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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삼상 7: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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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삼상 7:3~17)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가봇 시대가 있었고, 에벤에셀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가봇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렸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이가봇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외면하셨습니다. 엘리제사장의 말년이 이가봇 시대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으나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술에 취한 사람처럼 기도할 때 엘리는 육적인 눈으로만 보고 한나에게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야단을 쳤던 사람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사장 제도가 세습제였기 때문에 엘리의 두 아들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해서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지기 전에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이 좋아하는 고기의 분위를 골라서 먹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므로 하나님의 집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은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과 어린 사무엘을 통해서 엘리와 엘리 제사장의 집에 대해서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영적으로 어두우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영적인 어두움으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징계의 매를 드셨습니다. 블레셋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은 같은 날 전사하고,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으면서 엘리제사장의 시대가 마감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가 임신해서 해산때가 가까웠는데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과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해산하고 죽습니다. 정말 비참한 가문의 몰락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아들을 낳았는데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고 말하고는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가봇의 시대는 이때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릴 때는 언제든지 이가봇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이가봇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의 손에 붙인바 되어서 고통의 멍에를 메어야만 되었습니다. 

에벤에셀 시대는 다릅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던 시대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기도할 때 블레셋 사람들이 침공을 합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게 하시니 그들이 어지러워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패하게 됩니다. 그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기념비의 이름이 에벤에셀입니다. 

‘에벤에셀’은 ‘에벤’과 ‘에셀’의 합성어입니다. ‘에벤’은 ‘큰 반석’을, ‘에셀’은 ‘돕는다’, ‘후원한다’, ‘원조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 ‘도움의 비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면서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웠던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는 영적인 부흥과 환경적인 축복이 함께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영적인 부흥 후에는 환경적인 축복이 따라왔습니다. 영적인 타락 후에는 환경적인 고난이 따라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가 에벤에셀의 시대가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인 부흥입니다. 그 때부터 에벤에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인간적인 방법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시대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곧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에벤에셀의 시대를 살게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막스는 개신교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23살에 이미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서 자기 자녀 세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영양실조로 굶어 죽은 딸을 묻고도 도서관에 근무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한 가운데서 가난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느냐? 고민을 하다가 공상주의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칼 막스를 헷가닥하게 만든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소년이 남의 집 굴뚝을 청소하다가 빗자루를 떨어뜨렸습니다. “주인님, 빗자루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야, 네가 떨어뜨렸으니 네가 빗자루가 되라.”고 하더니 사람을 시켜서 얘를 빗자루처럼 묶어 굴뚝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때문에 칼 막스가 뒤집힌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억압받는 하층민, 노동자를 해방시켜야 되겠다.”라고 결심하고 혁명으로, 폭력으로 전부 몰아냈습니다. 이 사람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면서 죽인 사람이 오천 만 명이 넘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 없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다가 이가봇의 시대를 만든 것입니다. 결국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전부 거지가 되었습니다. 모든 공산주의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돌아온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병든 사회를 치료하기 원하십니까? 주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에벤에셀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칼 막스와 비슷한 시대에 덴마크에 그룬트비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덴마크인들에게 국부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분도 목사 아들입니다. 칼 막스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덴마크도 너무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룬트비 목사님은 칼 막스와 다른 방법으로 덴마크를 살립니다. 그룬트비 목사님은 영적인 방법으로 삼애(三愛) 운동을 펼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이웃을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라고 외칩니다. 신앙운동, 사랑하는 운동, 영적인 운동을 일으켜 덴마크는 살립니다. 그래서 덴마크를 지상의 낙원이라고 불릴 만큼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의 방법입니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무슨 방법입니까? 영적인 방법입니다.
기도하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받을 때 개인이 살고 민족이 삽니다. 에벤에셀의 시대가 열립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가면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것처럼 모두 잃어버리고 이가봇의 시대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무엘에 의해서 이가봇의 시대에서 에벤에셀의 시대로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이가봇을 에벤에셀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상숭배(욕심)를 회개하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에벤에셀의 시대를 열어주시고 싶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 59:1-2에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1:18-20에 보면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죄 문제를 해결할 것을 명하십니다. 만약 그 명령에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됩니다. 에벤에셀의 시대가 열린 다는 말씀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면 칼에 삼키게 됩니다. 멸망당한다는 말씀이며 이가봇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3절에 보면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말합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를 살려면 하나님과 관계를 막는 것들을 제거하고,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4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깁니다. 6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행동이 나옵니다. 그들은 미스바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물을 붓습니다. 물을 붓는다는 말은 물을 쏟듯 마음을 쏟아 회개하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그들은 물을 붓고 종일 금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시대에 이 나라 가운데 에벤에셀의 시대가 열리려면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합니다. 온 나라가 우상천지입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게 하려면 믿는 자들이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저와 여러분도 우상숭배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에 에벤에셀의 시대가 오려면 믿는 자들의 수가 많아져야 하기 때문에 믿는 저와 여러분은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만 우상숭배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가지를 더 지적합니다. 골 3:5에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하면서 다섯 가지를 지적합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그리고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돌이나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놓고 절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탐심의 우상숭배에 빠져있습니다. 탐심이란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스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무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회개했던 것처럼 탐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실 탐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때에 따라 풍성하게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욕심 부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채우심, 하나님의 공급하심,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욕심은 우리들을 죄 가운데 깊이 빠지게 만들고 결국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약 1:15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합니다. 천사장 루시퍼의 타락은 하나님의 자리를 욕심내어 시작된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욕심내므로 타락한 것입니다. 욕심을 비우지 않으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낚시 바늘에 걸려있는 지렁이를 욕심낸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려서 매운탕으로 사람의 밥상에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많은데도 주신 것을 보지 못하고 없는 것만 욕심내면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만 찾아옵니다. 욕심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가봇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감사하며 살면 에벤에셀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면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욕심을 비우십시오.


