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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색깔과 모양 (마 13: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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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단체에 새로 들어가기 전의 심정과 일단 들어가고 난 후의 자세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들어가기 전에는 어찌하든지 들어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가도 일단 들어가게 되면 그 속하게 된 단체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들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입학원서를 낼 때는 그 대학교에 합격되는 것 외에는 자기 전 인생에 아무 다른 바랄 것이 없다는 심정뿐입니다.
  하지만 일단 합격이 되고 그 바라던 상아탑 속에서 학창생활을 지내다보면 학교 운영이나 교수에 대한 비판들이 생기게 되고 대자보를 붙인다, 데모를 한다 하고 나서게 됩니다.
  구인광고란을 보고 구직 신청서를 써 낼 때에는 누구나 다 그저 하루빨리 일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어느 회사에 취직이 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업환경이나 봉급에 대한 불만 등이 고개를 쳐들게 되고, 옛날에 입사만 시켜 주면 고맙겠다고 생각한 것은 간 곳 없이 노조운동이다 파업이다 하고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가 교회생활에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그저 평온하고 거룩한 분위기의 교회당만 보이고 은은한 오르간 소리가 울리는 분위기만 상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우리 교회에 나와 보십시오. 목사님 말씀도 참 은혜스럽고 교인들도 다 화목합니다."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교회에 찾아옵니다.
  하지만 일단 교인이 되고 나면 이전에 밖에서 보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실망스러운 것이 눈이 띄게 되고 이것들이 점차 불만과 비판으로 발전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의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왜 교회의 색깔이 깨끗하지 못할까?"라는 불만과 "왜 교회의 모양이 이렇게 아름답지 못할까?"라는 실망입니다.
  이런 것은 특히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는 사람들이 쉬 가지게 되는 반응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고 계셨을 때,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당신의 뿌리신 복음을 통하여 자라게 될 미래의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생겨날 것인지를 미리 아시고 이처럼 오늘 본문에 기록된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명확한 대답을 들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그 비유들을 함께 상고함으로써, 오늘날의 지상교회를 향하여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볼 수 있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해주시는지를 듣고 깨닫고자 합니다.

  1. '교회의 색깔이 왜 순수하지 못한가?'하는 비판입니다.

  사람들은 이 지상의 교회들을 보면서 "왜 교회가 세상의 천국이라고 하면서도 그 안에는 아직도 지저분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가?"라는 불만을 흔히 가지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왜 천당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완전히 순수하지 못한가?"라는 질문, "왜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도 못된 사람, 악한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그 대답은 첫째로, 이 세상은 아직도 사단이 활동하고 있는 시대이며 그 영향력은 교회 안까지도 부분적으로 침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을 가리켜서 본문 24절로 28상반절에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a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기록했습니다.

  나중에 36절로부터 39상반절에서 주님께서는 이 비유의 뜻을 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36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a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우리가 결코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자" 즉 예수님께서 뿌린 씨는 결코 어떤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 "좋은 씨"였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뿌리신 복음의 씨 그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순수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좋은 씨가 뿌려짐으로써 "천국의 아들들"이 자라나게 된 이 지상교회 안에 "가라지"도 같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마치 알곡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라지이고 마치 의의 백성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악한 자의 아들들"인 무리가 이 땅의 교회 속에 분명히 섞여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원인은 전적으로 마귀의 방해공작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결코 주인이나 종들의 부주의나 게으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씨를 뿌린 후 당연히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자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바로 그 시간에 가라지가 몰래 뿌려졌던 것입니다.
  '가라지'는 겉모습은 밀과 비슷하게 생긴 잡초로서 '독보리'라고도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운 사람의 밭에 몰래 가라지를 뿌리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곤 했었기 때문에 로마법은 남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을 처벌하는 엄격한 법률을 제정해 놓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여튼 그처럼 자기 밭에 가라지가 뿌려진 것을 보고 주인은 한 마디로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단언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전적으로 사단과 그 마귀들의 장난 때문인 것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비록 교회 안에 불순물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도 그 원인이 결코 그 주님이 뿌려 놓으신 복음 그 자체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몸되신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고 있는 복음 그 자체는 오로지 좋은 씨이며 절대적으로 순수한 것이며 최고 양질의 것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통하여 천국운동이 시작된 바로 그 시간부터 마귀 또한 활동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 이 지상교회 안에는 아직도 온전치 못한 것들이 섞여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상교회가 왜 100퍼센트 순수하지 못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둘째 대답은, 교회가 그렇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친히 이루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 하반절로부터 30절에 "28b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본문 39절 하반절로 43절의 말씀에 보면 "39b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40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이 비유의 뜻을 정확하게 풀어주고 계십니다.

