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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복해야 할 땅은 아직도 많다 (수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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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해야 할 땅은 아직도 많다
여호수아 13:1-7

(1)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온 지방과 그술 사람의 전경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남방 아위 사람의 땅과 (4) 또 가나안 사람의 온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사람의 지경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사람의 땅과 동편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거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세 번에 걸친 큰 전쟁으로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래서 11장 23절은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쟁은 정말 끝났는가? 아닙니다.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지금까지는 가나안 주력군들을 물리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주력군들은 격파되었습니다. 이제는 각 지파들이 자신의 땅을 찾아 가야 합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입니다. 오늘 읽은 13장부터 시작해서 21장까지는 각 지파가 그 땅을 분배받고 차지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성경은 1절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로 시작합니다.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성경은 ‘여호수아는 늙었다’라는 무능력함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 이미 익숙합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을 성경은 이렇게 시작 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역사는 철저히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지팡이와 손짓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하나님은 그 모세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 분배라는 중요한 과업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늙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것도 너는 ‘나이 많다’ ‘늙었다’라는 말을 겹쳐서 연거푸 사용합니다. 철저한 무능력입니다. 이제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듭니다. 모든 사역이 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무능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그때서야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지금 형편은 모세가 죽고 첫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했던 때보다는 낫습니다. 이미 가나안 땅의 주력이 격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잔당을 소탕하는 작업입니다. 모든 적들을 다 섬멸한 후 우리에게 땅을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각 지파가 따로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1절의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몫으로 남겨놓으신 땅이 있습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사실 아무 수고 없이 땅을 얻으면 부끄럽습니다. 그 소중함을 모릅니다. 자기 힘으로 개척하고 정복해야 그 땅이 자기 것이 됩니다. 바로 여기에 각 지파로 하여금 자기 땅을 정복하라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애정은 땀방울에 비례합니다. 많이 수고하고 많이 아파한 만큼 자기 것이 됩니다.

그래서 행여 자기 스스로 일어서려는 독립심을 잃게 될까 13장 서두를 여호수아가 나이 늙었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를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홀로 서는 일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강해집니다. 그래야 자기가 차지한 땅에 대한 감사가 있고 소중함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사업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떠주는 밥만 먹고 살면 그 일에 대한 소중함이 없습니다. 봉사하고 헌신한 만큼 자기 몫입니다. 교회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헌신한 사람입니다. 기도의 기름을 짜내고 눈물로 성전을 적신 사람들입니다. 이런 헌신과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손님에 불과할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니

그렇지만 이 싸움을 앞두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사단의 머리를 쳐서 무력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전쟁에는 D-데이와 V-데이가 있습니다. D-데이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한 날로 유명합니다. 이 날 상륙작전의 승리로 연합군은 독일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됩니다. 실상 이때를 기점으로 승리는 연합군 측으로 넘어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이 V-데이, 곧 승리의 날은 아닙니다. 독일군이 항복하는 순간이 V-데이이지만 그 결정적 전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이미 판가름 났습니다. 그 이후 베를린까지 입성하는 과정은 단지 잔당 소탕 작업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남겨진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가나안 주력은 괴멸되었습니다. 자기에게 분배된 땅에 가서 그 땅에 있는 나머지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일과 제자들이 이룬 위대한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팔레스틴이라는 좁은 땅에서만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는 결정적인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제자들은 이미 이기시고 모든 권세를 취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온천하와 모든 족속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복음서의 역사가 끝나고 사도행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심장부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지만 그 일은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확인하고 확실히 하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적의 수도가 함락되고 주력군이 괴멸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지방과 시골 깊숙이까지는 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 땅마저 접수하여 주님의 통치를 현실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단과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적들은 우리를 해할 수 있는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은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물론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패배하게는 못합니다. 잠시의 패배는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마치 예방주사와 같습니다. 예방주사는 죽은 균을 우리 몸에 집어넣어 인체에 면역력을 높입니다. 일시적 패배는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어둠의 권세는 이미 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크리스찬의 실존에 대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5-39)

우리가 담대함으로 나가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갔을 때 골리앗은 단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면 승리하는 데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레 겁을 먹고 싸우러 나가지 않습니다. 골리앗이 으르렁대니까 발발 떨고 있습니다. 마치 야성을 잃어버린 애완견과 같고 동물원에 갇힌 사자와 같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사를 죽였다는 단 한 구절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골리앗의 시위에 다들 쥐 죽은 듯 숨죽이고 두려워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두려움 없이 승리를 거두었던 대표적인 사람으로 갈렙을 들 수 있습니다. 갈렙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중 한 명으로 파송되었던 사람입니다.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은 거인이요 우리는 메뚜기같다고 보고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9)고 담대한 믿음을 보였던 사람입니다. 이어지는 14장 12절에서도 갈렙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개역개정판) 아낙 자손은 바로 골리앗이 속해 있던 족속입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고 또 가장 험한 곳을 택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나아갈 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둘째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부지런한 자가 얻게 되어 있습니다. 각 지파들의 모습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는 부지런히 자신의 땅을 개척하여 좋은 땅 광활한 땅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고 게을럿던 나머지 일곱 지파는 미적미적합니다. 이런 일곱 지파를 향하여 여호수아가 이렇게 책망합니다. 18장 3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이렇게 미적미적하니까 다른 좋은 땅들을 다 빼앗기고 맙니다.

