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평화의 왕이 주시는 평안 (요 14:17)

  • 잡초 잡초
  • 211
  • 0

첨부 1


평화의 왕이 주시는 평안  (요 14:17)

  평안은 모든 사람이 갈구하는 소원입니다. 평안이 있어야  행복도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하고  큰 권세를 누려도 마음 속에 평안이 없으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물질로 평안을 얻지 못하고 영화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지 못한채 지쳐 있습니다.  많은 스트레쓰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두려움과 걱정에 눌려  있습니다. 사람이 저마다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세상에는 참 평안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안에는 참 평안이 있습니까?  참 평안을 소유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은 이 시간에 참 평안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참 평안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참된 평안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예수님은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 

  1. 세상이 가져다 주는 평안

  오늘 말씀에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평안입니다.  세상이 가져다 주는 평안도 있는데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런 평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슴입니다.

  평안 또는 평화라는 말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팍스(pax)와 샬롬(shalom)이 그것입니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평화였는데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법,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로마는 이런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넓은 땅을 정복했고 지배했습니다.  로마는 강력한 힘을 길렀고 강하고 안정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그렇게 정복하고 다스리며 그들은 팍스 로마나를 부르짖었습니다. 완전한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군사적으로 온 세상을 지배하고 경제적으로도 호경기를 누리고 정치적으로도 평화롭게 통치하는 완벽한 세상입니다.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평화를 자신들의 힘으로 구축하였다고 자랑한 것입니다. 그것을 흉내내어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 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로마시대만큼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가 미국의 주도권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일 것입니다.

  여러분 평화 또는 평안이 힘에 의해 주어집니까?  안 주어집니까?  우리는 힘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힘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힘이 없이 평화가 지켜질 수 없습니다. 국력이 약해가지고 어떻게 나라가 외국에 짓밟히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나라의  경제가 엉망인데 국민들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습니까?  외교력,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보세요. 저들은 스스로 평화롭다고 말할지 모르나 객관적으로 그 나라가 살기 좋다고 평생 살고 싶어서 거기로 이민가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아와 전쟁 그리고 질병과 폭력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다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개인이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없이는 평안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불행한 삶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돈이 없으면 아파도 병원에도 못갑니다. 월세방도 못 얻어서 설움을 받습니다. 힘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더 손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학생은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실력이 있어야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능력이 있어야 인정을 받고 승진도 하고 계속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무능하면 직장에서도 퇴출당합니다. 가정을 지켜가는데에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위기를 맞고 극복하지 못하고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여러분 힘을 나쁘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힘이 필요없다고 부정하면 안됩니다. 힘이 없이 평화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강력한 힘을 길러야 전쟁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더 부강해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우뚝 서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브랜드가 많아져야 합니다.  힘없는데 떠들어봐야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인물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힘을 길러야 합니다. 실력도 기르고 능력도 길러야 합니다. 체력도 길르고 건강해야 합니다. 재력도 있어야 하고 할 수 있다면 권력의 핵심부에도 들어가야 합니다.  좋은 영향을 세상에 확산시키려면 고지를 선점해야 합니다. 밑바닥에서 아무리 소리 질러봐야 듣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부르짖습니다. 전세계가 미국의 주도권하에 들어가고 미국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지만 완전합니까? 반미의 물결을 점점 더 크게 파도치지 않습니까?  미국이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다고 여겼는데 그들이 가장 자랑하는 뉴욕의 맨하탄 세계무역센타 100층이 넘는 쌍둥이 빌딩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고 수천명이 죽지 않았습니까?  미국에 도전하는 세력을 손본다고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얼마나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은 네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는 짧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입니다. 셋째는 외형적인 것입니다. 넷째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이에 반해 샬롬이 의미하는 평화는 내적이며 정신적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백성인 히브리 민족이 주로 사용한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건강한 자나 성공한 자는 물론 병든 자나 실패한 자들과도 '샬롬'이라는 인사를 기꺼이 주고 받았습니다. 이 평화는 위로부터 덧 입는 고귀한 평안을 뜻합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은 팍스의 평화도 추구해야하나 그보다 더 샬롬의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스피노자는 "평화란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영혼에서 솟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샬롬의 평화가 여러분의 삶속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위험과 함정, 사고와 질병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불안하지 않습니까?  두렵지 않습니까?  스트레쓰와 좌절, 불면증과 우울증에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상황은 더 심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쇠사슬에 묶여 다음날이면 사형이 집행될 상황에서도 베드로는 누워 깊이 잠들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강심장이 그런 상황에서 깊이 잘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나타나 감옥문이 열리고 감옥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모두 혼비백산해서 떨고 있는 상황에서도 베드로는 잠이 깨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천사가 그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평안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주님이 평안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고 다음은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어떤 주님의 선물을 받았는지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힘입으려고만 하면 성령님은  우리안에 주님의 평안이 충만히 역사하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끼치시는 그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나의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평안으로 네 가지 특성을 갖습니다.

