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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마 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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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마 21:18~22)


우주의 넓이를 측량할 수 없듯 신앙의 세계 또한 측량할 수 없다. 아니 하나님의 크기가 우주보다 크고 대양보다 크기에 신앙의 세계는 우주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크기를 날마다 더 알아가야 하듯이 신앙의 세계도 다 탐구할 수 없고 계속적으로 더 알아가야 하는 세계다. 음악의 세계가 넓어도, 예술의 세계가 넓어도, 과학과 인문학의 세계가 넓어도 그것을 다 담는 것이 신앙의 세계다. 

예수님은 이 신앙의 세계를 가르치셨다. 신령하고 기이한 세계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권위가 있으셨다. 그 예수님이 이른 아침, 도성으로 들어오실 때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길가에서 대면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잎사귀만 가득한 나무에게 “이제부터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그 말씀 한마디에 무화과나무가 마르게 되고 제자들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찌하여 이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나이까?” 이 질문을 향한 대답으로서의 가르침은 세 가지였다. 그것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되어지는 일에 대해서였다. 
  
1. 너희가 말하는대로 되어진다. (마21:21上)

마21:21上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은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음을 가르치지만 먼저 주님이 말씀 한 마디로 나무를 마르게 한 것처럼 제자들도 말로서 나무를 마르게 할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말이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을 나타내는가? 그런데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제자들이 말하는대로 되어진다는 것이다. 

구약에 사무엘 선지자는 말에 권위가 있었다. 그는 말하는대로 그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삼상3:19~20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말대로 되어지는 사람, 우리도 그 약속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나무를 말씀 한 마디로 마르게 할 수 있는 말의 권세, 나무를 말씀 한 마디로 살릴 수 있는 것도 말의 권세다. 말을 사용하는 제자들을 말로써 창조하고 건설해야 한다. 말로써 지지하고 격려하고 도와야 한다. 부정적인 말을 하고 파괴하고 가능성을 짓밟는 말을 한다면 무서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말로써 귀신을 꾸짖어라. 저주를 결박하라. 어둠과 악한 것들을 결박하라. 그리고 희망과 꿈, 미래와 축복을 풀어놓아라. 말이 나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것은 말하는대로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가르침은 주님께서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아시고 계셨음을 보여준다. 사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민14: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어찌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데 말을 함부로, 부정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말의 권세를 똑바로 사용하라. “너는 잘 될 것이다. 나는 쓰임 받는다. 힘들어도 승리할 것이다.”
  

2. 너희가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마21:21下)

마21:21下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산이 바다로 옮겨지는 것은 기적이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가능의 일이 되어지는 일이기에 기적이다. 

산은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산이 옮겨진다. 삶의 철벽같은 장애물이 없어지고 평탄한 길이 열린다. 산은 무엇인가? 「어머니의 기도」의 저자인 체리 플러가 말하길 “산은 자녀의 문제일 수 있다. 술이나 담배, 마약일 수도 있고 반항, 질병, 사고일 수도 있다.” 아니 어떤 문제이든지 상관 없다. 산은 인생의 장애물이다.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장애물이 극복이 될 수 있다면 내 생애에 기적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31:14~16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산을 들어서 옮길 수도 있지만 산을 깨뜨려서 부스러기를 만들어서 옮겨지게 할 수 있다. 산을 두려워하지 말자. 인생의 어떤 장애물의 산도 믿음 앞에서는 옮겨지게 된다. 

웨슬리 목사는 산이 우리 앞에 있다면 믿음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옮기지 못하는 산이라면 우회도로로 돌아서라도 가라고 하였다. 돌아서 가지 못한다면 터널을 뚫어서라도 지나가라고 하였다. 분명한 사실은 산이 나의 마음을 옮길 수 없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산은 바다로 옮겨가고 기적을 볼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도 스룹바벨을 격려하였다. 슥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산이 너무 커서 인생이 힘들고 난감하고 방법이 없고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하더라도 산의 크기를 보지 말라. 너희 앞에서 산이 옮겨 가리라는 것을 바라보라. 질병의 문제의 산이 엄습할 때 나는 옮길 수 없으나 주님이 역사하신다. 믿음으로 나가라. 질병의 산도 옮겨지고 기적이 일어난다.