예로부터 성공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여호수아 자신이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전투를 보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즉각 순종하고, 또 항상 새벽 일찍이 일어나 행동했던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전투는 항상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그가 하나님 말씀에 재빨리 순종한 결과입니다. 여리고성 전투를 보면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수6;15)라고 성경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8장 1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남방 연합군과의 싸움에서도 역시 동일합니다. 10장 9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지난 시간에 묵상했던 11장의 북부지역 전투에서 바로 그러했습니다. 11장 7절 말씀입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졸지에 곧 갑작스럽게, 신속하게 기습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은 군사들과 말과 병거가 있을지라도 꼼짝 없이 당합니다.

말씀을 순종하되 부지런히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적들보다 한 발 앞서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주실 때 즉각 순종하십시오. 즉각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성과 욕망이 어느새 그 감동을 저 어둠 깊숙한 곳으로 밀어내고 맙니다. 하루를 허송세월 하지 말고 열심히 사십시오. 역사를 보면 부지런한 자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지 게으른 자가 쓰임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부지런한 새벽의 사람이었기에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것은 땅 문서가 아니라 비전이었습니다. 13장 2절부터 7절까지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들입니다. 그 땅의 크기는 애굽 바로 위로부터 시작하여 블레셋이 있는 남쪽 평야지대를 거쳐 가나안 최북단 시돈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역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려고 의도했던 땅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주시는데 그냥 적당히 주시지 않습니다. 정복할 땅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요 기대이기에 믿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성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만큼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7장 12절에 므낫세 지파의 예를 들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는 므낫세 자손만의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지파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동거를 하고 맙니다. 사사기 1장의 기록을 보면 모든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가나안 족속과 함께 거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은 하나님의 헛된 소망에 불과했나?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던 땅을 차지했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과 솔로몬 왕 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그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열왕기 상 4장 24,25절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 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여기 언급되고 있는 가사는 블레셋의 근거지입니다. 최북단 단에서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원래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던 계획된 땅을 다윗, 솔로몬 시대에 차지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 비전을 성취합니다.

저는 이 1절의 정복해야 될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는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 윗대에서 모든 땅을 차지해버렸다면 우리는 할 일 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정복해야 될 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땅을 찾고 그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시대마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땅들을 보여주십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청년 시절을 보냈던 80년대 90년대는 정말 혁명적인 시기였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여 새시대를 열어가던 때였습니다. 처음 제가 대했던 컴퓨터는 286컴퓨터였습니다. 아마 1989년도 쯤 나왔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윈도우 체제가 아니라 글자로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던 컴퓨터였습니다. 아주 까만 바탕에 일일이 명령어를 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전까지는 논문이나 글을 쓸 때도 손으로 쓰거나 타자기로 쳐야 했습니다. 두꺼운 영어 사전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하기를 석유왕 록펠러, 강철왕 카네기, 한국에서는 정주영, 이병철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태어나던 시대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로 때를 잘 맞추어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환경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구글의 창업자  페이지(Larry Page)나 브린(Sergey Brin)을 만들어내었고 글의 이찬진, 바이러스 백신의 대명사 안철수와 같은 새로운 거물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구글(Google)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검색엔진인데 그 게 언제 시작된 지 아십니까? 1998년 9월 7일 허름한 창고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 구글 창시자 페이지와 브린은 포춘지 선정 40대 미만 갑부중 4,5위에 랭크되었고 그 재산은 8조원에 달합니다. 그때 일찍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의 위력을 알았던 사람들은 다 성공의 정상에 설 수 있었습니다. 기회는 언제든지 주어집니다. 어느 시대든 어느 환경이든 정복할 땅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이 어둡고 과거에 것에 고정되어 있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시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60,70년대는 부흥회와 순복음의 은사운동이 교회성장을 가져왔습니다. 80년대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제자훈련을 비롯한 체계적 훈련과 문화적 양식을 가진 새로운 신흥 교회의 출현이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사랑의 교회, 남서울 교회, 지구촌 교회, 온누리 교회 등이 바로 그런 교회들입니다. 저는 그 태동부터 이렇게 고도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어떤 분들은 이런 사태를 보면서 이제 교회성장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이미 새로운 노하우들과 프로그램들은 다 공개되었고, 앞서갔던 교회들이 다 이용했기에 후발 교회들은 더 이상 성장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정복할 땅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서 그 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비전이란 것은 처음에는 마치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장한 후에는 새들도 그 가지에 깃들이는 큰 아름드리나무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여기에 길이 있구나 하고 뛰어들지만 그때는 늦습니다.

경영에서도 블루오션(Blue ocean)과 레드오션(Red oce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블루오션은 경쟁자가 없는 푸른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 것, 달리 말하면 틈새시장을 뜻합니다. 반면에 레드오션은 경쟁이 치열해 서로 물고 뜯는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 피튀기는 시장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주로 레드오션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확실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만큼 경쟁이 치열해 이곳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블루오션은 경쟁자가 없어서 수월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 보이지 않는 곳이며, 자기가 처음 개척해야 하는 곳이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곳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활한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믿음의 눈을 떠 이곳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비전중 하나는 북한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이 땅에 통일을 주실 것입니다. 북한 땅은 정복되지 않는 유일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주님의 복음을 들어야 될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우리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많은 분야들이 있습니다. 이 땅을 비전으로 삼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자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낙담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준비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님은 우리를 땅끝까지 이르는 인생으로 부르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우리의 시선이 항상 땅 끝을 향하는 비전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복할 땅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이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그 땅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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