첫째, 순간적이지 않고 영원한 평안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좋을 때 생기고 나쁠 때 사라지는 평안이 아닙니다.
둘째, 영적 평안입니다.
셋째, 내면적 평안입니다.
넷째, 완전한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끼치시는 '나의 평안'은 영원하고 영적이며 내면적이고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평안을 경험하고 소유해야겠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닥쳐도 주님의 평안을 유지하고 있어야겠습니다. 
 
  벤허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유다 벤허는 유대인으로서는 제일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로마 총독이 들어와서 행군하는데 이 유다 가정의 식구들이 나가서 밖을 내다보는데 이 벤허의 동생 티자라고 하는 여동생이 이렇게 내려 보다 기왓장 하나가 총독의 머리에 떨어지면서 이 가정은 한순간에 불행해집니다.  '총독을 죽이려고 했다. 로마를 대적하려고 했다.' 해서 예루살렘의 사령관인 마살라는 벤허를 불러 둘도 없는 친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동생하고 어머니는 감옥으로 들어가서 4년 만에 그곳에서 문둥병 환자가 됩니다. 

  벤허는 배를 타려고 가는 중에 나사렛에서 그에게 물을 주는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벤허는 첼리선이라고 하는 이 배에 탔는데 그 배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배에 아리우스라고 하는 호민관이 탔습니다. 로마에 아주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타고 가는데 가다가 전쟁이 일어납니다. 노예는 노를 저어도 다리에 쇠사슬을 매서 젓습니다. 호민관이 '풀어줘라.'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중에 아리우스가 탄 배가 침몰합니다. 다 죽은 것을 알고 아리우스도 물로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그런데 벤허가 헤엄쳐 건져냅니다. 

  로마로 돌아오니 로마 황제가 대단한 환영식을 합니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큰 지휘자가 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건져준 벤허에게 자기의 양자됨을 허락하고 '너는 내 아들이다. 내 생명 건져주었으니까.'  그러나 벤허는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에 와서 친구 마살라가 예루살렘 사령관으로 있는데 찾아갑니다. '내 동생 찾아내라.나는 지금 아리우스 2세다.' 

  며칠 후에 예루살렘에서 전차 경기가 일어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 세계 최고의 지도자들하고 마차 경기를 하는데 마차 경기에 벤허하고 마살라가 붙습니다. 마살라는 어쨌든 벤허를 못 가게 하려고 바퀴 옆에다가 톱날을 답니다.  이 전차 경기에 벤허가 이겨 승리합니다. 승리하고  문둥이 촌에 갑니다. 가서 보니 에스더라고 하는 옛날 애인이 거기 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소문이 들립니다. 나사렛 예수께 가면 나환자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에스더와 티자와 함께  벤허가 예수님 계신 곳으로 가는데 그날이 세상에 예수님 돌아가시는 날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날 입니다. 십자가를 이미 지고 막 채찍 맞으면서 올라가는 것을 구경하는데 벤허가 십자가 지고 쓰러진 예수님께 물을 부어드립니다. 물을 드리면서 5년 전에 자기에게 물 떠준 분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 여동생과 어머니에게서 이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료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마차 경기도 아닙니다.  문둥병 낫는 것도 아닙니다. 뭔지 아십니까? 마지막 순간 이 영화 끝맺는 게 뭔지 아십니까? 어머니를 안고 벤허가 새사람 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간증을 합니다.  마음에 있는 무서운 증오심, 칼이 빠져나갔다는 것입니다. 전차경주에 이겨도 칼을 못 버렸습니다. 아리우스 2세가 되어도 증오의 칼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의 평강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안에 그 많고 많은 인간적인 온갖 욕심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변화된 삶입니다. 힘 없이도 가장 힘있게 살아가려면 예수님이 주신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평화가 군사적인 힘으로나 인간의 힘으로 평화가 주어질 수 있다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강력한 힘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이 있다고 교만하여 평화가 깨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안에 평안을 주셔야만 참 평화, 참 평안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을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