2. 부르짖어 기도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20년의 이가봇의 시대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가봇 시대의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했습니다. 여기서 사모한다는 말은 `샤마다` 인데, 이 말은 `크게 울었다, 울부짖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고통이 심해지니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우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비결입니다. 자녀가 울면 부모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가 원하는 것이 안 되면 어머니 앞에서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해도 어머니 앞에서 울면 이상하게 문제가 해결되더군요.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에 약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에 넘어가시는 분입니다. 

5절에 보면 사무엘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했습니다. 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부탁합니다. 

9절에 보면 사무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 하셨습니다. 10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가봇을 에벤에셀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에벤에셀의 복을 받으려면 기도하는 백성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한 것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이가봇의 시대와 에벤에셀의 시대가 계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이가봇의 시대가 지나면 에벤에셀의 시대가 오고, 에벤에셀의 시대가 지나면 이가봇의 시대가 다시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 될 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에벤에셀의 시대를 살게 되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주신 축복에 빠져서 타락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돌이키도록 주변의 적들을 일으키셔서 이가봇의 시대를 허락하십니다. 이가봇의 시대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에벤에셀의 시대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다시 이가봇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렇게 이가봇과 에벤에셀의 시대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역사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자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사실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가 악성 종양으로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을 때 일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새삼 깊이 느낀 점이 있었답니다.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날을 회고하면서 레이건은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권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나는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몇 주 동안 정말 아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세를 가진 미국의 대통령도 자신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우리 같은 평범함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어떻게 에벤에셀의 시대를 만들겠습니까? 

깨어서 기도합시다. 시 72:12에 보면 “그는(하나님은)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라고 말합니다. 기도로 에벤에셀의 시대를 엽시다.  


3. 은혜의 장소로 모이라.

5절에 보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지시대로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있는 곳에서 기도하면 되는데 뭐하러 모입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나는 혼자서도 기도를 잘하기 때문에 교회의 기도모임에 오지 않아도 기도를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히 10:25에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씀합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모임을 폐하는 것입니다. 

마 18:20에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모이지 않으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거기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모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모임을 강조하시는데 스스로 모임을 거부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잠 18:1에서는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행 2:1을 보면 오순절에 120문도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셨습니다. 최초의 성령의 부으심은 개인에게가 아니라 무리였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교회에서 자주 모이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서 교회의 모임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예배로 일주일에 몇 번씩 모이는 것은 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그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면서라도 모여야 합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8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880미터입니다. 모이기 쉬운 장소가 아닙니다. 대관령이 해발 832m입니다. 대관령 보다 50m가 높은데 이스라엘 땅에는 해수면 보다 낮은 곳이 있으니 우리가 대관령을 걸어올라 갈 때 느끼는 느낌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걸어서 미스바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나귀 정도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바쁩니다.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가봇을 에벤에셀로 바꾸려면 은혜의 장소, 회개의 장소, 기도의 장소, 예배의 장소에 모여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작은 이익을 위하여 모임을 줄인다면 이가봇은 길어지고 에벤에셀은 멀어질 것입니다. 모여서 그 가운데 임재하신 주님을 경험하시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가봇에서 에벤에셀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랍니다. 


4.  헌신하라. 

6절에 보니 그들이 하나님께 물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인 것도 헌신이지만 그들에게는 물이 생명입니다. 물을 부었다는 것은 주님 앞에 생명을 드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850명과 영적 싸움을 합니다. 제물을 놓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도록 기도합니다. 그 때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싸움입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기도합니다. 그들의 기도에 응답이 없고 실패한 후에 엘리야가 기도합니다. 

