벌써 교만의 자리에서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원망하며 불평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 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정한다면 다수의 결정을 수용하여 기쁨으로 협력합니다. 이것이 곧 화목입니다.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다름 점을 인정해야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알면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분쟁이 생깁니다.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딴 세계에서 온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특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치약을 사용하는 경우, 남편은 밑에서부터 곱게 짜서 쓰나, 부인은 아무렇게나 푹 짜서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고치려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싫어하는 얘기는 첫째, 돈 얘기라고 합니다. 둘째, 옆집 남자 얘기라고 합니다.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얘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옆집 남자가 돈번 얘기라고 합니다.
아내가 듣기 싫어하는 얘기는 첫째, 군대이야기라고 합니다. 둘째, 축구이야기랍니다. 아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애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 바랍니다. 여기게 화목이 있습니다.

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절기를 지킴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에“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며 이 절기를 정성껏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나타나 그를 보호하나는 것입니다. 또한 22절에는“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원수를 막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은혜의 절기를 깨달아 지키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바울이라는 훌륭한 전도자가 있습니다.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고, 신약성경을 13권이나 기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바울을 얽어맨 쇠사슬이 끊어지고 굳게 닫쳤던 옥문은 열렸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곳에 우리들을 얽어매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다니엘이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다니엘서가 다니엘 선지자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갔습니다. 포로가운데 남달리 영특했던 다니엘은 바벨론 국왕의 총애를 받아 훗날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매사에 민첩한 다니엘을 남달리 신임하여 나라의 수석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은 다니엘을 시기한 나머지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해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끝내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짐을 받았을 때 천사가 나타나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간신들의 음모임을 뒤늦게 알게된 왕은 간신들을 사자 굴에 던지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어 간신들의 발이 땅에 닫기도 전에 뼈까지 부숴 삼키고 말았습니다(다니엘 6:1-24). 이처럼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3) 하셨습니다.

2. 삶의 윤택함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에“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하셨습니다. 잠언 3:9~10 말씀에는“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욱 풍성한 것을 채워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베세다 광야에서 수만 명의 무리들이 운집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런데 먹을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대로 먼 길을 되돌아간다면 지쳐서 스러질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먹을 음식은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도시락 안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수만 명의 무리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주었습니다. 이때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나눠줘도 끝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3. 건강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25-26 말씀에“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일점일획의 틀림도 없이 다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조건을 우리들이 잘 지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때 그 약속은 우리들의 삶의 현실 속에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클링크 박사는 “오는 감기 가는 감기 다 걸리는 사람, 특별히 노이로제 신경성 환자들의 대부분은 날카롭게 비판하고 불평하는 사람이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그의 스승이신 연세 많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이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의 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제안을 했습니다.“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이 노트에 감사한 일들을 적으라고 하자“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라고 말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사모님이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 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언 17:22에도“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기쁨도 있고, 건강도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일용할 양식주신 하나님께 우리들이 지켜야할 마땅한 예의입니다. 지키되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지 못했던 삶을 찾아 회개하며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서로 화목하며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지키시며 복을 주시되 물질의 윤택한 삶과 악한 원수가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건강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려드리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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