  
3. 너희가 무엇이든지 다 응답받는다. (마21:22)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기도는 이루어진다.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구하여도 의심하기 때문이다.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응답 받는 기도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다 받는 응답의 비결은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죠지 뮬러는 고아원의 아버지로서 5만번 응답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살아서 응답 받지 못한 기도 제목까지 죽은 다음에 응답 받는 기도의 용사였다. 그는 수 천명의 고아들을 먹이우고 키우면서 나의 자본은 기도였다고 외쳤으니 응답 받지 못한 기도는 없는 것이다. 

나는 목회의 순간 순간에 응답 받은 기도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하나는 소나무 숲 밖에 없는 곳에 아파트가 세워지는 기도였다. 산이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리라는 그 기도를 1995년에 시작하였다. 근처 공군 비행장으로 인해 아파트는 상상도 못했을 때였다. 지금은 11미터 고도 제한이 풀리고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동서남북으로 택지 개발이 꿈틀거리고 있다. 

기도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잘 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는 기도가 시작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는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란 이것이 오늘의 키워드다.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예탁하는 믿음을 말한다. 예탁하는 것을 찾은 줄 알고 맡기는 것이다. 맡기고도 즐거운 것은 이자까지 덤으로 받은 줄로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은행에 돈을 예탁할 때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정한 때에 언제든지 되돌려 받을 수 있기에 기쁘게, 즐겁게 예탁한다. 그러니까 예탁하는 믿음이란 해 주실 것도 분명히 아는 것이다. 해 주실 것을 신뢰하기에 기쁨으로 지내는 것이다. 즉,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다. 떡을 주실 분이 떡을 그릇에 담아오기도 전에 주려고 마음먹지도 않았는데 김치 국물부터 마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신앙의 세계는 김치 국물부터 마시는 예탁의 믿음이어야 한다. 계산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하고 얻는 기도 제목을 제한하거나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떡을 받을 것을 알기에 염치 불구하고 김치 국물을 마시는 것이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간호사 부부가 예탁하는 믿음을 배웠다. 하나님께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부부의 문제는 아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기를 주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산다는 것을 예탁하고 싶었다. 그들은 아예 김치 국물부터 마시기로 했다. 아기를 낳았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 아기의 양육비를 계산하였다. 병원비, 아기의 기저귀, 분유, 이불, 옷 등 그 비용을 월별로 정하여 아기 기르는 믿음으로 그 물질을 드렸다. 물질로 예탁하는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다.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다 받으리라.”고 한 것처럼 4개월이 지나 임신하는 부부가 되었다. 

우리 교회의 권사님은 딸의 공무원 시험의 합격을 위해 21일 작정 기도를 드렸다. 드리는 헌금 위에 “합격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써서 합격 감사 헌금을 예탁했다. 결국 시험에 합격하였다. 수 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합격하였다.   

믿음의 세계란 무한하다. 측량할 수 없는 보화를 보고 만지고 듣게 되는 세계다. 이 믿음의 세계 안에 제자들이 살아야 하기에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면서까지 믿음과 되어지는 일을 가르친 것이다. 믿음이 중요하다. 믿음의 성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의 사건으로 위대한 것은 믿음의 역사를 가르쳐 준 것이다. 제자들이 잎만 무성한 제자, 교회가 성도의 수만 자랑하고 건물만 자랑하고 외형만 그럴 듯 해서는 안되기에 무엇을 하든 믿음이 있어야 하기에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곧 죽게 하신 것이다.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의 알멩이다.

보혜사 성령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은사로, 선물로 내려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말대로 되고 기적처럼 장애물이 사라지고 구하는대로 응답되는 신나고 가슴 설레는 신앙 생활이 바로 삶의 순간 속에서 더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되어지게 하는 믿음, 옮겨가게 하는 믿음, 다 받게 되는 믿음을 갈망하라.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그것이 주님이 찾는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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