엘리야는 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합니다. 그리고 제단 주의에 도랑을 만듭니다. 나무를 준비하여 불태울 제물을 각을 뜹니다. 그리고 도랑에 12통의 물을 붓습니다. 12통의 물을 붓는 것은 엄청난 헌신입니다. 그 때가 어떤 때입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에 물을 부었다는 것은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그 헌신을 받으시고 3년 6개월 동안 닫힌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가봇의 시대에는 주님을 위한 헌신이 없었습니다. 이가봇의 시대를 열었던 엘리 제사장이나 엘리의 아들들은 결코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이용해서 육신의 정욕만 채웠습니다. 그들에게 이가봇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헌신이 없이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에 물을 부었듯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부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헌신을 말하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린다’ 혹은 ‘빼앗긴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실 헌신은 ‘드린다’, ‘빼앗긴다’는 차원을 넘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헌신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받으시고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더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드리는 것도 빼앗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받는 것입니다. 

여섯 살 먹은 한 아이에게 애지중지하는 가짜 진주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것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 엄마를 따라 어디에 갈 때마다 반드시 목에 걸었다가 집에 오면 보석 상자에 고이 넣어두었습니다. 하루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가 아이와 즐겁게 보내다가 잠잘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잘 자라. 그런데 너 아빠를 사랑해?”,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세계에서 제일”, “그래. 정말?”, “정말”, “그러면 네 진주 목걸이 나 줄래?”, “그건 안 돼. 아빠,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그건 안 돼.”, “그래, 알았다. 잘 자라.” 아빠가 자기 방으로 간 후 아이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한다고 해놓고 아빠에게 목걸이를 안 주다니…….’ 

다음 날 아침에도 고민, 오후에도 고민하던 아이는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진주 목걸이를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이 진주 목걸이 아빠 줄게.”, “아니, 너 안 된다고 했잖아.”, “아니야, 이 진주 목걸이가 좋지만 아빠가 더 좋기 때문에 아빠에게 주는 거야.”, “그래, 고맙다.” 아빠가 그것을 받더니 다른 진주 목걸이를 딸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해외에서 사 온 진짜 진주 목걸이였습니다. 
이가봇의 시대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없습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랑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5.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벤에셀의 복을 받은 후에 지속적으로 에벤에셀의 복을 누립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이 지방을 순회하며 계속해서 말씀으로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15-17절을 보면 다스렸다는 말이 3번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통해서 가르쳐주는 말씀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에게 에벤에셀의 시간은 계속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시작된 에벤에셀의 시대가 언제까지 계속되었습니까?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세상적인 방법을 찾으면서부터 이스라엘은 서서히 에벤에셀에서 이가봇으로 넘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찾기 시작합니다. 사무엘에게 왕을 구합니다. 다른 나라를 보니 왕이 다스리니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힘을 모으는데 용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말씀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다스림이 아닌 왕의 다스림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무엘은 사울 왕을 세우게 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닌 사울왕의 다스림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울왕의 뜻으로 다스려 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에벤에셀의 시대를 잃어버리게 되고 다시 이가봇의 시대가 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에서 죽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합니다. 이가봇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시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생각이나 내 감정을 좇아가지 맙시다.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좇아가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만을 받읍시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고, 설교를 즐겁게 들으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호수아가 견고한 성읍 여리고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상식에 맞지 않는 이상한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성을 돌면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방법이지만 여호수아는 순종합니다. 그리고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에벤에셀의 체험을 합니다. 여리고 다음에 만난 성읍이 아이성입니다. 크고 강한 여리고를 무너뜨린 여호수아는 작은 아이성을 우습게 본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따라서 삼천 명의 군사를 보냈다가 전투에 패배하고 36명이 죽게 됩니다. 

잠시 잠간이지만 여호수아는 말씀의 다스림을 받지 않아서 이가봇을 경험했습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못하고 제 생각을 따라서 행하여 이가봇을 경험할 때도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내가 만든 이가봇의 역사 때문에 내가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조급해 하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에벤에셀로 인도합니다. 내 생각과 상식은 우리를 이가봇으로 인도합니다. 겸손히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에벤에셀의 삶을 삽시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가봇의 시대를 에벤에셀의 시대로 바꿉시다.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탐심을 물리치십시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시고, 영적인 모임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합시다. 사무엘이 제물에 물을 부었듯이 하나님께 헌신하시고,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읍시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 가운데 에벤에셀의 복, 하나님의 도우심의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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