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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여호와 (시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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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럭비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윌리엄 웹 엘리스(William Webb Ellis)라는 소년이 1832년 어느 날 영국의 한 학교를 대표해 축구 경기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집중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엘리스는 공을 차는 대신 공을 붙잡고 골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관중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엘리스를 조롱했습니다. 엘리스는 자신의 실수를 뼈아프게 느꼈지만, 엘리스의 '실수'를 지켜보던 어떤 사람에게 그 사건은 공을 차는 대신 잡고 뛰는 새로운 스포츠에 대한 상상력에 불을 지펴 주었습니다. 하나의 실수로 창조력이 발돋움해 새로운 스포츠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럭비 월드컵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기로, 스포츠 행사로는 축구 월드컵만이 이 경기를 앞서 있을 뿐입니다. 4년마다 수여하는 우승컵은 역설적으로 스포츠를 '발명'한 사람, 하지만 자신이 발명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던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윌리엄 엡 엘리스 컵'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을 취하셔서 최상의 것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실수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가장 황폐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장미꽃과 같은 사역을 해내실 수 있습니다.

  소원이 없이는 하루하루 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좌절하기도 하고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와 변명도 가치가 없고 합리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에서도 1위입니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1.5배나 많다고 합니다. 열심히 살고 희망과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반드시 길이 열리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낙심하는 마음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사탄의 지시대로 살면 죽음과 지옥입니다. 여호와를 믿고 바라볼 때 소원이 분명해지고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공부, 건강, 물질, 영적충만… 연령과 형편에 따라서 각각 다를 것입니다. 소원은 귀중하고 값진 보석과 같습니다.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장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여호와를 의뢰하라
  본문 3절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의뢰'란 의지하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르지만 신앙인들은 모든 계획과 결과까지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전 생애를 하나님의 방법과 의도에 맞추고 전적으로 순종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나 다른 사람의 능력이나 세상의 제도나 권력에게 인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풍성하신 여호와께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능력 이상으로 아름답고 풍성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의뢰하는 자를 실망시키거나 아프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 이상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처럼 생색을 내거나 대가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더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분에 넘치는 과분한 분이십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행복이고 은혜입니다. 이 감사와 감격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합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소원이고 그 소원 이상입니다. 생명 없는 허수아비와 같은 우상을 의뢰하지 않고 살아 계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지상에는 지식의 이름으로, 돈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세워진 너무나 많은 계급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김일성을 '위대하신 수령 아버지'라고 합니다. 김정일을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미사일과 핵을 만들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했습니다. 이 단어를 고르기도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그 말을 딱 골라 썼을까요? 이것이 영적인 문제라는 증거입니다. 그들에게는 '김일성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고 위대한 지도자'라는 생각이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누가 큰 사람입니까? 자기를 높이는 자가 아니라 낮추는 사람입니다(마23:11-12). 겸손한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합니까? 정말 겸손이 내 안에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무엇을 의뢰하고 있습니까? 젊음, 건강, 물질, 부모, 자식, 직장과 사업, 사람과 권력… 그 무엇도 안전지대는 못 됩니다. 영원이 아닌 잠시일 뿐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옵시다. 여호와만 의뢰합시다. 반드시 여러분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더 이상 방황하거나 인생을 낭비하지 맙시다. 애벌레의 삶에서 나비의 삶으로 바꾸고 도약합시다. 여호와를 향하여 눈을 뜨고 인생의 방향을 바꿉시다. 과감하게 U턴합시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기쁨과 감사의 홍수를 만날 것입니다. 얼마 전 동해안 통일전망대에서 하늘은 높고 바다는 넓고 공기는 신선하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좁고 바쁘고 오염으로 가득한 서울이 아닌 바닷가에서 상쾌한 맛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할 때 하늘의 능력과 삶의 신비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여호와를 의뢰함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선을 행하라
  본문 3절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반드시 선하게 살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외형적 열매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여호와께 간구하며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악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도리어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서 말씀대로 실천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롬12:17),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아니하면(갈6:9) 반드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유명한 설교가인 스펄젼(Spurgeon)은 인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이르게도 오시지 않고 늦게 오시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관영한 죄악과 악인의 창궐함에 대해 불평 불만을 터뜨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번성함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처럼 속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조급증을 버리고 욥처럼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막연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구나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많거나 특별한 은사를 가진 자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말, 몸, 물질, 은사, 삶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선이 귀하고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크게 감동하십니다.

  미국의 철학자인 클레이풀 교수가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기형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정서가 발달해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클레이풀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 처지였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밝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습니까?"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너무 많아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명작을 읽을 수도 있는 귀와 눈이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물이 많은데 왜 내가 슬퍼해야 하나요?"
  클레이풀 교수는 소녀의 고백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표정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표정이 우울한 신자는 자신의 삶을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습니다.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살인, 강도, 도적질하여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욕심만을 채우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섬기고 나누고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선을 행하는 사람이 많을 때 모두가 행복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바로 여러분이 선을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서 하루에 한 가지씩 선을 행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3. 여호와를 기뻐하라
  본문 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기뻐하라'의 히브리어 '아나그'는 '부드럽고 유연하고 즐거워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 표현은 여호와로 인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기쁘게 됨'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여호와 한 분 만으로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며 기쁘시게 하는 자는 주님의 뜻에 벗어난 소원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울증'은 심각합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누구도 예외 없습니다. 늘 웃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종종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돈과 인기와 명예로도 우울증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사람을 만족케 할 수 없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여호와를 모실 때만이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쁨의 도구가 아닌 인격적으로 섬기고 모실 때 우울과 근심과 갈등은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케 됩니다. 여호와를 삶의 소원으로 삼는 성도는 가장 기쁜 삶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선물과 소원보다 더 큰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갖추고 누려도 기쁨이 없다면 이는 불행인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어떤 부부에게 아이가 일곱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의 부부는 안타깝게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아이가 일곱이나 되는 집을 부러워하며 아이들을 마치 자신의 아이들처럼 사랑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일곱 아이를 가진 부부가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신들은 아이가 일곱이나 되니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한 명을 입양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인이 반대했으나 남편이 어렵게 설득해서 그렇게 하기로 합의하고 누구를 줄 것인지 밤을 새워 가며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부터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첫째는 장남이니까 남편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둘째는 딸인데 공부를 잘하는 우리 집의 소망이니까 안 된다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역시 셋째도 딸인데 너무 예뻐서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말하기를 넷째는 몸이 너무 약해서 입양해 가면 그 집의 짐이 될 거라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섯째는 아직 어려서 사랑을 더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섯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에 효도 차원에서 안 된다고 했고, 막내는 막내라서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밤을 새서 셈을 해봤지만 일곱 가운데 한 아이도 옆집 부부에게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입양 계획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는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이런 결정을 내리셨겠습니까? 이것이 사랑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면 모든 삶이 기쁘게 됩니다. 여호와는 기쁨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기쁨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울과 슬픔은 일곱 길로 물러가게 됩니다. 삶과 신앙에 기쁨을 더합시다. 미소 짓고 크게 웃어 보세요. 기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시다. 기쁨의 사람과 인생이 됩시다. 여호와를 기뻐할 때 이미 마음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음이 무겁고 아프고 답답합니까? 앞이 캄캄하고 어려움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합시다. 선을 행합시다. 여호와를 기뻐합시다. 반드시 여러분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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