  좋은 씨 뿌린 밭에 가라지가 섞여 자라게 된 것을 본 종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것들을 당장 뽑아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종들의 말이야말로 지극히 타당하게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그 주인은 그처럼 흥분하여 나서려 하는 종들에게 "가만 두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크게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가라지와 알곡을 정확히 구별해내기가 어렵기도 했고, 또 하나는, 둘이 서로 섞여 자랄 때는 그 뿌리들도 서로 엉켜 있었으므로 가라지만 뽑으려 해도 곡식의 뿌리까지 같이 뽑히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은 가라지가 함께 자랄 때 입게 될 손해보다는 이미 심겨진 밀이 결코 뽑히지 말아야 할 것을 더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에 가라지와 알곡을 가려내는 일은 "추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가 되면 그 열린 알곡의 모양을 보아서 분명히 구별하기 쉽게 되며, 그 때는 비록 뿌리가 서로 엉켜 있다하더라도 어차피 밑동을 자를 터이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묶어놓고 그 후에 곡식을 추수하면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1절 말씀에서 그 가라지의 정체를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며 또 자신이 스스로 죄를 짓고 살던 사람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 심판사역을 수종들 "천사들"이 그 가라지 인생들을 "그 나라에서" 즉 천국으로부터 "거두어낼" 때에 그들에게는 오직 "울며 이를 갊" 즉 영원한 슬픔과 영원한 후회가 있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반면에 오직 알곡 성도들은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입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한 교회 안에서 섞여 살고 별 차이 없어 보이던 교인들이었지만, 일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그 같은 밭에서 자라던 '알곡과 가라지'들이 단 한 톨도 어김없이 철저하게 분리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 내에서 모든 가라지를 깨끗이 뽑아내고 정말 100퍼센트 순수한 교회를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이상은 예수 믿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 봄직한 일이며, 특히 목사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교회를 이 지상에서 건설하겠다는 욕망은 실제로 가라지보다는 밀을 많이 뽑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었습니다. 중세의 천주교가 걸핏하면 파문, 화형 등으로 자기들 딴에는 가라지를 가려낸다고 했지만, 그 결과로 뽑히고 죽임을 당한 것은 오히려 경건한 개혁주의 신앙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중세 천주교는 약 30만 명에 이르는 소위 '마녀'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처형했는데 그 대부분은 실제로는 멀쩡한 여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만일 이 땅에서 완전무결한 순수를 이룩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가라지보다는 밀을 더 많이 뽑을 위험이 다분합니다.
  조금만 다르게 보여도 "이 사람은 가라지다"라고 정죄하고 제명한다면 이 지상교회 자체가 아예 남아돌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교회 안에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는데, 어떤 목사가 이 세상에서 100퍼센트 순수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까?

  그 대신, 비록 이 땅의 교회 안에서는 다 비슷비슷한 교인들처럼 행세하며 살고 있고 아무도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 주님께서 직접 가려 뽑으실 결정적인 한 날이 반드시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흰 것과 검은 것을 최종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심판의 영역이며 이것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영역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만 속한 고유의 영역이며 또한 주님께서 반드시 행하고야 마실 최종 사역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를 통한 천국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그 색깔에 대한 의문, 논쟁, 불만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처럼 범죄와 악이 들끓고 있는가?"하는 말들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결코 아님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 세상이 아직도 원수 마귀가 활동하며 그 "악한 자의 아들들"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일 따름입니다.

  "왜 교회 안조차도 완벽한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는가?"라는 비난도 흔히 쏟아집니다.
  그 대답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이 바로 흑백으로 갈라지는 순간은 아직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교회 안에도 알곡과 약간의 가라지가 섞여 있는 공존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코 모순은 아니며, 결코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100퍼센트 순수한 교회는 이 땅에 없지만 100퍼센트 순수한 신자는 분명히 지금도 교회 안에서 자라나고 있고, 그 순수한 교인과 불순한 교인이 깨끗이 구별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등록된 교인 전부를 구원받게 할 완전한 교회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대로 믿기만 하면 확실히 구원받게 만들어줄 수 있는 완전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백의 교회' - 생각만 해도 참 이상적인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땅에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교회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지상교회의 색깔은 오직 그 선포하는 진리만 깨끗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을 깨닫고,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그 100퍼센트 순수한 '우주적 교회'를 완성시키시는 그날까지 바로 그 주님께서 뿌려주신 '좋은 씨' 즉 그 천당교회의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게 해줄 이 복음만을 순수하게 지키고 바르게 전파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의 모양이 왜 이렇게 볼품없는가?'하는 불만입니다.

  지상교회를 향하여 가지게 되는 두 번째 대표적인 질문은 '이 귀한 교회라는 것이 왜 이토록 미약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다음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그 대답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우선 본문 31절과 32절에 "31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겨자씨"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는 아니지만 하여튼 매우 작은 씨 중의 하나입니다.
  "나물"이란 것은 밭이나 정원에서 자라는 채소나 화초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비록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일단 자라면 최고 3미터 높이까지도 자라게 되므로 다른 "나물"들에 비해서는 "나무"라고 불릴 만큼 큰 것, 즉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만큼 됩니다.
  원래 겨자씨였을 때에는 새들에게 먹힐 것 같은 미약한 존재였지만 일단 자라나면 오히려 그 새들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을 때에 그것은 다른 종교의 세력들에 의하여 간단히 잡아먹힐 것처럼 미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리스의 종교는 그 화려한 신전들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거창한 의식들로 찬란했고 또 대부분의 사회인들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는 종교이기도 했습니다.
  유대교 역시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박식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짜인 막강한 전통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제 막 탄생된 기독교는 국가로부터 박해받는 종교요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로 대부분 이루어진 종교였습니다.
  참으로 새에게 곧 먹힐 것 같은 겨자씨와 같이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겨자씨'는 자라서 오히려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천국운동이 확산되자 그 꼿꼿한 유대인들과 그 세련된 이방인들이 오히려 교회의 나무 가지에 찾아오게 되고 복음의 그늘 밑에 앉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견 볼품없어만 보이는 천국운동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십니다.
  바로 본문 33절에 "33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기록된 사실입니다.
  "누룩"은 유대 사회에서는 일단 나쁜 인상을 먼저 주는 물질이었습니다.
  일종의 발효소이니까 뭔가 지저분하게 보이고 냄새도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회에서는 유월절 때 반드시 치워버려야 할 부정한 것들 중에 하나가 또한 이 누룩일 정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천대받는 누룩에 한 가지 큰 힘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곡식 가루에 미치는 큰 영향력이었습니다.
  어떤 곡식 가루든지 이 누룩만 넣으면 그 발효력 때문에 크게 부풀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대로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넣어 부풀게 하면 무려 100명 이상의 식사 분량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운동이 시작될 때 그 첫 인상은 별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누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며 천국운동을 예비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광야에서 반쯤 미쳐 사는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어부나 세리, 혹은 열심당원 등으로 천하거나 아니면 문제 있는 배경 출신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천국운동이 세상사회에 들어가게 되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루에 비해서 누룩은 상대적으로 소량이었고 또 깨끗한 인상을 주는 가루에 비해 누룩은 지저분해 보이는 것이었지만, 가루는 누룩을 변화시킬 수 없고 오직 누룩이 가루를 변화시킵니다.
  꼭 마찬가지로,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오히려 보잘 것 있어 보이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무식하게 여겨졌던 자들이 오히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을 변화시켰고, 어부 출신들이 오히려 세련된 이방 문화인들을 전도해나갔던 것입니다.

  개척교회가 세워질 때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빌딩 틈에 작은 교회, 볼품없는 교회들이 세워짐으로써 그 상가나 그 동네 분위기를 망치게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인들 중에서도 교회가 작으면 너무 초라하게 보인다고 해서 작은 교회들을 둘로 합쳐서 큰 교회로 만드는 것이 아주 잘하는 일인 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 둘을 하나로 합친다고 해서 천국운동 그 자체가 커진 것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간단한 산수계산으로도 뻔한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커진 것이 아니라 겉모양만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진짜 교회의 성장력은 그 교회 안에 '누룩'의 힘이 있을 때 나올 수 있습니다.
  개인의 영혼과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은혜, 먼저 변화된 성도가 이웃과 사회를 바꾸는 전도의 열정, 바로 이것이 참된 교회가 소유하는 누룩인 것입니다.
  우리 경향교회만 하더라도 첫 주일 80명에서 출발해서 이처럼 3만 교세에 이르고 앞으로 30만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누룩'이 끊임없이 발효되어 '가루'를 부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한 천국운동은 바로 이런 겨자씨와 누룩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의 위대한 것들, 이 세상의 화려한 것들을 볼 때 교회가 초라하게 보이십니까?
  청와대를 볼 때 교회는 세상 권력 앞에 언제라도 잡아먹힐 '겨자씨'처럼만 보이고, 방대한 인터넷 문화를 볼 때 그저 성경책이나 읽고 있는 신자라는 것은 너무나 초라하게만 여겨지십니까?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그 미약한 겨자씨 속에는 '양적 성장력'이 있고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누룩에는 엄청난 '질적 영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교회는 세상에서 더 유력해 보이는 것들을 오히려 정복해 나갈 큰 성장력이 숨어 있으며, 우리 성도에게는 세상에서 더 부요하고 더 높고 더 똑똑한 사람을 오히려 변화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영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확장되는 이 천국운동은 비록 겉으로는 미약하고 초라해 보인다 할지라도 장차 이 땅의 더 위대하게 보이는 것들을 오히려 포용하고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실로 위대한 세계인 것을 깨닫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 여러분, 34절과 35절에 "34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어차피 천국의 신비를 우리가 이 땅에서 완전히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그 비밀의 일부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어느 단체라 하더라도 그 속한 구성원들이 다 만족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으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어느 정당의 기본 사상이나 정치철학만 옳다고 인정되면, 그 안에 개인적으로는 좀 차이가 나는 당원들이 있다고 해도, 그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됩니다.
  대학교 역시 가능하면 캠퍼스도 크고 건물도 아름다운 학교이면 더 좋겠지만, 비록 작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실력 있는 교수들이 있고 사회에 성공하는 졸업생들을 배출하는 학교라면 그것만 보고서도 거기에 지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그 안에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지만 복음 진리의 색깔만 분명하면 우선 충분한 것이며, 비록 겉으로는 약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 안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으면 이미 완벽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은 바로 그런 교회를 찾게 될 때 '나는 이 교회의 관할과 치리에 복종하겠습니다.'라고 서약을 하면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교회의 색깔이 완전히 깨끗하지 못한가?,' '왜 교회의 모양이 아름답지 못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 주님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 땅의 교회 안에서 혹 불순한 점들을 보시게 되십니까?
  그것들을 비판하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순수해지도록 각성해야 합니다.
  가라지를 신경 쓰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씨,' 즉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인 '알곡 신자'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가 너무 약해서 실망이 되실 때가 있습니까? 그것들을 불만으로 생각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를 받고 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봉사와 충성의 힘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바로 크게 자라서 새들을 불러와야 할 '겨자씨'가 되어야 하며 나 자신이 바로 다른 사람 영혼을 파고 들어가서 변화시켜야 할 '누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에 부분적으로 때가 묻어 있고 불완전하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어차피 이 땅의 교회는 완전한 천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우리 예수님께서 완전히 나누실 날이 오고 있으며 그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드실 날이 분명히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참된 주인 되신 우리 예수님께서 진짜 100퍼센트로 순수하고 하늘의 영광으로 빛나는 그 천당교회에 들어가게 해주실 그날이 오기까지, 이 땅에서 허락해주신 교회를 통하여 '충실히 자라는 알곡과 부지런히 전도하는 누룩'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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